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가 들려주는 인사이트 이야기_1/6
인사이트를 주제로 써가는 브런치북이다. 여기서 말하는 인사이트는 "역동적 요소들을 이해함으로써 갈등의 해결에 기여하는 깨달음"이라는 정신의학에서의 정의를 기준으로 한다.
아래의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1부. 나(我)와 타인(他人)에 대한 인식
지나친 감정과 착각으로 실수할 수 있음을 인지하라_我
지나친 감정과 착각으로 실수할 수 있음을 인지하라_他
2부. 역동적 요소들의 이해
정보의 홍수 시대, 당신은 진실 찾기를 하고 있나요?
일본 불매운동 반대, 정상일까 비정상일까?
유튜브 세뇌 시대, 필터 버블과 에코 챔버
생존을 위한 편견·선입견, 그리고 용어에 대하여
언젠가 서점에 들렀다가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유은정, 21세기 북스)』라는 책을 샀다.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다.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괜찮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보호하는 게 먼저다" 등 인간관계에서 손해보지 않는 명확한 지침이 많았다. 나를 먼저 존중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 힐링이 됐다.
나는 몇 년이 지난 최근에 다시 책을 펼쳐 보았다.
돌아오는 게 상처뿐이라면 굳이 그 인연을 끌고 갈 필요 없다.
처음 읽었을 때와 달리 유독 이 문구가 눈에 들어왔는데,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쉽사리 관계를 끊는 [프로 관계 단절러]가 되라는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저자가 그런 의도로 쓴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어떤 의도로 글을 썼건, 읽는 이의 관점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은 후 읽었을 때는 모든 말이 와닿았다. 감정 상태가 달라진 지금은 다른 관점에서 읽혔다. 조금 더 냉정하게 읽혔다고 해야 할까?
내 감정 상태에 따라 글의 이해가 달라질 수 있다
오늘 이야기의 중요 내용이다.
'블라인드(Blind)'라는 앱(애플리케이션, Application)이 있다. '회사 게시판', '항공 라운지' 등 우리 회사 사람들만, 또는 같은 업종의 사람들만 모일 수 있는 온라인 게시판 등을 만들고 익명(匿名)으로 의견을 올릴 수 있게 한다. 최근 이곳에 어느 정도 선배 승무원인 듯한 이가 고민하며 올린 글을 소개해 본다.
후배에게 잘해줬는데 오히려 만만하게 여기는 듯 선을 넘는다. 한마디 하면 꼰대·블랙 소리가 나오고 매번 사무적으로 대하기도 그렇다.
선배들한테 혼나는 건 참을 만 한데 후배들한테 자존심 긁히니 답이 없다.
하소연하는 듯했다.
만약 글쓴이가 겪은 일이 2016년 11월에 일어났고 며칠 후 서점에 갔다면, 10월 말에 초판을 찍은 신간 추천 도서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나와 같이 마음의 치유를 얻게 되었으리라.
여전히 누군가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사실 처음부터 선배 승무원께 "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댓글을 잘 읽어보세요. 그게 인사이트예요."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그 잘해준다는 게 본인 기준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떤 선배는) 잘해주지도 않아 놓고 "잘해주니까 선 넘는다"라는 소리를 하더라. 주관적이다.
등의 댓글이 있었다. 뼈 아프지만 현실적이다.
댓글에 의견을 더해 보겠다.
선배 승무원이 내가 아는 사람이라면, 먼저 "어떻게 잘해줬어요?"라고 묻고 싶다. '잘해준다는 것'은 구체적인 내용을 알기 전까지는 추상의 개념이다. 상대에게 잘해줬다는 본인의 확증이 아직 다른 이에게는 가정일 뿐이란 얘기다.
익명이라 선배 승무원은 모르는 분이니, 대신 내 이야기로 구체화해본다. 나와 고깃집에서 식사할 때, 내 친구는 항상 불판에 고기 굽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내가 굽지 않아도 돼서, 방금 익은 고기를 편하고 맛있게 먹도록 해준다. 이 정도면 친구 본인이 '나는 모두에게 잘한다'라고 생각했을 때, 최소한 고깃집에서 고기 먹는 동안에는 부정하는 이가 없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그가 고기 굽는 것이 부담이 됐다. 이게 무슨 말인가? 고작 고기 굽는 작은 일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부담을 느낀다고? 더군다나 나를 위해 구워주고 있는데?
