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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여름 Nov 02. 2022

꿈에서

어젯밤 내 꿈 이야기 좀 들어볼래?     


  어떤 교회에서 돔구장 같은 커다란 예배실을 지었어. 그리고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배드릴 준비를 하고 있었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그곳은 크고 화려한 공간이었던 것 같아. 전체가 흰색으로 둘러싸인 둥글납작한 건물인데 벽은 두툼했고 천장도 막혀 하늘까지 외부와 철저히 차단되어 있었어.

     

  어떤 사람들이 와서 청소를 시작해. 그들은 나태했고 하는 둥 마는 둥 흉내만 내고 있었는데 그들이 뭔가를 태우기 위해 지핀 불이 예배 시작까지 꺼지지 않고 잔불로 남아 있었어. 예배가 시작되자 나는 불을 꺼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이 들었어. 그와 동시에 갑자기 어디선가 센 바람이 훅 불어오더니 작았던 불이 크게 확 번지기 시작한 거야. 예배당 안은 순식간에 연기에 휩싸였고 나는 빨리 탈출하라고 사람들에게 말했어. 희뿌연 연기 속에 아이들이 먼저 나가고 다른 사람들도 빠져나간다고 정신없는 와중에 갑자기 노랫소리가 들려왔어. 보니까 성가대에 사람들이 그대로 남아서 찬송을 하기 시작한 거야. 내가 불이 났는데 안 피하고 뭐하냐고 말했더니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들은 그 자리를 지키며 찬양을 해야 한다는 거야. 내가 너무 답답해서 지금은 일단 피하라고 소리를 지르며 이야기를 해도 그들은 듣지 않았어. 도대체 그 ‘어떤 상황’이라는 것이 지금 이 상황을 말하는 것이 맞는지 꿈에서도 안타까움에 속이 터져 버릴 것 같았어.     


  장면이 바뀌고 다행히 큰 인명사고 없이 일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어. 그런데 한 아이가 쓰러졌고 주변에서는 의사를 찾았어. 의사 출신은 흰 가운을 입고 사람들을 치료하라고 누군가가 말했어. 몇 사람이 흰 가운을 걸쳐 입었고 나도 가운을 입었어. 그때 나는 나도 의사라고 생각했던 거야. 의사 가운을 입었는데 그 순간 내 마음속에 엄청난 프라이드? 뭐라고 표현해야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우쭐함? 뿌듯함? 우월감? 같은 것이 생겨났어. 사람들이 ‘와~ 쟤 의사였네’ 하는 것 같은. 의사의 상징인 청진기를 아이의 가슴에 갖다 댔어. 그랬더니 심장 소리가 아주 크게 들리는데 뭔가 좀 이상한 것 같았어. 하지만 이게 이상한 건지 정상인 건지 알 수가 없었어. 당연하지. 나는 의사가 아닌데. 당황스러웠어. 의사 가운을 입었지만 아무것도 모르겠는 거야.      


  다시 억지로 장면을 바꾸어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 있었어. 그 버스 안에서 나는 갑자기 깨달았어. ‘어? 나 의사 아닌데? 왜 내가 가운을 입고 있지?’ 나는 너무 부끄러워서 의사 가운을 벗으려고 했어. 그때 버스가 나의 목적지에 도착했고 나는 빨리 내리려고 짐을 챙겼어. 그런데 내가 벗어 놓은 옷이 너무 많아서 허겁지겁 그것들을 챙기느라 내리지 못하고 당황한 채로 잠이 깼어.     


  아침까지 이 꿈이 너무 생생해서 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나는 계속 꿈에 대해서 생각했어. 왜 이런 꿈을 꾸었던 걸까? 누군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나는 알 것 같았어. 돔구장 같은 커다란 예배당은 세상과 담을 쌓은 교회의 모습이었고 그 안에서 난 그들만의 위선과 가식, 본질을 잃은 예배 형식들을 고스란히 보게 된 것이었어. 하지만 결국 가장 위선적이고 가식적이었던 것은 의사도 아니면서 의사라고 굳게 믿고 우월감을 가진 나 자신이었어.


  그래서 오늘 하루, 아니 오늘부터 나는 내 속에 있는 위선과 가식을 찾아보려고 해. 세상을 향해 휘둘렀던 칼끝을 먼저 나에게 겨눠보려고 해. 아니, 말이 너무 무섭군. 나 자신을 먼저 철저히 돌아보겠다는 뜻이야. 아직 인정하기 싫고 와닿지도 않는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내 꿈이 내게 던진 메시지를 나는 흘려보내지 않으려고 해. 그게 내가 처음으로 이 꿈을 기록하는 이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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