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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척

by 다시

주말이라 아침에 늘어지게 잤다.

간밤에 비가 왔었는지 살짝 열린

베란다 창문 틈새로 물이 들어와서 닦았다.

먼저 일어난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잘 놀고 있어서

다시 침대에 비스듬이 누웠다.

뭔가 빠져나간 느낌 조금.

모르는 척한다.


기어코 다시 일어나서

간단히 집안일을 하고 커피를 한잔 뜨겁게 탔다.

달달하고 쌉쌀하게 목을 타고 내려갈 때 따뜻했다.

어제 읽다 만 책을 펴고 옆엔

아직 반이나 남은 커피가 남아있다.

그런데 뭔가 모자란 느낌 조금. 아닌 척한다.


산허리를 감고 있던 구름이 어느새 물러나고

여름에서 가을로 변한 공기가 온 동네를 휘감고 있다.

바람이 방안 가득 들어와서

건조대에 늘어놓은 빨래를 건들다가

거실에 앉아 놀고 있는 아이들 머리칼도 흔들다가

이윽고 침대에 누운 나에게까지 왔을 때

시원했다.

뭔가 서늘하게 빈 느낌.


모른 척 하고 싶어도 분명한 것.


네가 없다.


가슴 속에 울음이 가득한데

아직 빠져나올 구멍이 없어

슬픔을 터질듯 담고 있는데

문득 문득

허전할 때, 서늘할 때, 그리울 때,

네가 조금씩 빠져나가는 걸 느낀다.


어린 시절 새까맣게 탄 얼굴로 내 곁에 있던 네가.

어리숙하고 철없이 예뻤던 때 늘 내 곁에서 웃던 네가.

좀 더 커서 억울하고 불안한 세상 속

내 자리를 못 찾고 방황할 때

내곁에서 같이 손잡고 걷던 네가 없다.

온전하게 솔직할 수 있었던

네가 없는 이 세상에서

나는 여전히 살고 있다.

매일을 살고, 주말에 쉬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온갖 감정에 휩싸인 채 더없이 충실한데

이토록 허전하고, 문득 그리워지는 이유는 분명하지만

모른 척한다.


네가 살아있는 듯.

전화를 걸면 언제고 받을 것처럼.

농담을 걸면 껄껄 웃으며 답할 것처럼.

모르는 것처럼... 당분간은 그렇게 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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