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한 마음이 실수를 불러오고 자책에 빠지게 되는 날.
'어디서 휴대폰을 떨어트렸지?'
휴대폰을 어디서 분실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제법 묵직한 무와 대파가 든 봉투를 싱크대 위에 내려놓고 비스듬히 맸던 가방을 벗었다. 가방은 공원 냥이들 캔과 소지품 등을 넣어 다니는 터라 제법 크기도 있고 무게감도 만만찮다. 휴대폰을 찾는 손길이 나도 모르게 거칠어졌다. 당혹스러웠다. 어디에서 떨어트린 거 같지는 않은데?
들고 있던 것들이 무거워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지?
마음이 급해졌다. 집을 뛰쳐나가 온 길을 거의 달리듯 되짚어갔다.
침착성을 잃은 이유가 있다. 휴대폰에 중요한 것들이 상당히 들어있어서다. 신분증, 연락처, 진료카드, 도서관 대출 카드 등등... 휴대폰은 평소 자주 사용하는 것들이 수납된 작은 수납처다.
나는 휴대폰을 수납이 가능한 두툼한 지갑형으로 들고 다닌다.
집으로 돌아온 길을 되짚어가며 언제 휴대폰을 사용했나 기억을 되살렸다. 날이 더워 음료를 살 때 페이로 결제했다. 현금으로 사야 하는 가게에 들러 무와 대파를 샀다. 무와 대파가 너무 무거워 음료를 대충 마시고 컵을 재활용 통에 버렸다. 휴대폰이 가방에서 빠졌다면 그 순간밖에 없을 텐데. 휴대폰 케이스는 제법 무거워 바닥에 떨어지면 소리가 크다.
재활용 통 앞에도 휴대폰은 없었다.
그리고 다음 실수가 있었다. 지나가는 여자분 두 명에게 혹시 휴대폰으로 전화 한 통 할 수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 당연히 거절! 이 동네 사람 아니라며 자리를 피하는 중년 여성과 싫다고 대놓고 피하는 아가씨의 쌀쌀맞음을 겪고서야 '아차!' 싶었다.
시장통 골목 안 공인중개사가 보였다. 얼른 그 가게로 들어가 사정을 설명하고 일반 전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다 생각났다. 나나 남편은 저장된 연락처가 아니면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다행히 우리 동네 전화번호라 남편이 전화를 받았다. 상황을 간단히 설명. 큰아들을 집으로 소환하고 그 자리에서 카드들을 정지시키고~ 한 마디로 정신없이 굴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큰아들이 돌아와 있었다.
부엌 옆 작은 아들 방 책상에 멀쩡히 있던 내 휴대폰을 들고.
안심이 되면서도 맥이 풀려 식탁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무엇에 휘둘렸는지 알 수 없었다. 결국 "미치겠네~"라고 자책하다 큰아들에게 그런 부정적인 말은 하지 말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나는 왜 그 순간 휴대폰을 어딘가에 분명히 떨어트렸다는 확증 편향에 빠졌을까?
제주에서 돌아오는 날 아침이었다. 가방을 정리하는 데 고양이 뽀리가 보챘다. 간식 일곱 개를 챙겨갔는데 전날 다 먹여 모른척하고 그냥 돌아왔다. 마음에 걸려 로켓 배송으로 주문을 했다. 배송시작이 떠 혹시나 살펴보니 배송처가 서울 우리 집이었다. 주소를 분명 제주로 한 거 같은데.
배송이 시작되면 배송처를 바꿀 수가 없다.
집으로 배달된 걸 재포장해 우체국으로 갔다. 뽀리에게 빨리 먹이고 싶은 다급함 때문이었다. 어차피 뽀리가 다 먹을 간식인데 왜 그렇게 서둘렀을까? 가까운 우체국도 1.5킬로 정도. 제법 무게감이 느껴지는 걸 걸어서 다녀오는 것도 힘들었는데. 오면서 시장에 들러 무와 대파를 샀다. 물론 이유가 있었다.
아픈 친구에게 가는 건 한 달에 한 번. 김치를 담그기 위해서는 몇 번 시장과 마트를 오가야 한다. 그 재료 중 하나가 무와 대파였다.
나도 한때는 꼼꼼하고 치밀하다는 평이 있었다. 과거 국어교사들이 제일 기피하는 업무 중 하나는 교지였다. 어쩌다 보니 나는 부임하는 학교마다 그 업무가 저절로 따라왔다. 본 업무에 추가된 교지 때문에 겨울 방학이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 일을 하며 늘 느낀 건 하나다.
'잘해야 본전!'
실수로 오타라도 생기면 교지를 다시 찍을 수 없으니 그대로 배부된다. 오타나 사진 문제로 교장실에 불려 가 혼이 난 적도 수차례다. 그야말로 책 한 권의 무게가 천근이다. 인쇄 전까지 눈이 아프도록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담임 업무도 마찬가지다. 기록으로 남는 게 그렇게 무서운 거다.
그런 일을 하다 보니 꼼꼼하고 치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논술지원단으로 활동하던 당시 동료 선생님들이 나에게 붙여준 별명은 빨간펜 선생님. 남자 형제 넷 속에서 딸 하나로 자라 덤벙대기 일쑤였던 내게 말이다.
하지만 근래 들어 본래 성정으로 돌아온 것 같은 순간이 자주 생긴다. 휴대폰을 잃어버렸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던 그날도 남편이 우체국에 태워다 주겠다는 걸 운동 삼아 걸어가겠다고 한 것부터 실수였다. 이제 슬슬 나 자신도 한계가 있음을 더 인정해야 하는 데.
다음 날 김치를 담갔다. 아픈 친구를 보러 가기 위해.
김치를 담가 쟁여놓고 친구 남편에게 연락을 했다. '꼭 와 주셨으면 좋겠다'는 답장을 받은 그 밤. 밤새 목이 아프고 코가 막히며 기침이 났다. 잠을 설쳐서인지 눈이 따가운 데도 기다릴 친구를 위해 마스크를 쓰고 집을 나섰다.
한 달 전보다 더 아기 같아진 친구의 모습을 보고 돌아오는 길.
나보다 더 헤매며 살 것 같은 친구 남편은 사람의 길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하셨다. 고난이 사람을 어떻게 훈련시키는지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나도 모르게 감동을 받았다.
일련의 거듭되는 실수로 몸까지 타격이 있지만 이런 평범한 날들이 내게 주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는 거겠지?
김치를 완성하고 설거지를 하다 들여다보니 까미는 한낮의 꿀잠을 즐기는데 그 모습이 가관이었다. 어이없기도 부럽기도 했다. 그래도 부엌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나를 방해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까미는 수컷이지만 생각보다 수다쟁이다. 툭하면 나에게 말을 건다.
일련의 일들이 거듭되어서인지~. 친구에게 다녀 온 다음 날은 열이 나고 코와 목 때문에 잠을 자기 힘들어 인근 병원을 갔다. 코는 비염, 목은 편도선이 많이 부었다며 약을 한 보따리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