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얼마나 거센지 나뭇가지들이 툭툭 부러졌다. 지난가을 본 가지를 떠나 유랑생활 중인 낙엽들이 강풍에 이리저리 쓸려 다녔다.
강풍이 예보되었던 터라 공원 냥이들이 제 자리에 있는지 은토끼님에게 전날 미리 물어보았었다. 보통은 아롱이의 위치 확인이 좀 어려운 편이다. 사랑이 닮은 암소 무늬 녀석은 인근 조각공원 조각품 중 하나에서 즐기고 있다고 하셨다.
바람은 거세도 아주 춥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도 핫팩을 양 주머니에 넣고 장갑을 끼고 다녀도 손이 시렸다. 날이 제법 찬 데다 바람이 거세니 다롱이와 귀요미는 밥 먹는 시늉만 하다 겨울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녀석들이 집에 들어가기 전에 건사료와 먹다 남은 캔사료와 간식들 거기다 핫팩까지 챙겨 둬야 해 서둘렀다. 캔 사료를 밖에 두면 순식간에 얼어버린다. 손놀림이 신들린 것처럼 움직여야 하는데. 자꾸 더듬거렸다. 강풍 때문에 묶고 나온 머리가 삐져나와 얼굴을 자꾸 덮어 눈이 더 가려진다. 김이 서리는 안경 때문에 앞도 잘 안 보이는데...
잊은 것 없이 다 챙긴 것 같은데도 자꾸 미적거린다. 돌아서면서도 걱정이 되는 이유가 있다. 겨울집이 사람들 눈에 뜨이지 않는 곳에 설치되어 있지만 가끔 그 집을 부수려는 사람이 있어서다.
얼마 전 어깨 통증 치료를 위해 한의원을 가려고 토성에서 해자 길로 내려와 걸을 때였다. 해자 주변 고양이들을 돌보는 분을 만나 얼마 전에 일어난 이야기를 들었다. 공원 고양이들 겨울집을 칼까지 가져와 부수는 사람 이야기였다. 그 사건은 몇 해째 듣고 있다. 겨울이 되면 고양이 집을 부수고 싶은 욕구가 폭증하는지.
겨울집을 부수고 다니는 걸 신고해 경찰이 왔다 하더라도 마땅한 법조항이 없는 모양인지 대부분은 그 자리에서 훈방 처리되었단다. 그러나 그날은 현장에서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이 찍혀 파출소를 거쳐 경찰서까지 넘겨졌다고 했다. 다음 날 그 여자가 나타나 늦은 밤에 경찰차로 집까지 모셔다 주고 갔다고 큰 소리를 쳐 어이가 없었다고 하셨다. 날은 추운데 굳이 불쌍한 아이들 집까지 부수며 괴롭혀야 하느냐며.
급식을 다 마치고 나면 믹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은데 먹으면 곤란한 사정이 있는 터라 일부러 돈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고 하시기에 500원을 건넸다. 해자 주변을 오가며 냥이들 급식을 열몇 군데 하고 나면 당연히 목도 타고 달달한 게 당긴다. 고맙다며 얼른 받으셨다. 그날 경찰서까지 끌려가서인지 요 며칠은 조용한데 얼마나 갈지 하시는 모습이 조금 허탈해 보였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지구에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들인데.
날이 추우면 추운 대로 한 끼 밥을 기다리는 녀석들이 눈에 밟히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겨울 먹이 부족은 비단 고양이들만이 아닌 모양이다.
아롱이까지 급식을 마치고 토성으로 가기 위해 자작나무 길로 들어서니 청설모가 두 마리나 보인다. 부지런히 낙엽 더미를 뒤지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다. 겨울은 누구나 혹독하게 보내는 모양이다.
하긴 아무리 추워도 한 끼를 챙기기 위해 삼색이 녀석은 눈만 뜨면 나와 있어 나를 부지런히 움직이게 만든다. 녀석이 기다리는 토성을 향해 걸음을 재촉할 때마다 '이게 내 스스로 발등 찍은 거 맞지?' 싶다. 인근에서 고양이들 건사료를 챙기는 분들이 여럿 눈에 뜨이지만 닭가슴살을 주시는 분은 없는지 나를 따라오는 바스락 소리가 수시로 들린다. 여분을 넉넉히 가져가긴 하지만 그걸 사는 것도 다 돈이 필요한데???
집냥이 까미는 겨울이 되면서 베란다 출입이 불편해졌다. 햇살을 즐기던 스크래쳐 위 출입도 거의 통제된 것이다. 그렇다 보니 나와 붙어살려고 한다. 추운 데서 기다리는 냥이들 때문에 서둘러 집을 나설 때마다 끈끈한 눈으로 눈이다. 그렇게 끈끈하게 쳐다보는 녀석을 두고 집을 나서는 것도 쉽지 않다. 뭔가 뒤에서 잡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놀아줄 수도 없고. 아직 팔팔한 집냥이와 매일 기울어가는 체력을 절감하는 나. 어느 정도 기운이 빠질 때까지 놀아주지 않으면 시도 때도 없이 삑삑거리며 울어대는데...
독립해 나간 큰아들의 빈 방에서 놀아주다 보면 체력이 달린다는 걸 나도 모르게 절감한다.
독립은 아들이 했는데 충격은 까미가 받은 것 같다. 돌아오지 않는 큰아들을 저녁마다 현관 앞을 서성대며 기다리는 게 보였다. 몇 달이 지난 지금에야 아들의 부재를 인정하는 느낌이다.
동물에게 감정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상이 아니다. 해자 주변 고양이 급식을 하시는 분이 그날 아무리 봐도 집에서 기르던 듯한 품종 냥이 한 마리를 가리키며 이야기하셨다. 한 달 전쯤부터 보인다며 사람을 아주 잘 따르는 고양이라고. 집도 하나 가져다 두고 가끔 사람이 오가는 모양인데 이 추운 겨울에 기르던 고양이를 공원에 데려다 놓으면 어쩌냐고~. 맞는 말이다. 이 겨울에 어쩌려고 고양이를 집에서 내 보내나? 나도 모르게 못된 소리가 나오려고 했다.
눈보라가 치고 강풍이 불어도 추운 겨울은 반드시 지나간다. 봄도 열심을 다해 오고 있는 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