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행운은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시작된다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시간은 참 빠르다. 대학 입학 초반, 인생 처음으로 겪은 삼엄한 분위기에 새내기 첫 달을 눈물로 지새운 날이 엊그제 같은데, 2020년 겨울 나는 어느덧 마지막 학년을 코 앞에 두고 있었다.
한국에서 취업을 하기 위해 필수로 거쳐야 하는 관문인 토익도, 컴퓨터 활용 능력 시험도 단순히 서류 통과를 위해 필요한 '스펙 한 줄'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그런 한국의 전형적인 취업 준비가 너무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게다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일이 나에게 잘 맞을지 끝없이 고민했지만 항상 결론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나는 졸업과 동시에 해외로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해외 경험 및 영어 실력 향상이었지만, 사실 치열한 취업 시장에 뛰어들기가 두려웠다. 일종의 일시적인 도피를 꿈꾼 것이다.
마침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캐나다'라는 나라에 홀랑 빠져버렸다. 아마도 한국보다 평화롭고 자유로운 생활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2019년 말,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인원 선발을 위한 프로파일 등록이 시작되었고 나는 프로파일 등록이 시작되던 당일에 프로파일 등록을 마쳤다.
캐나다 이민성에 프로파일을 제출한 지 1달쯤 되었을까, 캐나다 워홀 카페에는 인비테이션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있었다. 이쯤 되니 유독 나에게만 인비테이션이 도착하지 않는 것 같은 불안감이 나를 휘감기 시작했다. 그래도 인비테이션 발급 초기인만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2019년을 보내고 2020년이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캐나다 이민성으로부터 인비테이션은 날아오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함만 더해져 갔다. 그러던 와중, 아주 우연히 영국 워킹홀리데이 신청이 다가오고 있다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다. 게다가 2020년부터는 기존에 필요했던 정부 후원 보증서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으며, 이로 인해 신청 절차가 매우 간소화되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며 돼도 그만 안돼도 그만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영국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하게 되었다.
결과 발표일, 나는 영국 YMS 비자 신청 대상자로 선발되었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사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얼떨떨했다. 이번 워킹홀리데이는 기존과 달리 토익점수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쟁률이 올라갔을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라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진 행운이라니 정말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영국 워홀 합격 메일을 받고 큰 고민이랄 것도 없이 캐나다 워홀은 깔끔히 포기하기로 했다. 언제 올지도 모를 프로파일을 기다리는 대신 나를 '환영?!'하는 영국으로 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나의 인연은 캐나다가 아닌 영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2019년 여름, 여행차 방문한 런던에서! 내가 사랑했던 첼시의 홈구장이 있는 런던에서! 2년간 생활하게 된다니! 너무 떨리고 기대가 되었다.
메일을 받은 후 입국일을 최대한 미루기 위해 3월 말 비자 신청과 의료보험 결제를 마쳤고, 그와 동시에 영국 워홀을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찾아다녔다. 당시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국을 지배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 아르바이트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어찌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았고, 몇 달 후에는 또 다른 아르바이트들을 시작했다.
약 9개월 동안 미친 듯이 아르바이트를 한 덕분에 적지 않은 돈을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출국 직전, 영국 변이 바이러스가 터졌고 나는 출국을 단 며칠 앞두고 비행 일정을 변경해야 했다. '전염병'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출국을 하지 못하게 된 나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본가에 내려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또 몇 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당시 나는 꽤 혼란스러웠다. 코로나로 인해 입국일을 바꾸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비네트 트랜스퍼를 하는 사람들 역시 적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때 몇몇 사람들은 비자 기간이 2년으로 리셋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고, 또 반대로 몇몇 사람들은 비슷한 기간에 비네트 트랜스퍼를 했음에도 비자가 리셋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나는 희망 회로를 돌리며 '혹시 내 비자도 리셋되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지만 역시 그런 행운은 나에게 오지 않았다. 영국 이민성의 오락가락한 행동을 욕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내기엔 나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코로나 덕분에 내 2년짜리 YMS 비자는 반쪽짜리 비자가 되었고, 그로 인해 더 이상 출국을 미루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2021년 여름, 영국으로 출국했다. 내 인생의 두 번째 페이지가 시작된 것이다.
인생 첫 해외 생활, 인생 첫 독립. 그로 인해 겪게 된 다양한 에피소드들. 약 24년간 한국에서 거주하면서 단 1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들을 영국 거주 6개월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겪은 아이러니함을 이곳에 남겨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