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라

언어는 알라딘의 램프가 될 수 있을까?

by 영업의신조이

4화.

말하라


"언어는 알라딘의 램프가 될 수 있을까?"


‘말하는 대로 이뤄지는’ 세계의 감정적, 철학적 메커니즘


한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이 있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성적은 늘 한 걸음 모자랐다. 그는 속으로 수백 번 다짐했다.


“이번엔 꼭 1등급 받을 거야.”

그러나 그 다짐은 언제나 조용히 가슴속에서 묻혔다.


친구들이 “어떻게 될 것 같아?”라고 물으면,

그는 늘 “모르겠어. 그냥 열심히 해보는 거지 뭐.”라며 얼버무렸다.


그의 꿈은 말로 꺼내진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발화된 적도 없었다. 결국 그는 1등급의 문턱 앞에서 매번 주저앉았다.


한편,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던 또 다른 청년은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자신에게 말했다.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다. 내가 원하는 회사는 나를 원하게 될 거야.”


처음엔 부끄럽고 민망했지만,

어느 순간 그 말은 단순한 자기 암시가 아닌 ‘확신의 언어’가 되었다. 그는 자소서를 쓰고 면접을 준비할 때도, 글과 말의 결이 달랐다. 그의 말에는 방향성이 있었고, 긍정적 감정이 실려 있었다. 결국 그는 자신이 말했던 바로 그 회사에 당당히 입사했다.


말에는 방향이 있다.

방향이 있는 말은 결을 갖는다. 그리고 결을 가진 말은, 현실을 움직이는 물리적 힘이 된다. 그것이 바로 ‘언어의 자기장’이다. 말은 자석처럼 주변을 끌어당긴다. 그 자기장 안에 확신과 감정이 담기면, 말은 단순한 표현이 아닌 ‘현상’을 만드는 도구가 된다.


한 여자가 있었다.

그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고백하지 못하고 몇 년을 기다리고 바라만 보았다. 언젠가는 전할 수 있겠지, 하며 속으로만 수천 번 사랑을 되뇌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 “왜 그때 말하지 않았냐”라고 누군가 묻자,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말하지 않은 사랑은 후회의 언어로 바뀐다.” 말하지 않은 감정은 결국 말로 돌아와 자책이 된다.


그러니 사랑한다면,

지금 용기를 내어 말해야 한다. 말은 위로이자 명령이다. 내 안의 감정에 허락을 내리는 강력한 선언이다.


한 직장인이 있었다.

그는 동료보다 두 배는 노력했지만 늘 주목받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말하지 않았다. “제가 이 프로젝트를 주도했습니다.” “저에게 이런 아이디어가 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누군가 인정해 주길, 알아봐 주길 바랐다 그리고 기다렸다. 하지만 이 세계는 그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말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권한은 선점하는 자의 것이다. 말은 곧 존재의 확장이다. 스스로의 가치를 외치는 자만이, 공간을 얻는다.


그리고, 암 투병 중이던 여성이 있었다. 그는 병상에 누워 매일 말했다.


“나는 낫는다. 내 몸은 회복되고 있다.”


처음엔 주변에서도 “정말 그럴까?” 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그 말은 단순한 희망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 말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채소 위주의 식단을 시작했고, 하루 한 번은 무조건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었다. 관련 책과 논문을 찾아보았고, 주위 지인들에게도 방법을 묻고 찾아다녔다. 그 말이 행동을 만들었고, 그 행동이 이제는 그녀의 삶을 되돌렸다. 그녀는 끝내 완치 판정을 받았다.


말은 이처럼 ‘의도’이자 ‘시작’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감정의 에너지를 통해 더 강한 진동수를 가지게 된다. 슬프게도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마음속에만 품고 있다. 말하지 않는다. 아니, 말하는 방법을 모른다. 마음은 있되, 입을 통해 세상에 드러내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꿈은 자라지 못한다. 말은, 꿈이 자라는 언어의 토양이다.


말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추상적인 바람은 자주 흩어진다. 대신 감정의 디테일이 들어있는 말은 밀도가 있다. “그냥 행복하고 싶어”가 아니라 “나는 아침 햇살이 스며드는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며 그 향기로 시작하는 하루를 살고 싶어”여야 한다. 감정이 구체화될 때, 상상은 비로소 ‘시나리오’를 갖게 된다. 그 시나리오는 언어로 구성된다. 그리고 언어가 생긴다는 건, 그 꿈을 말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이 실현 가능성의 지평선 위에 올라섰다는 것이다.


생각만으로는 부족하다.

감정만으로도 부족하다. 그것들이 말로 옮겨질 때 비로소 세상과 연결된다. 말은 내가 나를 향해 내리는 첫 번째 결정이다. 그리고 그 결정은 현실을 부른다. 세상은, 준비된 언어에 응답한다.


결국,

언어는 알라딘의 램프처럼 작동한다. 그러나 그 램프는 기도처럼 조용히 문지른다고 응답하지 않는다. 그것은 감정의 불꽃으로 감싸진 꿈이 언어를 타고 나올 때, 마침내 진이 깨어난다. 말은 소원을 부르는 주술이다. 그 주술은, 상상과 감정의 밀도로부터 태어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밀도를 높이는 훈련을 해야 한다.


감정적으로, 긍정적으로 꿈을 상상하라.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은 배경과 시나리오, 세부적 환경을 그릴 수 있다는 뜻이다. 배경을 그릴 수 있다는 건 언어로 묘사할 수 있다는 의미이고, 언어로 묘사할 수 있다는 건 발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말할 수 있는 꿈은 살아 있는 꿈이다.


말할 수 있는 소원은 이미 반쯤 이루어진 소원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말해야 한다. 내 안의 알라딘 램프의 지니를 깨우기 위해, 세상에 향해 명령하듯 말해야 한다.



"신랑 신부는 검은 머리가 하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어려운 일이 있거나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서로 돕고 살겠습니까?"


"예~!"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