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성, 친환경 그리고 지속가능성을 향한 디자이너의 고민이 담긴 곳
울의 황학동. 이곳은 ‘황학동 = 주방 가구 거리’라는 인식이 가장 먼저 떠오를 만큼 40여 년 세월을 품은 서울의 대표적인 상권이다. 중고 가구가 높이 쌓인 미로 같은 황학동 거리를 지나다 보면 골목 한쪽에 이번에 소개하는 그 가게 원써드가 나타난다. 원써드는 지역성, 친환경 그리고 지속가능성에 박선영 디자이너의 고민과 실험이 가득 드러나는 공간이다. 특히, 제조업에서 배출하는 탄소가 전체 탄소 배출량의 1/3을 차지한다는 것에 큰 문제의식을 느낀 박선영 대표는 불필요한 소비와 생산을 줄일 것을 제안한다. 디자이너로서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원써드를 채우는 모든 집기는 공간 반경 800m 이내 주방 가구 거리에서 공수한 중고 물품이며, 발품을 팔아 선별한 중고 가구와 소품들을 업사이클 디자인해 전시하고 판매한다. 이 외에도 환경에 해를 덜 끼치는 소비문화를 만들고자 전시와 커뮤니티 프로그램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카페라는 공간의 본질에도 충실해 시그니처 메뉴를 개발하고 근사한 음료 맛을 선보이기 위해 열정을 쏟는다. 이렇듯 원써드를 통해 펼치는 활동 하나하나에 진정성을 가지고 나아가는 박선영 디자이너를 만나 그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박선영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런던으로 유학을 떠나 디자인 경영을 공부했어요. 브랜드 전략, 경험 그리고 스토리텔링 등 디자인과 브랜드에 기반한 학문이었죠. 유학 생활을 마친 후에는 국내 광고 업계에서 크리에이티브 기획자로 실무 경험을 쌓았어요.
— 디자인 에이전시 디자이너 생활을 정리하고 독립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회사 생활에 점점 회의감이 들었어요. 영향력이 크지 않은 것들에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것 같았죠. 제 이름이 선영인데요. 우스갯소리로 선한 영향력의 줄임말이라고 말하곤 해요. 회사에 다닐수록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좀 더 빠르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일을 하고픈 마음이 깊어져 갔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간,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고 싶었고요. 그래서 결국 퇴사 후 원써드를 선보이게 되었죠.
— 그렇게 만든 원써드는 어떤 공간인가요?
영어로 원써드는 3분의 1을 의미해요. 새로운 물건을 제조하면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전체의 3분의 1이라고 하는데요. 이 사실이 제겐 상당히 충격이었어요. 3분의 1은 조금만 노력하고 의식하면 충분히 줄일 수 있는 수치에요. 이를 위해 소비자에겐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노력이 요구되죠.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물건에 애정을 갖고 오래 사용하는 적은 노력으로도 환경 보호에 기여할 수 있어요. 원써드에서는 이런 메시지를 캐주얼하게 전하고자 해요. 환경 보호가 거창할 필요는 없거든요.
— 공간을 채우는 요소는 모두 황학동에서 구했다고 들었어요.
황학동 주방 거리를 둘러보면 컵이나 중고 가구들이 잔뜩 쌓여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어요. 브랜드의 꼬불꼬불한 로고는 중고 물품이 잔뜩 쌓인 황학동 풍경에서 영감을 받았죠. 로고는 연속성을 의미하기도 해요. 한 번 사용된 물건들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 황학동에 쌓여 있는 중고 물품들의 소비 증가로 불필요한 제조를 줄이는 것.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를 헛되이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죠. 공간 안에 있는 테이블, 진열대, 벤치 등 모든 집기는 여기 황학동에서 구매한 중고 물품이에요. 제가 거리를 재보니까 매장 반경 800m 안에서 모든 물건을 가져왔더라고요. (웃음) 원써드는 최소한의 인테리어, 최소한의 추가공정, 최소한의 에너지, 최소한의 이동 거리, 최소한의 탄소 발자국으로 탄생한 공간이죠. 그리고 에디터님과 제가 지금 앉아 대화를 나누는 의자와 테이블은 물론, 원써드를 채우는 모든 가구와 테이블 웨어는 고객분들이 다시 재구매해서 집에서 사용하실 수 있어요.
— 가구들이 전부 중고였군요. 컨디션이 너무 좋아 전혀 인지하지 못했어요. 공간 자체가 쇼룸인 건가요?
네, 제 나름대로 ‘황학동 발품 수집샵’이라고 이름 지었어요. (웃음) 황학동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제 미감으로 셀렉한 물건과 거기에 또 저만의 디자인을 입혀서 선보이는 쇼룸이죠. 제가 디자인한 포스터도 판매하고요.
— 황학동에서 공간을 오픈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원써드를 통해 아름답고 여전히 쓸모 있는 물건을 좀 더 오래도록 사용해 불필요한 제조를 줄이자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어요. 이후에 이를 전할 장소를 물색했죠. 그러다 황학동 주방 거리를 알게 됐어요. 거리 곳곳에 여전히 쓸만한 중고 물품이 높게 쌓인 풍경은 원써드가 전하려는 이야기에 설득력과 당위성을 더해주었죠. 신당역에서 원써드까지 걸어오시는 분들은 황학동 주방 거리를 지날 수밖에 없는데요. 원써드를 찾아 오는 여정과 카페 내부의 경험을 통해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임팩트 있게 전달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카페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곳에 모험을 한거죠.
— 여러 고민 끝에 이곳에 자리 잡게 됐군요. 그렇다면 많은 분이 공간을 찾아주고 계신가요?
거리 자체가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이 아니에요. 아직은 고객층이 얇은 걸 체감하고 있죠. 요일별 방문객 수의 편차도 크고요. 초기에는 단순히 신상 카페라는 이유로 찾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어요. 다행인 것은 원써드가 전하는 메시지를 보러 오시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에요. 같이 오신 분에게 브랜드 스토리를 설명해주시는 분도 있고요. 조금 더디더라도 꾸준하고 진솔하게 메시지를 전한다면 결국 찾는 분들이 알아주신다는 것을 몸소 배우고 있죠.
—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공간 디자인에는 어떻게 드러나나요?
우선 화려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브랜드 가치를 온전히 전하기 위해 ‘최소한의 공정, 최소한의 새 제품’을 인테리어 콘셉트로 잡았죠. 좋은 커피 맛을 위한 커피 머신을 제외하고는 모두 중고로 채웠어요. 참고로 이곳은 기존에 창고로 사용됐던 공간이에요. 그래서 너무 차갑게 느껴지지 않도록 목재로 마감을 추가했죠. 그 외에는 주방 기구로 만든 램프, 설치 작품, 벤치, 주방 작업대 등을 추가해서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죠. 요즘 카페들을 보면 의도적으로 낮은 테이블을 놓아 작업하기 어렵게 만든 곳이 많아요. 그런데 저는 원써드에서 작업하는 분들 보는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 공간에서 머무시는 분들이 편안하게 있다 가셨으면 하는 바람에서 테이블이나 의자는 제가 직접 다 써보고 편안한 것들로 골랐어요.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