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ravis May 01. 2017

미디어 속 성 역할에 대한 두 번째 끄적임

남성의 눈물이 부끄럽지 않은 날이 올 것인가

최근 흥미로운 해외 CF를 한 편 봤다. 인도 광고였다. 사실 나에게 인도라는 나라의 이미지는 그렇게 좋지 못했다. 가능성은 있다지만 반대로 말해 아직 발전해야 할 곳이 많은 나라, 인권과 법치가 부재한 나라, 길거리는 어수선하고 동물들의 배설물로 너저분한 나라.. 나에게 인도란 나라는 그런 곳이었다. 그래서일까. 이 인도 CF를 보고, 인도라는 나라에서 이런 CF가 통할 수 있다니... 뒤통수를 한 대 제대로 맞은 느낌이었다. 적어도 인도가 이런 CF가 소구 될 수 있는 사회라는 점이 놀라웠다. 동시에 그간 내가 가진 인도에 대한 선입견이 부끄러워졌다.


"Why is laundry only a mother's job?"

그 광고는 인도 세제 광고였다. 설거지를 할 때 사용하는 상품. 당연히 여성들이 주 타깃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광고는 달랐다. 남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내레이션을 맡는다. 그 남자는 결혼해서 맞벌이를 하는 딸의 아버지다. 아버지는 회사일에 집안일까지 전담하는 딸의 어려움을 헤아린다. 남편은 TV를 보며,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지만 딸은 그럴 여유가 없다. 노년의 아빠는 반성한다. 그것은 집안일은 여자의 몫이라는 잘못된 인식에 기인했음을. 그리고 자신의 무관심이 그러한 인식을 고착화하는 데 도움을 줬음을 반성한다. "Why is laundry only a mother's job?" 왜 빨래는 엄마만의 몫인지 그 광고는 묻는다. 그리고 광고에서 아빠는 그간 잘못된 성 역할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자신부터 바뀌고자 다짐한다.

https://youtu.be/XHCYxeA7zj0


그런데 우리나라 광고엔 이런 문제 인식이 없다. 

우리나라 주방용품 광고의 주인공은 여전히 여성이다. 심지어 그 주인공 여성의 신혼부부 시절부터 할머니가 되기까지의 모습을 주방에서 구현한다. 한 여성의 인생을 주방이라는 공간에 가두었다. 우리들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아주 당연한 이야기 흐름 속에, 왜 여성만이 주방일을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설 자리조차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광고의 현주소다. 우리가 아무리 한강의 기적을 이룬 국가라고 해도, 여전히 주방만은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인도의 너저분한 길거리를 논할 자격조차 없다는 얘기다.

물론 이 광고가 무조건적인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회사의 존재 목적은 이윤 추구이며, 광고 역시 그러한 틀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공익광고가 아닌 이상, 광고에 그 무엇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지 모른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이 광고가 오늘날 한국사회의 단면을 담아냈고, 그에 어떠한 반론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또 21세기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큰 불편함 없이, 자연스럽게 소구 되기에 안타깝다는 것이다. 

https://youtu.be/Zu4npmKgPCo


남자들이 한 가지 간과하는 것이 있다. 성 역할의 고착화는 정작 남자들에게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고?


여성에게 여성적인 것을 강요하는 순간, 자신들이 온갖 '남성적인 것'을 홀로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남자는 눈물을 흘리고 싶어도 어디 가서 맘대로 울지도 못한다. 남자의 눈물은 쪽팔린 것이니까. 서운한 것을 얘기하고 싶어도 그럴 수도 없다. 남자가 속 좁다는 말 들을까 그냥 삭힌다. 징그러운 벌레를 봐도, 소리를 지를 수도 없고, 태연한 척 잡아내야 한다. 남자니까.. 즉, 여자에게 여성성을 강요하는 건, 동시에 남성에게 남성성이란 프레임을 씌우는 것과 동일한 거다.


그래서 페미니즘 이슈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남성과 여성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미디어 속 젠더 이슈를 남녀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 모두가 직면한 사안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미디어 매체의 프레임에 대한 짧은 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