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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현 Feb 13. 2023

우리는 반드시 케빈에 대하여 이야기해야 한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에 대하여

스포일러 주의


다른 사람들의 <케빈에 대하여> 평을 보고 조금 놀랐다. 대부분이 케빈이 가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이에 연계되는 그의 이상 행동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발달이론에서 유래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어린 남자아이가 어머니를 독차지하려고 하는, 혹은 아버지를 경쟁 상대로 보고 증오하는 심리를 말한다. 어머니에게 집착하고, 끝내 어머니를 제외한 모두를 살해한 케빈의 행동은 이러한 콤플렉스로 읽었을 때 상당히 직관적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영화를 본 다수의 관객들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인용하여 비평을 이어나가는 것은 매우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케빈에 대하여> 국내 포스터


국내에서의 홍보 방향 역시 사이코패스 케빈에 집중되어 있다. 영화의 한국어 제목은 ‘케빈에 대하여’, 그리고 국내 영화 포스터에는 ‘너의 엄마로 산다는 것’이라는 문구가 삽입되어 있다. 즉, 영화를 보기 전 홍보를 접하는 순간부터 영화에 대한 관점이 ‘케빈’과 ‘케빈의 엄마’로 맞춰지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의 주인공이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에바’는 아이러니하게도 ‘사이코패스 케빈의 어머니’ 혹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집착의 대상’으로만 대상화된 것이다.

<케빈에 대하여> 해외 포스터

사실 영화의 원 제목은 ‘케빈에 대하여 (About Kevin)’ 가 아닌 ‘우리는 케빈에 대하여 이야기해야 한다 (We need to talk about Kevin)’이다. 그렇다면 이 제목에서 말하는 ‘우리’는 누구일까? 또, 케빈의 어떤 것에 대하여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혹시라도 남근기에 고착되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아이가 있을 수도 있으니 거기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는 걸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영화는 그렇게 예외적인 경우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으며, 케빈에게 살해당할 우리를 걱정하고 있지도 않다. 그저 누구나 이미 알고 있는 케빈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으며, 이를 애써 외면하고 있는 우리를 여실히 드러냈을 뿐이다. 그렇다면 케빈에 대한 이야기를 거부한 우리는 누구일까.


에바의 남편, 케빈의 아빠인 프랭클린


첫 번째 우리는 바로 에바의 가족이다. 정확히 말하면 케빈과 어린 딸 실리아를 제외한 그녀의 남편 프랭클린이 여기에 해당한다. 프랭클린은 얼핏 보기에 가장으로서 최선을 다한 것 같지만, 에바에 대한 그의 무관심 혹은 회피적 성향은 영화 전반에 걸쳐 드러난다. 에바는 프랭클린의 성욕을 미처 뿌리치지 못해 피임에 실패하고 케빈을 임신하게 된다. 임신을 한 후 프랭클린은 계획하지 않았던 아이를 갖게 된 에바의 상태에 어떠한 관심도 가지지 않는다. 그저 그녀와 가정을 꾸림으로써 현대 사회에서 요구하는 물리적인 책임을 다한 것으로 보일 뿐이다. 케빈을 낳은 후에도 그의 관심은 자신의 아내인 에바가 아닌 오로지 ‘좋은 아빠’가 되는 것에 있을 뿐이다. 그는 겉보기에 훌륭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당장 눈에 보이는 갈등을 조잡하게 봉합할 뿐, 그 근본 원인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케빈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진단했던 의사

에바의 주변 인물들 역시 그 누구도 케빈에 대하여 에바와 대화를 나누려 하지 않았다. 의사는  에바에게 어떠한 의견도 구하지 않은 채 그저 케빈을 아무 문제없는 정상적인 아이로 진단했다. 영화에 등장조차 하지 않은 학교의 선생님 역시 케빈으로부터 어떠한 이상 징후도 감지하지 못했다. 그 결과 케빈의 학교 생활은 아무 문제없다는 듯이 영화 내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 외에도 어쩌면 에바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수영장의 임산부들, 유명한 탐험가였던 에바의 직장 동료들, 케빈이 다니는 학교의 학생들 까지.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들일지도 모르지만, 아주 작은 관심이라도 가졌다면 에바와 케빈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갑자기 만삭으로 등장한 에바


마지막으로 에바를 외면한 우리는 바로 영화를 본 관객, 즉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이다.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이상하게 여길법한 수많은 요소들을 무시하거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예를 들어, 우리가 영화를 통해 알 수 있는 케빈의 출생 과정에 대한 것은 '피임을 하지 않은 채 관계를 가진 것'과 '케빈을 임신한 것', 이 두 가지뿐이다. 이 두 사건 사이에 어떻게 에바가 결혼과 출산을 하기로 결정한 것인지, 그 과정에서 에바의 감정 변화가 어땠는지, 여행가라는 직업과 직장은 어떻게 하기로 했는지, 어떠한 관심도 가지지 않은 채 ‘아 결혼했나 보구나’로 납득해버리고 만다.

'Legendary Adventurer'

이뿐만이 아니다. 에바는 작성한 책이 서점 한 면에 크게 걸릴 정도로 유명한 여행가이다. 하지만 여행가라는 직업은 결혼, 임신, 출산이라는 단어들과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녀가 벽면 전체를 지도로 도배할 정도로 사랑하는 직업을 어떻게 했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에바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는 프랭클린

또한, 케빈이 에바를 고립시키는 방식은 오늘날 '가스라이팅'이라 불리는 세뇌 방식과 결이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우리는 케빈이 에바를 독차지하기 위해 사용한 방식에는 어떠한 고민이나 논의도 없이 그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원인과 '가정, 사회에서의 고립'이라는 결과에만 집중한다.


영화의 시작


영화 <케빈에 대하여>는 1차적으로 '에바'라는 여성이 겪는 폭력적/차별적 상황들을 보여주며, 이에 어떠한 관심도 가지지 않는 '에바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폭로한다. 뿐만 아니라 영화는 더 나아가 영화를 본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 여성 '에바'가 아닌 '사이코패스 케빈의 엄마'가 겪는 현상에만 집중하게 함으로써 역으로 여성이 겪는 폭력에 어떠한 관심도 가지지 않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까지 폭로한다. 즉, <케빈에 대하여>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진정으로 시작된다. 영화의 출발 지점은 스크린에 영화의 제목이 나올 때가 아닌, 스크린이 꺼지고 영화의 제목에 있는 '우리'가 케빈에 대하여 이야기를 시작하는 순간인 것이다.


'로 대 웨이드' 판결 폐기 관련 The New York Times 기사 일부 발췌


2022년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49년 만에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했다. ‘로 대 웨이드’는 1973년 여성의 임신 중단 권리가 미국 헌법에 의해 보호받아야 한다고 했던 판결이다. 테이트 리브스 미시시피 주지사는 대법원 판결 직후 이를 환영하며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불의 중 하나를 극복하도록 국가를 이끌었다"라고 평했다. 또한, "이번 판결은 우리가 더 많은 아이들과 유차, 성적표, 스포츠 경기 등을 볼 수 있게 하고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오늘은 기쁜 날"이라고 밝혔다.

 이들에게 묻고 싶다. 케빈은 세상에 나올 준비가 되었는가? 세상은 다른 사람을 죽이지 않을 아이로 키울 준비가 되어있는가? 영화가 개봉한 지 10년이 넘은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케빈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이제는 진정으로 우리는 케빈에 대하여 이야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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