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집안일 하는 남자 Oct 26. 2021

게임기

게임기가 있는 삶이란

나는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게임기라고 하는 물건을 받아 본 일이 없었다.

언젠가 사촌 형이 쓰지 않는다고 넘겨준 이름 모를 게임기가 있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평소에 거실 TV 앞에 주렁주렁 달아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나마 눈치 보며 하는 것조차 탐탁해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새로운 '게임팩'을 구하는 일은 당연하게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략 초등학교, 아니 당시에는 국민학교였던 시절이 이야기이다.


이후로는 '교육용'으로 어머니가 사주신 컴퓨터로 게임을 할 수 있었지만, 그들로 할 수 있는 것은 그 당시에도 최신과는 거리가 멀었던 도트 게임들이었고, 난 그저 옆자리 친구가 이야기하는 '플스'라고 하는 게임기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저 감탄만 할 뿐이었다.


그 후로 몇 년, 아니 십 수년이 지난 지금 우리 집 TV 장에는 총 네 대의 최신형 게임기가 놓여 있다. 어디 그뿐이랴, 지금 이렇게 글자 쪼가리를 뽑아내고 있는 내 책상에 놓여있는 것은 꽤 따끈따끈한 게이밍 랩탑이다.


게임은 피시방에서 하는 거라며, 난 게임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며, 어차피 질려서 오래 하지도 못한다며 이야기해 왔던 과거의 나 자신은 도대체가 무엇이었는지 난 지금 게임기에 둘러싸여 있다.


물론 그렇게 말해도 게임으로 밤을 새우고, 게임의 승패에 사활을 걸고, 게임을 하느라 일상이 무너지는 사람은 아니다. 아니라고 믿고 싶다. 아닐 것이다.


여하튼 그렇게 게임기에 둘러싸여 지내는 삶은 사실 게임기가 없이 삶을 살던 때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게임기가 없다고 해서 세상으로부터 거대한 억압을 받는다거나 과도한 박탈감을 느낀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게임기가 생긴다고 해서 삶에 큰 빛이 들어온다거나, 세상 모두가 나를 우러러본다거나 하는 일도 발생하지는 않는다.


그저 남는 시간 멍하니 유튜브를 볼 수도 있고, 인터넷에 떠도는 기사들을 읽을 수 있고, 소설책을 뒤적일 수도 있지만, 그 시간에 게임기를 켜고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새로운 선택지 하나가 추가로 생긴 것뿐이다. 그렇다. 고작해야 선택지 하나.


게임기가 집에 생기고 즐긴 지 대략 3년 정도. 그 하나의 선택지로 인해 나는 그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는 많은 새로운 세상과 그 세상의 이야기를 즐길 수 있었다. 기술의 위대함과 발전에 대해 느낄 수 있었다. 책과 드라마 등이 전해주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스토리 텔링에 웃고 울고 했다. 이런 최신의 그래픽 기술이 고작해야 이런 유희 거리 아낌없이 적용될 수 있다는 현실에 감동하기도 했다. VR 기계를 뒤집어쓴 채 다가오는 새로운 세상에 전율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게 고작 하나의 선택지가 더해짐으로 겪을 수 있었던 것들이었다.


게임기가 있는 삶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게임기가 없어도 지구는 잘 돌아간다. 숨 쉬고 먹고 자고 하는 데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그저 조금 더 다양하고 풍족한 여가생활의 선택지가 생길 뿐이다. 그저 조금 더 많은 새로운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을 뿐이다. 그저 조금 더 행복해질 뿐이다.


그러니 게임기를 사자. 당신의 삶이 그토록 목마른 이유는 바로 그 조금 때문일지도 모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