우선 나는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21세기북스)』 중 제1법칙인 '상호성의 법칙'이 학습돼 있다. 1984년 미국에서 초판 발행됐던 이 책은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던 90년대 후반에도 여전히 추천 도서였다. 누군가 잘해주면 때로는 부담되기도 했는데, 마음의 빚이 생겨서 그런 것이라는 이유를 명확히 정의해 주었다. 괜한 마음의 빚이 생기도록 하고 싶지 않아, 가끔은 친구에게 "이제는 내가 고기를 구울 테니 너는 편히 먹어"라고 말해야 했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 고깃집에서 단 둘이 또는 여럿이 함께 식사한 것이 30여 회는 넘을 것 같다. 친구는 마치 어떤 신념이라도 있듯, 반드시 그가 고기를 구워야 했다. 함께 먹을 때마다 나는 "이제는 내가 고기를 구울 테니..."를 몇 번이나 이야기해야 했고, 그는 가위와 집게를 절대로 놓지 않았다. 처음 몇 번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반복될수록 그 행위가 오히려 마음의 불편을 가중했다. 더 나아가, 그가 나로부터 어떤 일로 조금만 서운한 일이 생겨도 마음을 닫는 행동을 보이는 것 같았다.
때로는 상대가 고기를 굽게 하는 것이 배려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장님처럼 직급이 아주 높은 곳에 있는 상대가 아니라면 말이다.
선배 승무원에게 했던 첫 번째 질문이, 상대가 원하는 것을 맞춤형으로 잘해준 것인지에 대한 확인이었다면, 두 번째로 "후배에게 왜 잘해줬어요?"라고 묻고 싶다.
타인에게 잘해주는 이유가 뭔가? 나는 원래 천사여서? 후배와 상관없이, 각종 드라마나 영화가 선한 영향력을 베풀면 언젠간 나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교훈을 줘서? 상호성의 원칙에 따라 그 후배로부터 전략적으로 어떤 호의를 되돌려 받고 싶어서?
선배 승무원이 올렸던 글을 다시 살펴보자.
"한마디 하면 꼰대·블랙 소리가 나오고 매번 사무적으로 대하기도 그렇다."
꼰대 소리는 듣기 싫고, 매번 후배를 사무적으로 대하는 것으로부터 생기는 마음의 불편 때문에 후배에게 잘해줬다는 얘기다. 꼭 그런 건 아니라고 하고 싶은가?
내가 처음 구직활동을 할 때에는 채용 인적성 검사에서 '나는 평생 감기에 걸려본 적이 없다'에 '그렇다'라고 답하면 안 된다는 요령이 있었다. 이게 무슨 요령까지 필요한 일일까? 지원자의 입장이 돼 보자. 응시 회사에 잘 보이기 위해 감기에 걸려본 적이 없는 건강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주는 답을 하고 싶다. 그게 당연한 사람 마음이다. 입사가 목표지 않은가!
평생 감기에 한 번도 걸려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회사는 '그렇다'라고 할 경우, 이후의 응답도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기 위해 질문을 넣은 것이다.
"상대방으로부터 호의를 되돌려 받고 싶어서 잘해주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사실 꼭 그런 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드는가? 내가 잘해줬음에도 불구하고 선을 넘었다고 하면, 상대방이 잘못한 게 분명해 보이고 내 상처가 더 정당해진다. 그래야 위로받을 수 있다. 역시 당연한 사람 마음이다.
유은정 작가는 "모든 관계는 주고받는 것이다"라고 명확하게 얘기한다. 더불어 '상호성의 법칙'은 상대방에게는 빚진 것 같은 부담을, 나는 상대방으로부터 되돌려 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정의한다. 내 마음의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잘해준 것인데, 상대방도 나에게 잘해주길 바라는 기대가 생긴다.
우리의 경험으로 볼 때, 대부분 사람들은 내가 잘하면 상대도 잘한다.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어떤 일도, 모두가 내가 경험했던 대로만 진행되지 않을 뿐이다. 작가는 '내가 이 정도 했으니 상대도 저 정도는 해주겠지'라는 기대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라고 한다. "그 기대가 상처를 갖게 할 수 있다"라고 말이다.
