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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여름 Aug 05. 2022

밥 먹다 행복론까지

오랜만에 큰아이만 데리고 남편과 함께 식당에 갔다. 남편 학원과 가까이 있어 남편이 주로 애용하는 단골 고깃집이다. 예전에도 한번 왔었지만 이곳 사장님은 참 경영마인드가 좋은 사람인 것 같았다. 야채쌈을 듬뿍 주길래 요즘 상춧값 비싸지 않냐고 했더니 그럴수록 더 퍼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단골집답게 이것저것 챙겨 주기도 하고 오다가다 말도 많이 건다. 이 시국에도 성공할 수밖에 없는 가게다. 그렇게 기분 좋게 식사를 하고 있는데.. 같이 온 아이를 보더니 몇 학년이냐고 묻는다.


"중2예요. **중 다니고. 사장님도 아들 있다 하셨죠?"


남편이 살갑게 대답하며 친근감을 드러낸다.


"네. 저희 아들도 중 2."


'그러시구나.'


그런데 이 사장님 이안이를 보는 시선이 뭔가 복잡하다. 뭐지?


"아들, 니 나이에는 많이 먹어야 키가 큰다. 키 크는 시기는 딱 정해져 있어."로 시작되어 화제가 자연스레 키로 갔다. 우리에게 흔한 일이다.


이안이는 키가 작다. 태어날 때부터 작았고 지금까지 쭉 평균을 1년 정도 밑도는 키다. 그리고 앞으로도 키가 작을 수밖에 없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일단 친가, 외가 전부 키가 작고 밤에 늦게 자고 밥도 잘 먹지 않는다. 유일한 희망은 우유를 물 먹듯이 먹는다는 것과 줄넘기를 포함한 운동을 많이 한다는 것. 어쨌든 키는 공부 못지않게 껌딱지처럼 이안이를 따라다니는 주제다.


"저희 애는 지금 키가 177이에요. 몸무게는 72고. 몸무게는 뭐 빼면 되니까."


그렇구나. 사장님이 이안이 나이를 알고 나서 왜 그런 눈빛으로 보았는지 이해가 되려는 순간이다. 우리 아이도 아이지만 중2가 177에 72면 와,..

어쨌든 이안이를 두고 자주 나오는 주제지만 키 얘기는 정말 달갑지 않은 이야기다. 키 안 크고 싶은 사람 어디 있으며 당신들이 보태주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고민스럽다오.

사장님은 이안이가 안타까웠는지 끝도 없이 키 이야기를 했다. 어떤 부모는 아이 키가 작으니까 초등학생 때부터 성장클리닉을 다니며 주사를 맞혔다고 한다. 아주 현명한 부모라는 말까지 했다. 순식간에 우리는 현명하지 않은 부모가 됐다.


남편은 사장님의 장단을 맞춰주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많이 먹어야 되는데 얼마나 안 먹는지 하소연하고 밤에는 잠도 일찍 안잔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아이를 위해서 했던 노력들도 필사적으로 강조했다.


점점 기분이 나빠졌다. 나 지금 혼나고 있는 거지? 한마디 한마디 말이 나를 퍽퍽 때리는 것 같았다. 이런 게 폭력이구나 라는 것을 느낄 때 나는 두 손을 공중에 들며 말했다.


"그만, 키 얘기는 여기까지."


눈치 빠른 사장님은 무안한 듯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밥 먹으러 왔다가 체하겠다. 아무 말도 못 하고 꾸역꾸역 고기를 씹고 있는 아들이 안쓰러웠다. 아니, 도대체 우리가, 내 아들이 뭘 그리 잘못해서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들을 고분고분 맞장구치며 듣고 있었던 거지?

 

남편을 보내고 아이와 같이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나는 약간 오그라들지만 진지하게 말을 했다.


"공부 잘하고, 키 크고, 잘 생기면 좋기야 하겠지만 그게 행복의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해."


"어, 그거 전데요? 공부 잘하고 키 크고 잘 생기고."


평소처럼 이안이가 넉살로 받아친다. 이제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그렇게 당당하란 말이야...


"키 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은 해야 하지만 너무 순리를 거스르고 싶진 않아. 키가 크든 작든 조건에 상관없이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


"..."


"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지 않으면 꼭 뭐가 잘못된 것처럼, 부족한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고쳐주려고 애쓸까? 그 사장님은 기준이 자기 아들인 거야. 너도 평균치는 아니지만 그 아들도 평균은 아니야. 그런데 자기 아들 기준으로 너를 보니까 얼마나 부족해 보였겠어. 너는 다른 사람을 기준으로 너를 평가하지 않으면 좋겠어."


아들의 침묵을 진지한 경청으로 이해한 나는 그동안 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슬며시 꺼냈다.


"나는 이 땡볕에 학원 가방 들고 이리저리 다니는 아이들 보면 마음이 아파. 남들보다 잘하라고 학원 보내는 거잖아. 근데 너도 나도 학원 보내니까 똑같은 자리인 거야. 똑같이 불행하게 경쟁하는 것보다는 다 같이 학원 안 가고 행복하게 경쟁하는 게 낫지 않아?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하는 공부가 오히려 지금의 행복을 망치고 있어."


이때다 싶은 아들이 예상된 반응을 꺼낸다.


"어, 그러니까 저는 공부를 안 하고 놀게요. ㅎㅎ"


"행복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거잖아. 공부 안 하고 놀기만 하면 과연 행복할까? 미래에 대한 준비가 없으면 오히려 불안할걸? 공부는 너의 미래를 준비하는 거고 네가 언젠가 자립하기 위해 이 세상을 배우는 거야. 다만 행복하기 위해서 행복을 망치지 않을 정도로만 해. 나는 네가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


진짜 그렇다. 아이를 키우면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나는 수없이 고민했다. 행복에 대해서,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아이를 키우는 일에 대해서, 그리고 인생에 대해서.

그리고 내린 결론이 '행복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우자는 것이다. 행복은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채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꾸준한 경험과 연습을 통해 이루어진다. 내가 어떤 때 행복한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행복을 위해 지금 내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등등은 나중이 아닌 지금부터 항상 배워가야 하는 것이다.


한 번은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학원은 안 가도 공부는 놓지 말아야 하고, 키 크는 노력은 해야 하지만 키 작은 것에 주눅 들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공부 못하면 공부 잘할 때까지 행복할 수 없고 키 작으면 키 클 때까지 행복하지 않아야 하는가? 그래서 그렇게 원하지도 않은 충고와 조언을 밥 먹는 머리 위로 쏟아내고 있는가. 키 얘기에서 공부 얘기까지 간 내가 우습긴 하지만 언제나 내가 생각하는 교육관은 그렇다. 아이 삶의 어떤 과정을 들여다 보아도 그 순간에 행복은 언제나 기본값으로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 아이가 최대한 빨리 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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