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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ve Feb 01. 2023

Cher의 "Believe"  

 책 <Glitter Up the Dark>을 읽고


면접 끝나고 심심해서 오랜만에 책을 잡았다. 비문학 한권을 완독한 것이 얼마만인지...ㅎ 간만에 학부 때 읽은 논문 느낌도 나고 참 좋았다.







지난번에 해리 스타일스 포스팅을 하면서 언급한 미국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Cher의 "Believe"가 잠시 얘깃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그 노래를 최근에 한 다큐멘터리에서 접했다고 하니까 미국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아 Believe 알지! 그건 걍 'gay anthem'이지!" 대강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 그랬다.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LGBT에게 유독 인기가 많은 노래가 있다. 2010년대의 LGBT anthem이 Born This Way라면, 세기말의 LGBT anthem은 단연 Cher의 "Believe"였다. 


마침 어떤 노래가 LGBT anthem이 될 자격을 얻는지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볼 만하다고 여기던 참에, 책<Glitter Up the Dark: How Pop Music Broke the Binary>을 우연히 도서관에서 접하게 되었다. 저자 Sasha Geffen은 LGBT anthem의 자격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대신 그는 음악이 가진 본질적인 양성성에 대해 역설한다. "Why music has become a unique cultural incubator for the expression of gender transgression?" "Why is music so inherently queer?" 저자에 따르면, 음악은 '단 두개의 성별이 존재한다'는 미신을 신봉하는 부계사회에 대항하는 해방구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리고 그 시발점은 사실상 미국 팝의 역사가 시작된 시점과 동일하다. 


저자는 "Believe"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Cher를 'cybernetic goddess'라고 칭한다. 눈에서 흰 섬광이 번득이는 표정없는 얼굴과 오토튠이 들어간 목소리는 Cher를 사이보그처럼 보이게 만든다. 영화 매트릭스가 상징하는 세기말 그 시절, 웹의 등장은 남성과 여성의 중간, 인간과 기계의 중간에 있는 전혀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Believe"는 세기말 등장한 기계적인 양성성을 시각적으로, 특히 청각적으로는 최초로 구현해냈다. 여기에 더해 Cher의 중성적이면서도 파워풀한 목소리, 이에 대비되는 구슬픈 가사가 더해지면서 노래는 전통적인 LGBT anthem의 공식에 충실해진다. 아마도 이것이 세기말을 살던 LGBT들이 "Believe"에 더 쉽게 감정이입할 수 있던 이유이지 않을까?




* <Glitter Up the Dark: How Pop Music Broke the Binary>은 미국 로큰롤의 시작부터 비틀즈의 British Invasion, 펑크, 디스코, 신스팝, 그런지, 일렉트로니카까지 미국 대중 음악의 방대한 역사를 다루는 만큼 시대를 풍미한 명곡들이 매우 많이 등장한다. 원래 알고 있던 곡도 있었고, 모르던 곡도 있었지만 이 책을 읽고 해당 노래의 의미를 알게 되며 놀랐던 순간들이 많다. 특히 기억나는 몇 곡들을 추천곡 형식으로 모아 따로 정리한다. 

Patti Smith - Gloria 

패티 스미스는 이성애자였으나 본인을 여성보다는 남성으로 인식했다. 남성이 되고자 하는 패티 스미스의 욕망을 "Gloria"의 화자에 투영해본다면 이 노래를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Tracy Chapman - Fast Car  

감미롭고 잔잔한 노래이지만 가사를 훑어보면 꽤나 슬픈 노래다. 시궁창 현실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파트너의 차 하나 뿐. 그리고 Chapman은 차를 몰고 있는 파트너를 여성이라고 상상할 충분한 여지를 남긴다. 얼핏 보면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상황과도 비슷한 노래.  


Frankie Goes to Hollywood - Relax

가사의 "come"은 발음이 유사한 다른 단어로 풀이될 수 있다.   


Frank Ocean - Nights

"Nights"에서 Frank Ocean은 무기력하고 연약하다. 노래 후반부에서 비트가 바뀐 후, Frank Ocean은 간난했던 시절, 마약과 섹스로 현실에서 도피하는 지금을 모두 회고한다. 작가 Sasha Geffen은 "Nights"의 중반부 고음을 두고  "his delivery becomes more tender, more vulnerable, (...) as if his memories and the way he feels about them could not quite fit within the parameters of acceptable male expression"라고 해석했다. Frank Ocean은 2012년에 커밍아웃한 성소수자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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