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와 수용의 차이
지난 글 https://brunch.co.kr/@c21cad76a41f444/7 에서 아내는
"이게 사랑인지 나도 헷갈리고 어려워.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인 것 같은데, 그게 자기라는 사람에 대해서 체념하고 포기하는 마음이 들어."
라고 말한 후, 그 말에 바로 내 의견을 말하지 못했다. 사실 나는 아내에게 그런 마음이 별로 들지 않아서, 전혀 느끼지도 생각해보지도 못한 이슈다. '나' 스스로에게 대답이 필요했다. 이 이슈에 한참 머물러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싸우고 이틀 후에 아내와 침대에서 대화를 나눴다.
아내는 나에게
"자기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나는 아직도 어려워"
나는
"내가 늘 하는 말 있잖아. 나는 사랑은 I see you 하는 거라고 생각해."
라고 말했다.
이보다 더 사랑을 잘 표현하는 말이 또 있을까? 아바타에 나온 "I see you"라는 대사는 '사랑해'라는 말이 없는 나비족의 언어에 사랑한다는 표현으로 쓰는 언어이다. "나는 너를 본다." "나는 너를 있는 그대로 본다." 영어는 "I(나)" 중심으로 쓰는 언어다. 한국어는 관계를 중시하는 언어로, 주어 '나'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타자를 중요하게 생각하니, 한국 뉘앙스로 바꾸면,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한자말을 빌리면 "수용"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내가 나에게 물었다.
"I see you 하는 거랑 체념/포기가 뭐가 다를까?"
"글쎄........(잠시 생각했다.)"
"욕구의 유무 아닐까? 무언가를 포기한다고 할 때, 내가 아직 원하는데, 내가 능력이 안되거나 외부적 환경이나 조건 때문에 그걸 그만둬야 한다는 거잖아. 그걸 원하는 욕구는 그대로인데 말이야. 체념도 마찬가지고.."
아내는 내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음.. 맞는 말 같아."라고 말했다.
사람은 서로 다르다. 아바타 물의 길에서(물론 그들은 사람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감동적이었던 한 장면이, 바다 부족 족장의 딸이 제이크의 아들에게 "I see you"라고 말한 순간이다. 물의 부족과 다른 제이크의 아들, 자신이 손가락이 5개인 인간 혼혈종이라고 말하며 자책하는데, 물의 부족의 딸은 그 순간 "I see you"라고 말한다. "나는 손라락 5개인 너를 본다. 물의 부족과 다른 너의 모습을 본다. 그런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라고 느껴진 장면이었다. 참 인상 깊었다.
나와 다른 타자를 내 욕구를 반영해 내가 원하는 모습이나 태도,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그게 사랑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늘 해왔다. 나에게 사랑은 있는 그대로 모습을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한편 글 쓰면서 생각해 보니, 나의 "사랑 정의"를 내 아내도 가졌으면 하는 욕구도 내 안에 있음을 발견한다. 나의 어떤 점은 아내에게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있을 것인데,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줬으면 하고, 바라는 모습도 어쩌면 상대방에게는 강요일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문제다. 아내가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를 바꾸려고 하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면 안 되냐.. 이러면 참 곤란할 것이다.
어쩌면, 아내의 체념과 포기를 응원하는 게 방법일 수도 있겠다. 그 체념과 포기도 나를 사랑하니까 해보려는 큰 용기이니까. 실제로 뭔가를 포기하는 것만큼 용기가 필요한 일이 없다. 그렇게 체념과 포기의 단계를 넘어 '나'를 수용해 주기를 기다리는 게 나을까? 이 기다림도 아내에게는 강요로 느껴질 수 있으려나? 이런저런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논쟁? 언쟁? 을 하다가도 꼭 마지막에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대화를 마친다. 변함없는 것은 아직 나와 아내는 서로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