원래 천사처럼 본인이 먼저 희생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타인으로부터 되돌려 받으려는 의지 없이 호의를 베푼다면 나는 천사라고 하고 싶다. 단, 내가 나에게 희생을 강요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당신도 나에게 희생을 강요해도 된다"는 시그널을 주게 되기 쉽다(시그널링, Signalling).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에는 내가 고기를 구울게, 너도 좀 편히 먹어"라고 하는 대신, "네가 항상 구웠으니 이번에도 네가 다 구워"라고 했다면 친구의 마음이 어땠을까? 잘해주고도 상처받을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가?
마지막으로 선배 승무원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좀 더 상황을 넓게 보자는 의미이자, 자문자답(自問自答)을 유도해 보는 질문이다.
사실 후배는 그럴 의도가 없는데, 본인만 '자존심 긁혔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뜨거운 물이 손등에 튀어 "앗 뜨거워!"라고 느끼는 고통의 감정과 달리, "자존심이 긁혔다"라는 것은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할수록 굳어지는, 사후에 완성된 감정일 가능성이 높다. 자기중심적 사고 즉, 본인의 입장에서만 생각해서 발생된 착각 또는 오해다. "쓸데없이 너무 깊게 고민하지 말라"는 말은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인간관계에서는, 상대방의 의도를 잘못 또는 감정적으로 인식하고 상처받는 경우가 많다.
정신의학에서 인사이트는 종종 정신질환에 대한 자기 인식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정신분석에서 이 용어는 역동적 요소들을 이해함으로써 갈등의 해결에 기여하는 깨달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따라서 치료적 변화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로 간주된다(네이버 지식백과).
여러분도 "나는 잘해주었지만 오히려 상대로부터 상처받았다."라는 생각을 한 번쯤 했으리라 생각한다. 이 상황을 정신질환 상태로 정의하기에는, 많은 사람을 정신질환자로 만드는 셈이 될까 우려된다. 정신과 전문의가 쓴 책으로부터 간접 상담을 받아볼 정도라고 하면 어떨까? 내가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를 구입한 이유이자, 소위 '잘 팔리는 책'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인사이트를 '정신과 전문의가 쓴 책으로부터 간접 상담을 받을 만한 상황에 처한' 자기 인식을 의미하는 용어로 조금만 낮춰보면 어떨까? 네이버 지식백과의 정의에 의해, "나는 잘해줬는데 왜 도리어 상처를 받고 있을까?"에 대해, 위에서 언급한 역동적 요소들을 이해함으로써 갈등의 해결에 기여하는 깨달음을 얻는다면, 인사이트라고 정의하는 게 가능해진다.
인간관계에서 갈등 해결에 기여할 역동적 요소에는 사건 당사자인 나와 타인에 대한 이해가 포함된다. "사실 후배는 그럴 의도가 없는데(타인의 이해) 본인만 '자존심 긁혔다는 착각'(나의 이해)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라는 질문처럼 말이다.
"후배 때문에 자존심이 긁혔다"라고 '나는 감정이 좋지 않은 상태'임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처음부터 이 질문을 바로 한다면, 해결을 위한 올바른 순서가 아니다. 왜 일까?
선배 승무원 경험과 달리, 여러분은 상대방이 불친절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상황을 겪은 적이 있는가?
라디오 방송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에는 방송 비하인드 에피소드를 다룬 "커피타임" 코너가 있다. 어느 날, 담당 작가가 본인의 일본 여행 얘기를 했다. 프로그램 진행자인 이진우 기자, 박세훈 작가, 김현우 행복자산관리연구소장, 안승찬 기자가 출연한다. 잠시 대화 읽기 요령을 설명한다. 프로그램을 아시는 분은 읽는 동안 출연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겠지만, 모르시는 분이라면 어떤 세명의 사람이 각자 의견을 내는 중으로 고려하시면 된다.
박세훈작가 | 공항에 계시는 분들은 일부러 무뚝뚝하게 하시잖아요.
이진우기자 | 그게 일부러 그런다고?
박세훈작가 |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현우소장 | 아무리 "안녕하세요~", "수고하십니다~"라고 얘기해도 무표정으로 일관해요.
