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하게 늘어지게
토요일 오전, 남편과 아이들이 시골 할머니댁으로 갔다. 출발 시각 9시 50분. 철커덩 현관문이 닫히고, 시끌시끌했던 거실이 텅 비게 되자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집청소도 하고,
수영장도 가고,
못 봤던 책도 읽고,
성적 처리도 모두 끝내고,
글도 써야지.
아차차 치맥도 해야지!
계획을 멋지게 세운 후 일단 소파로 갔다.
거기에서 2시간 동안 옴짝달싹도 안 했다.
허리가 뻐근하고, 배도 고파서 잠시 일어나 숨겨놨던 컵라면을 하나 해치운 후 다시 소파와 합체가 되어 몇 시간을 핸드폰만 들여다보았다.
점점 뜨거워지는 핸드폰을 잡고 있으니 이제 슬슬 일어나서 처음의 계획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시간이 늦었으니 수영장은 패스, 책은 나중에 읽고, 성적 처리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 내일로 미룬 후
청소를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지금이 청소할 최고의 시간!이라는 흐뭇한 생각으로 집을 둘러보니 아침만 해도 멀끔했던 거실이 내가 오전동안 늘어놨던 허물들로 너저분했다.
일단 정신을 차리고, RPM을 서서히 끌어올렸다.
오후 두 시가 넘도록 널브러진 이부자리를 먼저 정리하고, 설거지, 빨래, 아들 딸 책상 정리, 신발장 정리 등등 자질구레하지만 눈에 거슬려서 안 할 수가 없는 것들을 정리했다.
싱크대에 널려 있는 컵도 씻고, 군데군데 오래 묵힌 요리 자국들을 손톱을 세워 지우고, 물때 손때 자국 있는 식탁도 닦았더니 땀으로 온몸이 번들번들하다.
바닥 청소기, 물걸레 청소기를 차례로 돌린 후 조금 바보 같은 로봇청소기까지 돌리고 나니 2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사실 남의 눈으로 봤을 때 별반 차이가 없었을 테지만 내 눈에만 보이는 사이사이 먼지가 사라지고 멀끔한 방들을 보니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다.
그리고 다시 소파와 재회했다.
다른 것은 못했어도 청소 하나만큼은 훌륭히 잘 해냈다! 나 자신에게 칭찬을 퍼부으며 감자 4알을 깎아 소금 설탕 듬뿍 넣고 푹푹 쪄서 영화 보면서 야금야금 먹으니 배부르고 흡족했다. 감자로는 좀 모자란 기분이어서 나중에 치킨을 시켜 맥주까지 먹으니 어느새 밤이 되었다.
맨날 떠들고 아웅다웅 다투던 세 사람이 없으니 잠시 허전했다가 다시 혼자서 잘 놀았다.
혼자 있는다고 소란했던 마음이 고요해지진 않는다.
혼자 있을 때만 할 수 있는 것을 완벽하게 즐기지도 않는다.
조금은 불편한 마음으로
조금은 흐트러져서
짧은 일탈, 그것으로 됐다.
먹고 나면 이도 닦아라
깨끗하게 씻어라
누워서 티브이 보지 말아라
핸드폰 많이 하지 말아라
일찍 일찍 자라.
아이들에게 매일 하는 잔소리, 본보기로 보여줘야하니부모가 되면서 더 스스로에게 엄격해졌다. 가끔은 느슨하게 살아도 되지 않나?
느슨하게 늘어져도 되는 시간은 가끔씩 필요한 법!
잔소리하는 사람, 눈치 주는 사람, 눈치 보게 되는 사람이 없어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그 시간자체로 완벽한 주말이다!
곧 도착이라는 문자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