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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준 Aug 31. 2021

저마다 칵테일을 좋아하게 된 이유

코크 테일(Cork Tale), 뚜껑을 열면쏟아져 나오는이야기

  황금빛으로 그을린 조던의 날씬한 팔이 내 팔을 감았고 우리는 계단을 내려가서 정원 주위를 산책했다. 황혼 속에서 칵테일 쟁반이 우리에게 전달되었고 우리는 노란 드레스의 두 여자와, 아무개라고 소개한 세 남자와 함께 한 식탁에 앉았다.

                                                 “이런 파티에 자주 오시나요?”   


       

  스콧 피츠제럴드(F.Scott Fitzgerald)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의 금주법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로, 개츠비와 등장인물들이 매일 밤 호화 파티를 열며 벌어지는 사건사고를 그려낸 이야기다. 미국에서는 1919년 금주법을 제정함으로써 음주 남용으로 야기되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으나,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음주운전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한 해에 얼마나 많은 음주운전 사고가 일어나고 있는가. 미국에서도 금주를 법으로 제정했지만 사람들은 밀주를 만들어 사고팔았고, 특히 부유한 상류층은 비싼 밀주의 주 소비계층이었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2013)> 작중 개츠비(L. 디카프리오 분)

  또한 법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술을 주스에 섞는 등 술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해 만들어 먹으려 했고, 이는 금주법 시대에 칵테일 문화가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라에서 허가받은 약사만이 위스키를 판매할 수 있었기에 술을 술잔이 아닌 약통에 담아 마시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위대한 개츠비』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호화 파티를 할 때 늘 칵테일을 즐긴다. 위스키에 탄산수를 섞은 하이볼(High-ball)부터, 신선한 민트 잎이 들어간 민트 줄렙(Mint Julep)과 드라이 진 베이스로 만든 진 리키(Gin Rickey)까지.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이 책을 읽었고, 이 소설에 나오는 칵테일 이름들을 메모장에 적어가며 “나중에 대학생이 되면 이 소설에 나오는 칵테일을 모두 마셔봐야지.”라고 다짐했다. 그때의 기억이 내가 칵테일에 동경을 품게 된 첫 계기였다. 물론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금전적 여유가 충분하지 못해, 위스키에 탄산수 섞은 하이볼 대신 소주에 맥주 말아서 마시곤 했다. 칵테일은 가끔 분위기 내고 싶은 날 찾아가 한두 잔 마시는 게 고작이었다.     


  대학교 졸업 후 군 장교가 되고 경제적 자립 능력이 생겼을 때, 『위대한 개츠비』에 나오는 칵테일을 모두 마시고야 말겠다는 어린 날의 다짐이 문득 떠올랐다. 휴가나 외박을 나오면 칵테일 바에 한 번씩 들렀고 메모해뒀던 칵테일을 모두 마셨다. 그리고 마셔보지 않은 칵테일들을 마시면서 그 술에 관련된 이야기가 있는지 바텐더에게 물어보곤 했다. 칵테일은 다양한 음료들이 섞여 만들어진 음료인 만큼 종류가 무궁무진했고, 거기에 얽힌 이야기들도 정말 다양했다. 칵테일의 문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수탉의 꼬리를 뜻하는 ‘Cock’ + ‘Tail’이지만, 나는 ‘Cork’ + ‘Tale’이라 부르는 것도 좋아한다. 술병 마개(Cork)만 열리면 이야기(Tale)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영국의 한 군의관이 배 위에서 비타민을 잘 섭취하지 못하는 해군들의 괴혈병을 예방하기 위해 고안해낸 칵테일 이야기도 있고, 미국의 경마대회인 ‘켄터키 더비’의 전통주로 자리 잡은 칵테일 이야기도 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김수현 분)이 마신 후 말을 타고 하늘에 올라간 칵테일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아프리카 여행을 마치고 또 북극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첫 잔으로 주문했던 나의 18번 칵테일 이야기도 있다. 청담동 건물 지하로 내려가 고풍 문을 열고 들어간 바에서 마시는 칵테일만이 칵테일의 전부는 아니다. 술맛을 싫어하는 어머니를 위해 소주에 오렌지 주스를 섞어준 아들의 음료도 배려와 사랑이 담긴 칵테일이고, 대학교 새내기 때 막걸리 한 주전자를 시켜 사이다 한 캔 몽땅 부은 것도 칵테일이다.     




  음료와 음료가 어떻게 섞이는지, 술과 이야기가 어떻게 섞이는지 알아가는 것이 칵테일의 묘미다. 이미 세상에 전해진 많은 이야기가 있고,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 이야기들을 앞으로 하나씩 알아가 보자. 



한남동 마이너스 바 이성훈 바텐더의 민트 줄렙(Mint Jul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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