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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착각

전사 성과 공유회 후기

by 기획하는 족제비


※ 이 글은 '2025년 6월 근황' 글과 이어진다.


올해 초, 회사에서 ‘핵심인재’로 선정되며 본업 외에 특별한 프로젝트를 맡게 됐다. 제품 기획자, 영업 담당자, 개발자 등 6명이 한 팀이 되어, 사내 여러 시스템과 부서에 흩어진 고객·계약 데이터를 하나로 통합하는 과제였다. 사내 HR 솔루션들은 최근 몇 년간 빠르게 성장했고, 취급하는 제품군은 어느새 복잡하고 다양한 포트폴리오로 확장됐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데이터 파편화’라는 부작용이 나타난 게 프로젝트의 시발점이었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행 과정은 복잡했다. 기술적 제약, 부서별 이해관계, 보안 이슈 등 현실적인 난관이 줄줄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번 글은 그 과정을 풀어내고, 내가 현장에서 배운 ‘데이터 통합과 조직 설득’ 사례를 공유하는 게 목적이다. 특히 사내 프로젝트를 맡아 부서 간 협업, 발표, 이해관계자 설득까지 경험해야 하는 사람에게 이 이야기가 도움이 될 것같다.



파편화된 데이터, 단절된 고객 경험

고객데이터 통합시스템.png

우리 회사는 B2B SaaS 제품을 세일즈 리드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시켜 왔다. 제품 포트폴리오가 다각화되고, 조직 개편이 잦아지면서 리드 관리도 부서별·시스템별로 따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잠재 고객 검증부터 계약, 사용, 재계약과 업셀링까지 이어지는 데이터가 여러 곳에 흩어지게 됐다.


이로 인해 영업팀이 신규 리드에 제안을 하거나 기존 고객을 대상으로 셀링을 시도하려면 CRM·스프레드시트·제품 관리자 화면을 오가야 했다. 일부 정보는 권한 문제로 접근조차 어려워, 다른 부서에 요청해야 했다. 이렇게 시간을 소모하다 보면 이미 기회는 지나가는 경우가 잦았다. 그 결과, 업셀링 기회를 놓치거나 이탈 징후를 제때 감지하지 못하는 등 매출 손실로 이어지기도 했다.


우리 프로젝트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됐다. 고객 데이터를 한 화면에 통합해, ‘지금 이 고객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즉시 이해할 수 있게 만들자는 것이 목표였다. 그리고 이 목표는 단순해 보였지만, 그 속에는 복잡한 기술적·조직적 과제가 숨어 있었다.



25주년 행사, 전사 발표

우리 팀은 결국 문제를 풀었다. 여러 이해관계자와 긴밀히 소통하며 흩어진 데이터를 통합했고, 실제로 Txt to SQL이 동작해 자연어로 데이터를 출력·분석하는 기능을 사용자 경험으로 구현했다. 성과물은 명확했고, 현업이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 성과를 전사에 공식적으로 알리고, 더 많은 조직이 이 변화를 체감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마침 회사 창립 25주년 행사가 다가왔고, 전사 규모의 청중 앞에서 프로젝트의 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이 무대는 단순한 성과 발표로 끝날 수 없었다. 전사 공유회는 ‘우리 팀이 이렇게 고생했습니다’를 전하는 자리가 아니라, 수많은 이해관계자에게 프로젝트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선포하고, 그 가치를 입증하는 장이기 때문이다.


발표를 듣는 청중은 다양했다. 결과물을 실제로 사용할 영업·마케팅팀, 프로젝트 완수를 위해 협업해야 할 정보보호팀과 데브옵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경영진과 총수까지. 발표의 성패는 청중에게 “이 변화가 나에게 어떤 긍정적 영향을 줄까?”라는 상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에 달려 있었다.



치열했던 준비 과정:
누구를 만족시킬 것인가?

