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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규정 Feb 25. 2022

언제쯤 그런 느낌이 오는지.

K의 일단 해 봐-미술·박물관 관람

'아는 만큼 보인다.',  '문득 어떤 느낌이 내게 다가왔다.'

예술 작품을 보거나 고전음악을 들을 때마다 두 문장 사이에서 고민한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도통 두 문장에서도 나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알고 싶다는 생각에 미술의 역사, 주요 작품을 설명하는 책을 여러 권 읽었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줄도 치고 시대 흐름에 따른 미술사의 발전 과정을 이해했다. 관련 책을 서너 권 읽고 ‘이번엔 다르겠지’라는 마음으로 여러 번 전시회를 찾아갔다. 특정 화가의 전시회라면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그 부분만 읽고 가기도 했다.   


시대 상황과 그 당시 화가가 처한 상황을 알아야 그림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왜 이렇게밖에 그릴 수 없었는지'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매번 실패했다. 벽에 걸린 그림 앞에 서면 별다른 느낌이 떠오르지 않았다. 오래 보면 달라질까 한참을 서서 뚫어져라 쳐다보기도 했지만 감흥이 없었다. 


‘무엇을 느껴야 하지? 어떤 게 떠올라야 하는 거지? 이런 생각이 작품을 그대로 보는 것을 방해하는 것인지도 몰라. 아무 생각 없이 봐보자.’ 대충 이런 의식의 흐름으로 작품 앞을 서성이다 옆의 작품으로 발길을 돌리다 보면 어느덧 출구에 도착했다. 


굳이 예술작품을 보고 고전음악(클래식)을 들어보려고 하는 이유는 내 마음의 풍요 때문이다. 시대의 거장이라고 하는 사람의 작품, 몇백 년이 지나도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음악에서 나도 무언가 느낄 수 있다면 내 삶이 더욱 풍만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 하나 때문인데 너무 난망하다. 여전히 클래식을 들으면 졸리고 예술작품 앞에 서면 아무 느낌이 없다. 


2월의 어느 토요일, 몇 달만에 만나는 선배와 이른 시간부터 저녁자리(?)를 했다. 오랜만의 반가움만큼 술잔을 기울였다. 그리고 일어나 보니 일요일 오전이었고 광화문 근처 호텔이었다. 선배는 일요일 근무를 하기 위해 먼저 방을 나섰고 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일어나 커튼은 젖혔다. 창문에 비친 한심한 나를 보기 싫어 다시 커튼을 닫고 누우려다 전시회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을 나서고 근처 베트남쌀국수 집에서 홀로 해장을 했다. 배를 든든히 하고 서울시립미술관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텅 빈 덕수궁 돌담길을 뚱둘기들과 함께 걸으며 다시 한번 어제와 오늘 아침의 나를 자책했다.


미술관에 들어서서 티켓 구매 장소를 찾으려 두리번거리는데 무료 전시회였다. 여러 개의 팸플릿이 놓여 있었는데 자세히 살펴볼 틈도 없이 대충 잡히는 것을 들고 1층의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가져온 팸플릿을 펼쳐 보니 1층 전시회 것이 아니었다. 서구 문명의 잔혹성과 사라져 가는 네이티브·원주민·오리지널에 대한 전시회 같았다. 


2층으로 향했다. ‘자연스러운 인간’이란 전시회였는데 팸플릿을 훑어보고 들어갔다. 어떤 전시회든 팸플릿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나의 현실은 차치하고, 사실 고백하자면 나는 팸플릿을 혐오한다. 전시회 벽에 적힌 설명문구도 싫어한다. 도슨트 대신 몇 천 원 주면 받을 수 있는 작품 설명 플레이어도 증오한다. 이유는 ‘너무 어렵기’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들이 쓰는 언어는 나 같은 예술 무지렁이에게는 너무 멀다. 이해가 하나도 안 된다. 한글로 쓰지만 영어 단어 뒤에 또 다른 영어를 가져다 붙여놓는다. “...그로테스크하지만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방식을 적용한...” 도대체 뭔 말이야.  


팸플릿 보기를 그만두고 작품에 집중해 보면 나에겐  그저 돌덩이, 의미 없는 영상, 시끄러운 소음들이었다. 결국 포기하고 나왔다.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라는 전시회도 있길래 두리번거려봤다. 서민과 후학들이 자신의 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었다고 했다. 


분명 대단한 분이실 게다. 내가 어찌 그런 분의 작품을 평가할 수 있을까. 평가보단 어떤 느낌을 받아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여러 작품 앞을 계속 서성거렸다. 작품 속 여인의 텅 빈 눈동자를 보며 ‘왜 그렇게 허무하게 밖을 보는 것이지, 왜 그렇게 무미건조한 얼굴로 세상을 대하는 건지 이상하네’라는 짧은 생각이 떠올랐다. 작품 속 눈들과 몇 분의 눈싸움을 하다 이내 돌아서서 전시회를 나왔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창가에 앉아 뾰족한 햇살에 눈살을 찌푸렸다. ‘오늘도 별 게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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