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여름이면 외사촌, 이종사촌들이랑 외갓집에서 만나는 것이 제일 기대되는 이벤트였다. 서울에 사셨던 이모와 인천, 경기도에 사셨던 외삼촌들이 휴가 기간을 맞아 고향집(나에겐 외갓집)을 찾으셨기 때문에 덩달아 근처에 살았던 우리 가족들도 여름휴가를 같이 보냈다. 농사를 짓던 우리 부모님께선 여름이라고 따로 쉬는 날을 받아 휴가를 보내시진 않았어도 이모, 외삼촌들이 계시는 날엔 외갓집에서 같이 밥을 먹고, 하루는 근처에 계곡에 가서 고기를 구워 먹곤 했다.
보통 여름방학이 되고 1-2주 지난 8월 초에 오셨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나는 그날이 기다려졌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놀러 가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내 또래의 사촌들과 어울려 놀 생각에 그랬다.
이모는 딸만 셋이었는데, 나와 같은 나이대의 자매들이어서 지역은 달라도 성별과 나이에서 오는 공감대로 처음의 어색함은 금세 없어지고 잘 어울려 놀았다. 우리랑 같은 동네 사시는 큰 외삼촌네에는 2명의 오빠, 둘째 외 삼촌네는 나보다 7살 어린 사촌 여동생과 남동생, 막내 외 삼촌네도 비슷한 나이 또래의 어린 동생이 3명이나 있어서 그리 넓지 않은 외갓집이 시끌벅적 요란한 어린이들로 북적거렸다.
그 시대에 핸드폰 게임도, 멋진 카페도 없었지만 다 모이면 열 명 넘는 아이들은 같이 있기만 해도 이야깃거리가 넘쳤다. 동네 놀이터를 점령하고 놀았고, 외갓집 앞을 졸졸 흐르는 개울에 발만 담가도 좋았다. 외할머니께서 쪼개 주신 수박을 먹거나 갓 찐 옥수수를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도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다.
도시에서 온 이종 사촌 언니와 동생은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들고 왔고 한참 어린 외사촌 남동생들은 형 누나들에게 까불어서 쫓아다니기도 하고, 얌전했던 여동생들은 머리를 빗어주거나 업어 주면서 놀았다. 나 역시 작은 체구였지만 더 작았던 동생들을 보살펴 주는 일은 나도 이제 한 몫한다고 이모, 외삼촌들에게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친했던 시기는 딱! 초등학교 때까지였다.
중학생이 되면서 이종 사촌들은 잘 오지 않았고, 조금 컸다고 조금만 가면 지척이었던 외갓집을 나도 가기 어색했기 때문이다. 중학생이 되면서 사는 곳에서 오는 차이가 두드러져서 그랬을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기엔 머리부터 커져서 그랬나 보다. 지금 가끔 명절에 잠시 스치는 정도로 보는 외사촌, 이종사촌들과 그때 이야기를 나누진 않아도 마음속엔 어린 시절 여름휴가를 같이 보낸 추억이 사진처럼 자리하고 있다.
3년 반동안 멕시코에서 지냈던 동생네가 이번 여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직 일이 마무리되지 않은 동생은 입국은 같이 했지만 금방 다시 멕시코로 돌아갔고 올해 말쯤 귀국한다고 했다. 돌아온 올케와 조카들은 원래 살던 도시에서 2학기부터 학교에도 다닌다고 했다. 아직 배로 부친 짐들이 도착하지 않아 어수선할 올케에게 연락하기가 민망하여 연락하지 않다가 방학이 되어 연락을 했더니 우리가 장수 집에 가는 동안 올케도 아이들을 데리로 온다고 했다. 작년 잠시 휴가차 들렀던 동생네를 잠깐 본 후 1년 만에 제대로 보는 거라 우리 아이들도 기대가 되었던지 언제 외숙모 오냐고 몇 번을 물었다.
딸이 말했다.
-엄마! 친구들은 방학 지나고 오랜만에 봐도 어색하지 않은데 친척들은 오랜만에 보면 왜 어색할까?
오랜만에 볼 친척 동생들을 만나기 전 딸이 한 말이 재미있었다.
-처음엔 그래도 금방 친해지잖아. 어색한 것은 잠깐이고 금방 재미있게 놀 것 같은데?
나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오랜만에 보는 조카들이 얼마나 컸을지 기대도 되면서도 한편으론 고모를 피하고 어려워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긴 했다.
그런 걱정은 잠깐! 아이들은 서먹했던 약 10분의 시간이 지나자 마치 어제 봤던 사이인양 4년 가까운 공백을 뛰어넘어 다시 어울려 잘 지냈다. 바라보기만 해도 재미있었나 보다.
딸은 3살 어린 여동생과, 아들은 1살 많은 형과 떨어질 줄을 몰랐다. 아들은 엄마 대신 형을 연신 부르고, 딸은 여동생과 방으로 쏙 들어가면서 엄마는 출입금지란다.
어색함을 풀기 위해 간식도 많이 사고, 장난감도 사주었지만 간식과 장난감은 잠시, 자기들끼리 쑥덕쑥덕 모여 이야기하고 밖에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 티브이도 보면서 한시를 쉬지 않고 떠들었다. 덕분에 나는 편했다. 엄마만 찾던 아이들이 이제 조카들 이름만 외쳐대니 오히려 서운하기도 했다.
조카들과 지냈던 4일 동안 아이들은 그동안 못 놀았던 시간을 메우려는 듯 더욱 친밀해졌고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니 아쉬워했다. 어린 시절의 나처럼.
그 시간이 길지 않을 것을 알기에 방해하지 않았다.
크면 클수록 친척들과 노는 것은 매일 보는 친구와는 분명 달라짐을 이미 나도 겪었기 때문에 까닭 없이 좋은 지금이 얼마나 귀한 시간임을 알았다. 옆에서 맛난 것 챙겨주고, 잔소리는 줄이는 것이 내 할 일이었다.
나도 오랜만에 보는 조카들이, 벌써 커버린 것이 아쉬웠던 휴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