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 Oct 12. 2024

오늘부턴 달라질 줄 알았어

때때로 배우의 삶이 부러울 때가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로 부러운 것은 배우의 삶이 아니라 극 중 인물의 삶이다. 영화 속 세계는 낭만적이고 도전적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다가오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극복한다. 왜 내 삶은 낭만적이지 않을까, 왜 내 삶은 도전적이지 않을까, 왜 나한테는 받아들이거나 극복해야할 운명이 없을까.



전역할 때가 되면 새로운 꿈을 꾼다. 전역을 하고 사회로 돌아가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지금은 가만히 근무를 서며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지만, 전역만 하면 정말로  모든 것을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게 나는 군인으로서의 삶과 전역 이후의 삶을 분리하면서 그 때가 오면 삶과 마음가짐이 바뀔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군대 생활을 마쳤다. 우리는 자주 삶을 분리한다. 군인으로써의 삶과 전역 이후의 삶을 분리하고, 2023년과 2024년을 분리하고, 19살 고등학생의 삶과 20살 성인으로써의 삶을 분리한다. 매해 1월마다 헬스장 등록 인원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보면, 특정한 시점을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를 분리하는 것은 인간 모두의 특징인 듯하다.


영화와 삶의 수많은 차이 중 하나는 연속성이다. 영화는 주어진 시간 안에 특정한 사건을 모두 보여주기 위해 장면을 나눈다. 그렇게 영화는 불연속적인 특징을 가진다. 그러나 현실 속 우리의 삶은 그렇지 않다. 삶은 연속적이다. 가끔 잠을 자고, 술에 취해 필름이 끊기고, 기력이 없어 기절을 할 때는 기억이 연속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는 삶이 동일한 시간의 연속성 안에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영화 같은 삶을 꿈꾼다고 할 때, 그 ‘영화 같은 삶’은 무엇을 의미할까? 영화 같은 삶은 특정한 시점을 기준으로 전과 후를 분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는 주어진 시간 내에 사건과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특정한 시점을 기준으로 전과 후가 명확하다. 그리고 전과 후가 분리된 삶은 현실보다 갑작스럽고, 흥미롭고, 때로는 낭만적이다. 하지만 삶은 연속적이다. 삶에 변화가 생길 때에는 천천히 그리고 점진적으로 변화한다. 우리의 삶도 도전적이고, 낭만적이고, 받아들이고 극복해야할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 다만, 영화보다 느리고 점진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뿐이다. 우리는 너무 천천히 오는 도전적이고, 낭만적인 삶을 잘 느끼지 못할 뿐이다.   



전역을 하면 알바도 열심히 하고, 노래도 배우고, 글쓰기도 열심히 해서 책도 쓰려고 했다. 그렇게 한 주가 흐르고, 두 주가 흐를수록 속으로 운명처럼 영감이 떠오르고, 용기가 생길 날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운명은 갑작스레 찾아오지 않는다. 천천히 우리 곁으로 스며드는 것. 그것이 운명이고, 영감이다. 우리는 마치 영화처럼 내 삶의 특정한 계기로 삶의 변화가 생길 것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천천히 점진적으로 다가오는 변화를 인식해야 한다.

이 글은 일종의 다짐이다.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 것이라는.

작가의 이전글 재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