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 폐잠수복 업사이클링
제주도로 이주한 지 6년 차. 이젠 제법 제주도 말투도 섞이고 섬 생활에 적응이 되어 간다. 6박 7일간 약 220km를 도보로 해안 길을 걸으며 어떤 목적을 위한 것도 없었기에 왜 이 짓거리를 하고 있지 하는 허탈함도 느껴봤고, 아랏길(바다의 길)을 개척하면서 제주도 바다의 구석구석 특징과 그 지역의 터줏대감들의 내면도 은밀하게 알게 되었다. 하지만 한라산 백록담은 여전히 오른 적이 없다. 윗세오름까지가 딱이었다. 고향이 속초지만 대청봉을 오른 적이 없듯이 나는 산과 바다 중에 선택을 하라고 하면 당연히 바다를 선택한다. 제주도는 섬이기 때문에 바다가 주는 기운 또한 동서남북이 제각각이다. 동쪽은 해가 뜨는 곳이어서 역동성이 있고, 서쪽은 해가 지는 곳이라 포근함이 좋으며, 남쪽은 화산 폭발의 영향으로 협곡과 주상절리의 발달로 긴장감이 있고, 북쪽은 완만한 경사로 평온하다.
제주도 바다는 어촌계로 이어져 있으며, 바다 경계선을 정확히 지키며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지만 견물생심은 그 무엇이든 이길 수 없기에 때때로 옆 어촌계와 다투는 일도 발생한다. 어촌계의 핵심은 해녀다. 나잠어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제주 해녀 문화는 2016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지자체로부터 특별한 관리와 지원을 받고 있지만, 점점 고령화되어 지속가능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촌계마다 60세 미만의 젊은 해녀가 필요하지만, 진입 장벽이 높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일정 조건을 갖추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예전과 비교해 제주 바닷속의 해산물이 현저하게 줄었다는 사실이다. 해안도로의 개설, 중산간의 개발로 인한 지하수의 부족, 개발로 인한 오·폐수의 증가, 인구의 증가에 따른 생활 쓰레기 과다, 관광객이 버리는 무분별한 쓰레기, 해양자원의 남획, 폐어구와 그물의 방치 및 투기 등은 제주 바다를 황폐화하는 주요 원인이다. 그런 바다를 해녀들이 지키며, 거친 숨을 들이켜며 손으로 하나하나 해산물을 채취하며 삶을 영위한다. 그분들의 안전을 지키고 삶을 지속시키는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이 잠수복이다. 예전엔 물소중이를 입고 추위와 싸우다 보니 해산물 채취 시간도 짧을 수밖에 없었지만, 고무 옷이 등장하면서 채취량도 늘었고, 바다와 함께 하는 시간도 4시간 이상 자연스럽게 늘게 되었다. 하도리의 한 해녀 삼촌은 이렇게 말한다. “고무 옷은 우리의 생명과 같아요.” 바다 수영을 하는 우리도 슈트의 중요성을 알기에 소중하게 대하는 마음은 같다.
육지에서 제주도로 이주해 온 사람이 해녀 삼촌과 친해지기는 쉽지 않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아랏길에 관심이 있는 친구의 소개 덕분에 자연스럽게 귀덕 어촌계장을 알게 되었고, 어촌계장님 또한 취지에 공감하여 행사를 하게 되었다. ’ 귀덕 바다 아랏길 & 달빛 수영‘ 행사는 안전하게 잘 치렀다. 귀덕 바다 아랏길은 귀덕리 바다의 경계선 시작점부터 끝점까지 완영 하는 것이며 달빛 수영은 거북등대 안쪽의 안전한 장소에서 밤에 수영을 하는 것이었다. 해녀 삼촌들이 뿔소라도 직접 구워 주셨기에 참가자들은 더할 수 없는 더블 감동을 느꼈다.
이 행사를 계기로 자주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다 보니 친하게 지냈다. 바다에 대한 많은 이야기와 해녀의 삶에 대하여 깊게 알게 되는 계기가 시작되며 나에 대하여 알게 된 해녀 회장님께서 버려지는 잠수복을 주셨고 이것이 해녀 잠수복으로 고래 꼬리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해녀 잠수복은 세월의 흔적과 삶의 애환이 묻어 있다. 무거운 테왁을 어깨에 메고 이동해야 하므로 등에 새겨진 삶의 고된 흔적들. 물에 들고 날 때 바위에 긁힌 작은 구멍들. 찢어진 부위를 수선한 접착제 자국들. 흰 반창고와 바느질 흔적들. 그 해녀 잠수복을 재단하며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게 되면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단 하나도 버릴 수가 없기에 100% 사용한다.
버려지는 해녀 잠수복은 말 그대로 버려지는 것이기 때문에 방치된 것들이다. 곰팡이와 묵은 때를 제거하기 위하여 소프넛을 끓여 희석한 물에 담가 잘근잘근 밟아 이물질을 제거한 후 선선한 곳에 널어 말린다. 뽀송하게 말려진 잠수복을 내가 원하는 느낌으로 재단을 하고, 남은 자투리는 잘게 자른 후 별도 보관한다. 한 땀 한 땀 감침질로 업사이클링하면 고래 꼬리 열쇠고리로 재탄생된다. 원단 자체가 부드러워서 바느질도 쉽게 할 수 있지만 그런 느낌의 바느질이 어렵다는 분도 계신다. 고래 꼬리 열쇠고리는 조물조물하면 기분이 참 좋아진다.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는 느낌이다. 마음이 편해지고 안정되기 때문에 상담을 할 때 좋겠다는 분도 계셨다. 혹등고래 꼬리, 향유고래 꼬리, 쇠고래 꼬리 등 다양한 고래 꼬리를 제작하고 있다. 더불어 노트북 파우치, 남방 큰 돌고래, 혹등고래, 쇠고래, 향유고래, 상괭이도 만든다. 한 땀 한 땀의 정성이 환경 보호를 위한 공감대의 형성에 이바지하길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에 모두 고래 같은 마음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아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