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최고로 기승을 부리던 2021년 여름, 37도를 육박하던 가장 더운 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마침 난 밀접 접촉자로 13일간 격리 중이어서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아버지랑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서 거의 매일 아버지를 뵈러 갔었는데, 코로나로 열흘이상 아버지를 만나지
못한 상황에 갑작스레 돌아가시니 아직도 그 슬픔은 가슴 한편에 화석처럼 자리 잡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집에서 주무시다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경찰, 국립과학수사대, 의사 등 검시하는 동안의
시간에 아버지를 만지며 생전 못했던 사랑하고 미안하단 말을 통곡하면서 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미친 듯이 울며 뛰쳐나갔더니 질병관리본부에서 전화가 오고 난리가 났었다. 거의 격리가 끝나갈 무렵이기도 했지만, 잡혀가는 한이 있어도 아버지의 마지막을 꼭 보고 싶어 질병본부에 사정사정하여영안실로 가시기 전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장례식장에도 엄격히 출입인원을 조사하는 바람엔 난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3일간의 장례식은 산사람에게 꼭 필요한 이별의 절차라는 것을.
그렇게 아버지를 보내드리고는 난 정신이 거의 반쯤 나간 상태로 몇 달을 무기력하게 보내게 되었다.
아주 절실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감정. 꼭 해야 하는 일들만 간신히 처리하며 지내기를 여러 달,
가슴 한가운데 뻥 뚫린 구멍으로 바람이 숭숭 지나다니는데, 도대체 뭘 어찌해야 할지 당황스러운 나날이 계속되었다.
생전 아버지와 나는 좀 특별했다.
알코올중독과 다양한 질병으로 한 달에도 서너 번씩 응급실을 드나들고 길에서 쓰러졌다는 구급대원의 전화도 여러 번 받으면서 참 징글징글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난 아버지가 인간적으로 측은하고 안 됐었다.
그냥 아버지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불쌍한 인생이었다.
지금도 아버지가 주로 다니시던 세브란스에 가면 진료실 곳곳에서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인다.
보고 싶은 울 아버지...
그렇게 가슴 시린 나날을 보내던 중,
지인이 강아지를 데려왔다며 보여주었다.
내가 개띠라 그런지, 어려서부터도 강아지를 무척 이뻐했지만 여러 이유로 이별했던 가슴 아픈 경험으로
다신 키우고 싶지 않았고 다른 강아지를 보더라도 마음이 썩 가진 않았었다.
그냥 귀엽다~~~ 정도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마음을 주진 않았는데, 그날 지인의 그 강아지를 보고는
미친 듯이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랬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그날 이후 매일 틈만 나면 강아지 사진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사진만 찾아보았지 키울 엄두는 내지 못했다. 여러 가지 여건이 강아지를 키울 상황이 아니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