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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날 Jun 12. 2023

개무서웠던 그날



 

 초등학교 4학년 때로 기억한다. 그때 한미혜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머릿결이 고와서 단발머리가 늘 단정하고, 찰랑거렸다. 피부는 발그레한 편이었고, 콧등과 얼굴에 주근깨가 많았다. 미혜는 아주 착하고 조용한 아이였다. 그 아이와 있었던 일 중에 두 가지가 기억에 남아 있다. 하나는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 있다가 쐐기벌레가 미혜 옷 위로 떨어진 일이다. 그때 내가 좋아하던 태훈이가 미혜 옷의 벌레를 떼주어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미혜는 겁에 질려서 소리를 질렀고, 같이 있던 친구들 모두 소리만 지르며 얼음이 되어 있는데, 태훈이가 와서 벌레를 손으로 휙 날려 버렸다. 그때 어린 마음에 차라리 벌레가 나한테 들어왔더라면 하고 생각했었다. 

 또 하나는 미혜네 집에 놀러 간 일이다.  미혜네 집은 여수에서도 좀 더 들어가야 하는 섬마을이었다. 나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 살았기에 바닷가 인근이었음에도 바다를 못 보고 살았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섬마을 동네는 보물섬만큼이나 신비한 곳이었다. 처음으로 낯선 곳으로 멀리 가야 한다는 것에 한껏 긴장되었다.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그 친구 집에 가기 위해서는 작은 배를 타야 했다. 배를 타고서 5분가량을 가면 도착하는 섬이었다. 배가 도착한 곳과 마을의 모든 길은 시멘트가 깔려 있고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볼 여유도 없이 섬에 발을 내딛고 몇 초도 안 돼서 동네 개들이 월월 짖으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한 두 마리가 아니었다. 대여섯 마리가 사냥감을 찾았다는 듯 몰려왔다. 그중에 무지무지 큰 개가 있었다. 리트리버 정도의 크기였는데, 당시 5학년이었던 나에게는 호랑이처럼 크고 무섭게 여겨졌다. 

 개들이 나를 향해 달려오는 것을 알았을 때, 내 몸은 자동으로 뛰기 시작했다. 미혜는 내 뒤에서

 "괜찮아!"

라고 외쳤지만, 나는 이미 겁을 먹은 상태여서 멈출 수 없었다. 멈췄다가는 저 녀석들의 먹이가 될 것만 같았다. 

 미혜는 "도망치면 더 따라와"라고 말하며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공포에 빠진 나는 결코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친구가 가리키는 친구네 집 마당으로 뛰어 들어갔다. 마루까지 신발을 신은 채 올라가서 내 등이 벽에 닿았는데, 개들은 나를 둘러싸며 포위망을 좁히며 다가와서 내 코 앞까지 왔다. 그때 어찌나 무서웠던지 그만 쉬가 찔끔 나오고 말았다. 겁에 질리면 쉬가 나온다는 것을 그때 처음 경험했다. 미혜는 "저리 가" 라며 엄마처럼 호통쳤는데도, 개들은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고 겁먹은 나를 기어코 확인했다. 그렇게 눈을 꼭 감고 있는 내 얼굴을 보고서야 별 볼 일 없다는 듯 떠나갔다. 

 그 뒤에 친구 집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축축해진 속옷으로 불편하고 혼자 집에 돌아갈 생각에 걱정이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역시나 집에 갈 때도 어떻게 알았는지 그 녀석들이 모두 몰려오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그냥 동네를 맘껏 누비며 시시콜콜 간섭하는 한량들이었다. 아니지, 동네를 관리하는 정찰병이었으리라. 내가 동네의 침입자인지 자신들의 친구인지를 확인하며 맡은 바 임무를 수행했으리라. 나 혼자 마을을 빠져나와 배에 올라탔는데, 떠나는 나에 대해서는 아쉬웠던지 짖지 않고 조용히 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개들의 배웅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도 개가 좋으면서도 무서운 건 그날의 기억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미혜와 미혜 동네의 개들에 대한 기억은 하나의 덩어리로 묶여 있다. 조용하고 착한 미혜와 미혜의 동네에 살던 개떼는 이후에도 어떤 상황이 되면 동시에 생각났다. 큰 개들과 마주치면 무법자 같던 개떼가 생각났고, 착한 미혜도 생각났다. 하지만, 미혜 덕분에 큰 개가 무섭기만 한 게 아니라 '저 녀석들은 멍청이 같은 녀석이니 겁먹지 말아야 해'라는 생각도 같이 떠오른다. 무서운 기억만 남았다면 그 뒤로 개를 끔찍이 싫어했을테지만 미혜가 있었기에 무섭지만 조금은 안심이 되었었나 보다. 떠나는 나를 바라보던 개들의 눈빛에 아쉬움과 미안함이 묻어 있어서 그 녀석들과 일이 한낱 해프닝이 될 수 있었다.  

 큰 개를 만나면 미혜가 떠오르며 개에게 등을 보이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한다. 조그마한 체구였지만, 자신보다 큰 개 앞에서도 겁 없던 미혜가 떠오르는 것은 개무서웠지만, 개멋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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