안승찬기자 | 왜 그럴까? 무섭게 할 이유가 뭐가 있어?
이진우기자 | 공무원이니까 그렇지~
박세훈작가 | 아녜요. 공항만 유독 그래요
주제가 작가의 일본 여행에서, 공항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은 왜 무뚝뚝하신지 궁금해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안승찬기자 | 왜 그럴까? 뭔가 검사를 해야 돼서 그런가? 이 사람이 가짜 여권을 쓰는 것은 아닌지..
왜 그런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이진우기자 | 근데 저는, 공항에서는 좀 불친절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화제가 이유에서 당위성으로 전환된다.
박세훈작가 | 기분이 좋아서?
이진우기자 | (0.1초도 안돼서, 니가 좀 안다는 듯이) 그렇지! 다들 (여행을 간다는 것 때문에) 기분이 좋으니까 괜찮아.
김현우소장 | 그것 때문에 화나는 건가? "나(공항직원)만 빼고 다(여행객) 행복해~."
이진우기자 | (얘도 좀 안다는 듯이) 그렇지~ 그렇지. 그러니까 (공항 직원들이) 불친절해도 되고, 불친절한 게 괜찮습니다.
안승찬기자 | (이제 이해가 된다는 듯이) 그럴 수도 있겠다~.
이진우 기자의 "(여행을 간다는 것 때문에) 기분이 좋으니까, 직원이 불친절해도 되고, 불친절한 게 괜찮다"라는 말은 대화 분위기를 유쾌하도록 하기 위한 재치의 표현일 수 있다.
뢰벤슈타인(Loewenstein) 등이 제안한 '감정의존선택가설'에 따르면, 사람들은 판단을 내리는 시점에 느끼는 정서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한다. 예를 들면, 박쥐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비록 박쥐 때문에 질병을 얻을 확률이 낮다고 해도 주변에 박쥐가 있다고 알려진 주택은 사지 않으려고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감정의존선택가설 [risk-as-feeling hypothesis, 感情依存選擇假說] (상담학 사전, 2016. 01. 15., 김춘경, 이수연, 이윤주, 정종진, 최웅용).
'감정의존선택가설'은, 상대가 '불친절'이라는 부정의 감정을 일으킬만한 행동을 나에게 해도, 내가 즐거움이라는 감정상태에 놓여 있다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게 가능하다는 이진우 기자의 논리를 뒷받침해준다. "글은 읽는 사람의 감정 상태에 따라 달리 읽히기도 한다"라는 나의 주장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내가 상처받았는데 왜 내가 조언을 받아야 해?"라는 질문이 떠오른다면, 당연한 생각이다.
선배 승무원이 블라인드에서, 본인에게 동조하는 댓글에만 대댓글로 "선배들한테 혼나는 건 참을 만 한데 후배들한테 자존심 긁히니 답이 없다"라고 했다. 이 정황으로 보건대 우선은 공감을 원했던 것 같다. 공감보다는 객관적 조언들이 댓글로 더 많이 달려서였을까? 며칠 후 글은 삭제됐다.
두 가지 가정을 조합으로 상상을 해보자. 내가 저자 유은정 정신과 전문의만큼 의학 지식이 있다. 그리고 같은 제목으로 책을 쓴다.
나는 "갈등 해결에 기여하는 깨달음의 인사이트가 필요하다."라는 주제를 넣을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잘해준다는 게 본인 기준일 수 있다.", "내가 받은 상처라는 것이 상대를 탓하기 위해 스스로 만든 기준 때문인 것은 아닌지 둘러봐라."라는 소제목을 목차에 기록할 것 같다.
내 기준에서야 완성도가 높아지겠지만, 선배 승무원은 책을 몇 번 훑고는 다시 내려놓을 것 같다. 지금은 상처로부터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애초에 선배 승무원이 '블라인드'에 글을 올린 것은 잘한 일일까? 익명의 냉정한 조언은 그 또는 그녀를 더욱 성장하게 만들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선배 승무원이 글을 올린 목적이 무엇이었든, 궁극적으로 '후배로부터 자존심 긁히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사실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돌아오는 게 상처뿐이라면 굳이 그 인연을 끌고 갈 필요 없다" 즉, "그래, 그건 상대가 잘못한 거야~ 앞으로 말 섞지 마."라는 말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릴 것이다. 그런데, "내가 상처받았는데 왜 내가 조언을 받아야 해?"라는 단계에만 머물며 [프로 단절러]의 삶을 살 것인가?
