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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K Aug 27. 2022

세상과 마주하기

인생의 제2막에서

 얼마 전, 나는 인생의 제2막을 시작했다. 정들었던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시 모 구청으로 첫 발령을 받았다. 이제는 학생의 신분이 아닌 사회인으로서 세상과 마주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사실 나와 같은 중증 장애인들이 세상과 마주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내가 대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도 그랬다. 합격했다는 기쁨도 잠시, 과연 졸업까지 마칠 수 있을지 걱정부터 들었다. 모든 게 처음이었고 휠체어를 타고 있었기에,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두렵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덕분에 내면의 상처를 많이 치유했다. 그보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세상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2년간의 대학생활을 끝냈을 무렵, 코로나가 터졌다. 특히 코로나는 중증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가혹했다. 원래 학교에 가는 날 빼고는 외출하기가 힘들었는데, 코로나가 터진 이후에는 외출한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고,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나를 점차 잠식해왔다. 한동안 가족들하고만 대화를 하다 보니 사회성도 크게 떨어졌다.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고 있는 느낌이었지만, 언젠가 빛을 볼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힘든 시기를 거치고, 지지난주 금요일에 첫 출근을 위해 이동하는데 마음이 벅찼다. 임용장을 받고 발령받은 과로 이동하여 새로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인사를 나누면서도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행동으로도, 말로도 나를 잘 챙겨주시는 것이 느껴져서 걱정을 한시름 덜었다. 특히 우리 팀원분들은 내가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바쁘신 와중에도 사소한 것까지 꼼꼼하게 알려주셨다. 그리고 졸업하는 내게 팀원분들이 키보드랑 무선 마우스도 선물해주셨는데, 참 감사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이번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업무도 시작했다. 전화 응대도 해보고, 공문도 처음으로 올려봤다. 물론 전화 응대는 결코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주무관으로서 시민들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근무한 지 몇 주도 안 되었지만, 매일 출근하며 세상과 마주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 기적과도 같다. 희귀병의 증세가 더욱 악화되었다면, 아마 공무원으로서의 삶도 꿈꾸지 못했을 것이다. 인생의 제2막을 시작한 지금, 힘든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세상과 마주해보려 한다. 더는 피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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