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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솔 Jan 31. 2024

노래가 데려다준 풍경들

2023 비건페스티벌


서울역 


통기타를 등에 매고, 가방에 짐을 바리바리 넣고 서울역 가는 기차를 탔다. ktx는 대전과 서울 사이를 자주, 빠르게 오간다. 휙휙 지나가는 기찻길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잠깐’ 멍을 때리다보면, 금세 서울역에 도착한다. 


서울역에 내리자마자 기가 실시간으로 소모된다. 에스컬레이터를 가득 메운 사람들 속에 합류할까 계단을 오를까 고민하다가,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도착지에 다다르기까지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최대한으로 지켜보기로 한다.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서울혁신파크 


오늘의 행선지는 서울혁신파크다. 비건페스티벌에 공연을 하러 가기 위한 여정이었다. 공연을 하기 위한 준비과정들을 떠올렸다. ‘비건’이라는 가치와 상충하지 않는 노랫말이 있는지 보기 위해, ‘누구도 해치지 않는 노래’를 지향하는 공연을 위해 내가 이날 부를 노랫말들을 보내달라고 했다. 사실 일에 있어서 ‘효율’을 따질 때가 많아, 예상되는 것 이상으로 일이 생기면 귀찮음이 올라오곤 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그저 ‘존경’의 마음을 품게 하는 시간이었다. 


섬세한 기획 속에 열린 비건페스티벌은 어떤 풍경일까? 설렘과 기대를 안고 서울혁신파크에 도착했다. 


서울혁신파크에 도착하자마자 마주했던 것은 서명운동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서울혁신파크 폐쇄를 막아달라는 뜻에 동참해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이었다. 공연 리허설 시간이 거의 임박해, 자세한 속사정에 대한 글은 읽지 못했다. 서명운동 용지에 이름을 썼다. 



노래의 풍경 


서명운동하는 곳을 지나, 공연장소에 도착했다. 서울역에서 진 빠졌던 시간이 모조리 치유될 만큼, 초록빛이 가득했다. 마침 햇살이 좋아서 풀들이 더욱 빛을 발했다.


‘빠르게 가야 한다고 세상은 재촉하지만, 난 가만히 멈춰 서서 하늘을 봐’ 양양 님의 ‘이 정도’를 부르며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새기고, ‘가끔 두려움에 잠기곤 해 내가 바라는 대로 살 수 있을까 (중략) 나는 농사도 짓고 싶고 오래 살고 싶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다 같이 잘 살고 싶네’ 이런 노랫말이 담긴 지영의 ‘가끔’ 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기후위기 시대, 개개인이 느끼는 불안감이 있음을 전하려 했다. 


그곳에서 나의 노래를 알리겠다는 일념 같은 것은 없었다. 그곳에 어울릴만한,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그곳에서 나누었다. 이런 노래를 들으면 나처럼 힘이 나겠지 하는 기대 섞인 동질감도 은근히 품었다. 


그날 내게 하이라이트는 소수자연대풍물패 ‘장풍’ 사람들이 이끄는 행렬을 따라서 서울혁신파크 이곳저곳을 신명나게 뛰어다니며 소리 질렀던 순간이다. 다양한 비건 먹거리와 체험 부스들이 퍼져 있는 그곳에서 안전감을 느끼면서. 




다시 돌아온 일상의 풍경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비건 파워’를 제대로 충전했다면서 기쁨을 느끼고 대전에 다시 돌아온 월요일. 그날 내게 꽃다발을 주러 왔다던 친구가 한 단체카톡방에 글을 남겼다. 


“지난 주말엔 내 친구 유진솔이 비건페스티벌에서 노래를 불렀다. 나는 유진솔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려고 혁신파크에 잠깐 들렀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린이들도 많았다. 혁신파크에서 열리는 비건페스티벌은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들었다. 서울시에서 혁신파크를 없애고 그 자리에 60층 높이 건물을 세울 것이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은평구는 다른 서울의 지역보다 공원이 적은 편인데 이제 산책하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생각했다.” 


그 친구의 글을 읽은 다른 친구는 혁신파크에서 텃밭을 함께 일구던 경험을 나누며 슬픔을 털어놓았다. 나는 대전사회혁신센터에서 만든 시민공유공간 ‘커먼즈필드’를 떠올렸다. 이제 이곳도 사라질 수도 있을까? 기후정의학교가 열리고, 비건 먹거리를 나누고, 여러 꿍꿍이를 도모하던 그곳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2024년 1월 11일, 커먼즈필드는 ‘다행히’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사회적자본지원센터, 환경교육센터 등이 폐쇄한다는 소식 속에서, 커먼즈필드는 간판 색이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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