인간관계에서 생긴 '마음의 상처'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①순서대로, ②두 단계를 모두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두 단계는 마음의 상처 치유와 역동적 요소들의 이해다.
나는 뒷 순서에 있는 '선배 승무원의 고민에 대한 역동적 요소'에 대해 처음에 먼저 설명하고 넘어온 셈인데, 이는 마음의 상처 치유, 나아가 "나는 역동적 요소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발달심리학자인 존 플라벨(J. H. Flavell)은 '자신의 생각에 대해 판단하는 능력'을 메타인지라고 정의했다(출처 나무위키, 이후 일부 각색). 메타인지는 아이들의 발달 연구를 통해 나온 개념이므로 교육학 등에 주로 등장하는 용어다. '비상교육'이라는 회사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더 유명해진 박은빈 씨를 내세워 '메타인지 스마트 학습'을 TV 광고 중이다.
수영을 한 달 배운 아이가 '나는 100m를 완주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 판단하고, 만약 완주할 수 없다면 나에게 부족한 게 체력인지 기술인지를 (한번 더) 스스로 판단하는 데에 메타인지가 사용된다.
뛰어난 메타인지능력을 가졌다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도전을 함으로써 학습 속도를 빠르게 가져갈 수 있다.
정신의학에서 정의하는 인사이트를 다시 보자.
정신질환에 대한 자기 인식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정신분석에서 이 용어는 역동적 요소들을 이해함으로써 갈등의 해결에 기여하는 깨달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따라서 치료적 변화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로 간주된다.
『인사이트 펀드』, 『트렌드코리아2023』이 주는 '인사이트'와는 조금 동떨어진 느낌이 들 수도 있겠으나, 메타인지와 인사이트는 목적이 '학습'과 '정신질환 치료'라는 차이만 있을 뿐, '자기 인식'이 효율적이거나 필수적인 요소라고 이야기하는 유사점이 있다.
"흥분하면 진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먼저 내가 어떤 감정 상태인가를 인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같다고 해도, 그 결과인 이득의 값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인식의 노력이 반복되면, 특히 부정의 감정으로부터 받는 고통을 굳이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이해가 가능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많은 노력 없이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마음의 상처'라는 문제 해결은 순서대로 두 단계를 거친다고 했다. 인식된 감정상태가 치유된 후에야, 갈등 해결에 기여하는 깨달음을 얻기가 더 쉬워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지나친 감정 상태 의존으로 인사이트를 놓치는 실수를 하지 마라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
#손경제
덧붙임.
1. MBC mini 팟캐스트 2022년 11월 11일 자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 커피타임(1부) 12분 9초부터 들으면 관련 내용이 나온다.
2. 이진우 기자와 일면식도 없다. 대화 중 그가 말한 공무원에 대한 얘기는 모든 공무원이 그렇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아님을 양해 바란다. 대개 공무원들은 일을 열심히 하지 않을 것 같은 인식이 있는데, 호봉제로 임금이 올라가는 구조에, 대기업에 비해 급여가 낮다는 데서 비롯되는 인식의 범주로 여기길 바란다.
2022년 3월 3일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공직에 대해서도 직무급제 도입이 과제"라며 "주로 4~6급의 중간 계층에 대해서도 직무급 시스템이 제대로 정착돼야 한다"라고 발표했다. 일부 언론은 '현행 공무원 호봉제를 수정해 직무급제를 도입하며 철밥통 임금 제도를 개편하겠다는 취지'로 해석했다.
2-1. 여권 검사하시는 분들은 공무원, 보안 검색은 공항공사 자회사 소속이다. 손경제에서 언급한 '공항에 계시는 분'은 공무원과 비(非) 공무원 집단이 혼합된 형태다. 이진우 기자의 "공무원이라서( 불친절한 걸까)?"라는 가정은 꼭 동사무소와의 비교가 아니어도 성립 자체가 되지 않는다.
대화 내용 중 "(같은 공무원이지만) 동사무소 직원은 친절하다"라는 반박이 있으나 본문에서 생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