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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geun Jun 18. 2024

“배경이 되는 건축”

파세이우 도스 클레리구스 쇼핑몰

모든 도시에는 이야기가 있다. 도시의 역사가 깊어질수록 이야기는 풍성해지기 마련인데, 그 풍성함은 건축물을 통해 일차적으로 드러난다. 유럽이든 한국이든 서로 다른 시대의 양식과 공법, 세월이 묻어나는 땟자국으로. 짙어지는 농도와 비례하여 시민들의 추억도 함께 적층된다. 역 앞에서 지인을 기다리고 광장에서 버스킹을 즐기며 문화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시계탑 아래에서 특별한 날을 만끽한다. 그러한 기억이 모여 도시의 이미지와 분위기가 형성된다. 도시의 이야기를 넘어 각자의 이야기도 건물에 새겨진다. 그래서 오래된 도시일수록 현대 건축물은 공격받기 쉽다. 경관을 해치며 우리네 이야기를 흩트려선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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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루강을 끼고 번성한 도시, 포르투갈의 포르토는 항구를 뜻하는 ‘포르투스’에서 유래한다. 그만큼 잦은 무역 관계가 도시에 다양한 흔적을 남겼다. 특히 1703년 영국과의 무역 조약 이후 최대 호황기를 누리게 된 포르토에는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 많이 지어지게 된다. 상업을 통해 부르주아가 귀족들의 경제적 수준을 넘어선 이후 권력 과시용이 필요했고 차분한 르네상스보다 화려하고 장식적인 양식이 적절한 수단이었다.


그중에서 ‘클레리구스 성당’은 포르투갈에서 가장 유명한 바로크 양식의 교회 건물이다. 성당 종탑의 높이는 75m로 6층 건물과 맞먹는데, 주변 건물의 평균 층수는 4층이며 성당은 언덕 정상에 자리한다. 성당이 곧 도시의 랜드마크로 작동한다. 예배일 아침이면 종탑 앞 광장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며, 정오가 되면 종이 울려 모두가 같은 시간과 소리를 경험한다. 그 밖에도 이 일대는 지난 천 년 동안 문화와 상업 통로로 사용된 도시의 특성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어 역사 지구로 남아있다.

성당 종탑의 높이는 75m로 6층 건물과 맞먹는데, 주변 건물의 평균 층수는 4층이며 성당은 언덕 정상에 자리한다. 성당이 곧 도시의 랜드마크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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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성당 바로 옆, 삼각형 부지에 들어설 현대 건축물은 어떠한 태도와 형태를 취해야 했을까. 답은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것. 도시를 구성한 건물을 극단적으로 분류해 보자면, 성당과 같은 기념물과 이를 돋보이게 해주는 단조로운 주변 건물이겠다. 후자를 자처하는 ’Passeio dos Clérigos(파세이우 도스 클레리구스 쇼핑몰)‘은 지하 1층의 주차장, 지상 1층의 쇼핑센터, 옥상 정원으로 구성된다. 땅이 융기하며 형성된 지형처럼 자연스럽게 자신을 숨긴다. 그 중심부는 지진으로 땅이 갈라진 듯한 형상을 띤다. 보행로에서 바로 진입하여 입점한 점포로 들어가는 동선에서 복도 천장은 갈라져 축을 강조한다. 틈 사이로는 클레리구스 성당의 종탑이 위엄을 뿜어낸다.

보행로에서 바로 진입하여 입점한 점포로 들어가는 동선에서 복도 천장은 갈라져 축을 강조한다. 틈 사이로는 클레리구스 성당의 종탑이 위엄을 뿜어낸다.

언덕 지형에 있는 건물이기에 보행로는 지상 레벨이 가장 높은 성당 쪽 꼭짓점 부분에서 옥상 정원과 바로 연결된다. 맞은편  ‘Jardim da Cordoaria’ 공원과 자연스레 연장되어 도시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시민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한다. 정원의 일부는 상업 시설로 구획하여 수익성도 확보했다. 낮은 지상 레벨로 갈수록 높아지는 옥상정원을 통해 확장된 도시 경관을 경험해 볼 수 있다.

낮은 지상 레벨로 갈수록 높아지는 옥상정원을 통해 확장된 도시 경관을 경험해 볼 수 있다.

사실 이곳은 1990년부터 2006년까지 갤러리와 상점들이 즐비한 열린 광장이었다. 쓸모를 다하지 못하고 폐업하여 방치된 이후, 2013년에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게 된 것. 건물은 16년의 짧지 않은 시간을 같은 프로그램으로 이어주면서 도시 이야기 속 배경이 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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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 Balonas & Menano Architects

사진, 글 : 신효근 ( @_hyogeun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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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_경험을_주는_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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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de São Filipe de Nery, 4050-546 Porto, 포르투갈

매일 09:00 -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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