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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빚는 추석 이야기

by 앞니맘


추석이 다가오면 나는 반죽부터 생각난다. 유치원에서 하루, 집에서 한 번 더 반죽을 한다. 하얀 쌀가루에 끓는 물을 부어 작은 알갱이를 뭉치다 보면, 어느새 달덩이 같은 큰 반죽이 내 손에 들어온다. 아이들의 점토놀이처럼 주무르고 치대는 그 순간만큼은 나도 즐겁다. 교실 안에서는 아이들이 민속놀이와 추석 풍습을 배우며 명절을 준비한다.


내가 만든 반죽이 교실로 배달되면, 아이들은 금세 놀이처럼 받아들인다. 탱탱볼처럼 굴리다가 가운데를 콕 눌러 고구마를 넣고 오므린다.
“내 건 별님 송편!”
“나는 당근 송편!”
“나는 공룡 송편!”
자신이 만든 모양에 이름을 붙이고 자랑하는 목소리로 교실이 가득 찬다.

“얘들아, 자기가 만들고 싶은 모양도 만들어 보고, 조상님들이 빚던 송편도 한번 만들어 보자.”

선생님이 아이들 사이를 돌며 자신이 만든 송편을 보여준다. 아이들은 조금 전 영상에서 본모습을 떠올리며 정성스럽게 손을 움직인다. 반죽을 손바닥에 올려 동그랗게 굴릴 때는 입이 절로 헤벌어진다. 소를 넣고 오므릴 때는 입술을 꼭 다물고 집중한다. 그 표정은 거짓이 없었다. 송편을 빚는 작은 손끝에 담긴 성실함과 솔직함은, 오래된 전통을 이어가는 가장 단순하고도 확실한 힘이었다.


예전에는 한복을 입고 등원해 송편도 만들고 전래 놀이도 했었다. 지금은 불편하다는 이유로 사라졌지만, 그때 사진을 보면 치마에 걸려 울던 모습조차 예쁘다.


도우미 선생님들과 함께 빚는 송편도 즐겁다. 안동 출신 선생님은 손도장 송편을, 나는 반달송편을 만든다. 아이들이 만든 송편은 주방에서 쪄져 오후 간식이 된다. 고구마 소 하나뿐인데도 유난히 쫄깃하고 맛있다. 아이들이 정성을 다해 주무르고 빚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내가 친구에게 물었다.
“명절에 다들 여행 간다는데, 너희는 어디 안 가?”

친구는 잠시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명절 보내라고 휴가를 주는 건데, 차례도 안 지내고 여행만 다니면 그건 결국 명절 휴가의 의미가 사라지는 거 아니야? 역사가 짧은 나라들은 전통을 만들려고 애쓰는데, 우리는 너무 쉽게 버리려는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나는 대꾸를 망설였다. 명절마다 시댁 친척들 밥을 하고 제사 음식을 차리느라 주방에 갇혀 있던 엄마와 나의 모습이 떠올라 ‘아니지, 차례가 꼭 필요하진 않아’라고 반박하고 싶었다. 그러나 친구의 말에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설득력이 있었다.

"야, 부럽다고 했다가 혼날 뻔했다. 다 그런 건 아니잖아. 너도 나도 하던 대로 하고 있고."

보기 드물게 자신감 떨어지는 내 목소리에 친구는 말을 이어갔다.
“명절이 문제가 아니라, 명절 안에서 정해진 역할이 문제였던 거지. 버려야 할 건 억압된 형식이고, 지켜야 할 건 함께 나누는 의미야. 사실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게 우리 장점 일수도 있고.”


순간, 나는 생각이 복잡해졌다. 빠른 변화가 우리 사회를 발전시킨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변화는 전통을 쉽게 버리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답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유치원에서 해마다 아이들과 진행하는 명절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차려냈던 차례상도 떠올랐다. 결국 중요한 건 그 순간에 내 마음이었다.


올해도 한복은 입지 못하겠지만, 이상 기후를 뚫고 차례상에 올라온 곡식과 과일, 그리고 하루하루를 견디고 맞이한 한가위의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만은 잊지 않고 싶다.


나는 송편을 찌기 위해 바구니를 들고 뒷산으로 향한다. 솔잎을 따는 내 마음은, 과거를 지우려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조금 더 단단하게 이어 붙이려는 다짐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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