목표는 명확했다. 하지만 준비 과정은 쉽지 않았다. 팀원 모두 본업이 있는 핵심인재였기에 낮 시간에는 시간을 맞춰 회의하기 어려웠고, 이 때문에 발표 자료 작업은 주로 늦은 밤에 이루어졌다. 다섯 번 넘게 자료를 갈아엎으며, 메시지와 흐름을 다듬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위기는 ‘넘쳐나는 피드백’이었다. 임원과 리더들로부터 자료에 대한 코멘트가 쏟아졌다. 어떤 피드백은 방향이 상충했고, 어떤 피드백은 내가 모르는 제약사항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처음엔 모든 의견을 반영하려 애쓰다 보니, 메시지가 점점 흐려졌다. 자료는 깔끔해지기는커녕, 여러 사람의 단편적인 생각이 섞인 ‘누구의 것도 아닌’ 결과물이 되어갔다.


하지만 결국 든 생각은. 이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깊게 들여다본 사람은 바로 나라는 사실. 청중의 반응을 예측하고, 발표의 핵심 메시지를 지켜야 하는 것도 결국 내 몫이었다. 그래서 피드백을 정답이 아니라 신호에 가깝게 받아들였다. 어떤 부분이 불명확하게 느껴졌는지, 왜 그런 의문이 나왔는지를 파악해, 메시지의 뼈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반영하기로 했다.


이 전환 이후 발표 자료는 훨씬 단단해졌다. 핵심 청중이 누구인지, 그들이 듣고 싶은 언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하며 수정 방향도 일관성을 띄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현실 앞에서, 오히려 ‘누구를 만족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에 집중한 것 같다. (ROI가 가장 높은 고객은 누구인가?)



발표를 마치고 얻은 5가지 교훈

쉽지 않은 준비와 떨리는 발표가 끝난 후 힘든 만큼 값진 경험과 교훈이 남았다.


1. 아무리 힘들어도 결국 지나가고, 경험으로 남는다.

- 결실을 맺기 전까지는 힘들고 회의감이 들 때가 많지만, 끝내고 나면 모든 과정이 경험이 된다.

- 고통은 순간이고, 그 과정을 통과하며 얻은 역량과 통찰은 오래 남는다.


2. 발표든 공연이든, 리허설이 가장 확실한 '안정장치'다.

- 반복 연습은 순서를 익히는 것을 넘어, 돌발 상황에 대응할 심리적 안전망이 된다.

- 특히 실제 환경과 유사한 무대 리허설은 발표 당일의 긴장을 크게 줄여준다.


3. 모든 피드백을 수용할 필요는 없다.

- 제품이든 전략을 기획할 때와 똑같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건 당장의 피드백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피드백이 나온 '이유'를 고민하는 것이다. 표면적인 코멘트가 아닌, 그 피드백이 나오게 된 근본적인 원인(예: 메시지 불명확, 논리적 비약)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것이 핵심이다.

- 그리고 대부분은 기획한 사람이 당일 내용을 듣고 리뷰하는 사람보다 정보와 맥락을 더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 발표 장표 하나하나에 대한 디테일화를 요구받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그들이 말한 원인을 고민하며, 전체적인 발표의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4. 제한된 시간 속 임팩트는 '수치'와 '추상화'에서 나온다.

- 구체적인 '숫자'로 신뢰를 주고, 복잡한 과정을 이해하기 쉬운 '개념(추상화)'으로 전달할 때 청중은 더욱이 관심을 가진다.

- 추상화된 개념은 맥락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청중에게서 약간의 '불편감'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 불편감은 사람을 각성 상태로 만들고, 상대방에게 질문하거나 공격하고 싶게 만든다.

- 오히려 그런 것들이 짧은 피칭에선 뇌리에 강하게 박힌다. Q&A 세션이 있다면, 앞 부분에서 의도적인 허점이나 불편감을 유도하고, 질문에서 상세히 설명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5.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다.

-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가장 만족시켜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청중(집단)을 정하고 그들의 언어와 관심사에 맞춰 메시지를 최적화하는 것이 발표의 성공 확률을 높인다.

- 공연 기획하든, 교육 자료를 만들든, 제품을 기획하든, 발표를 기획하든 중요한 건 Target Audience. 우리의 메시지는 누구를 위한 것이고, 누구에게 영향을 미쳐야하는가? 이것이 가장 중요하게 고민해야 하는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비전데이 발표.png

이번 발표는 단순히 프로젝트의 성과를 공유하는 자리라기보단, 개인적인 목표이자 도전이자 성장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올해 상반기도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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