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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솔 Feb 25. 2024

홀씨

* 혹시 나의 안부를 묻는 누군가 있거든 전해줘 걔는 홀씨가 됐다구


아이유의 노래 <홀씨> 가사를 들으면서, 기억들을 떠올려볼까 해. 오랫동안 노래를 좋아했고, 오랫동안 가수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을 품으면서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야. 



기억나는 건, 초등학교에 다닐 때야. 그때부터 노래 부르는 걸 워낙 좋아해서 ‘동전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가족들에게도 노래방을 가자고 늘 졸랐어. 집에서 드라마 보겠다고 노래방 간다고 했던 약속을 뒤로 무르는 엄마에게 속상해서 울었던 기억이 나. 울던 나를 보더니, 그제서야 노래방에 갔던 기억도. 


노래를 좋아하는 만큼 잘하고 싶은 마음도 늘 컸어. 친구들 앞에서 더 자두 <잘가>, <김밥> 그런 노래들 부르면서 엄청나게 끼를 부렸던 걸로 기억나. 그 ‘끼’는 초등학생 때 발산하는 것으로 소진된 것 같지만... 


노래를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마음은 곧 TV에 나오는 가수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졌어. 근데 그 가수들은 하나같이 다 예뻤어. 예쁘지 않은 나를 보면서 그래도 난 노래로 승부하면 되니까, 하면서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았지. 인터넷으로 ‘가수가 되는 방법’을 검색했어. 그때 온라인상에서 누군가가 말했어. 연예인이 되는 건 운 99%, 노력 1%가 따르는 길이라고. 그게 아직도 기억나. 그 말이 꽤 강렬했었나봐. 그 말이 아예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싶기도 하고. 


온라인상 또 다른 어딘가에선, 오디션 소식이 올라왔어. 난 그게 동아줄 같았어. 논두렁 밭두렁 숲 강 그런 데에서 수영하고 탐험하는 그때의 일상이 지금이야 그립고 애틋하지만, 그땐 지겨웠거든. 촌구석에서 벗어나서 넓은 도시에서 내 꿈을 펼치고 싶었어. 


그래서 엄마에게 오디션을 보겠다고 말했는데, 엄마는 안 된다고 했어. 내 꿈을 막는, 안 된다고 단번에 끊어내는 엄마가 너무 야속했어. 엄청 슬퍼했던 기억은 있는데, 위로받았던 기억은 전혀 없어. 엄마는 내 꿈을 지지해주지 않는다는 생각, 가난한 우리 집은 내 꿈을 지탱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의 시초는 어쩌면 그 즈음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몰라. 


어릴 적 가수가 되고 싶어 하면서 친구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걸 진심으로 즐거워했던 나는 계속해서 축제만 되면 무대에 올랐어. 기회만 되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기타를 치고, 화음을 쌓고. 



근데 왜인지 중학생이 될 즈음에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너무 떨렸어. 교실에서 노래를 시키는 경우가 꽤 많았는데, 막상 앞에서 부르려면 목소리가 떨리고 심지어는 다리도 떨었던 것 같아. 그게 무대공포증 같은 건가? 여튼 그 즈음의 그런 증상이 계속 되면서, ‘난 가수가 되기엔 끼가 너무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나에게 주입했어. ‘난 가수가 되기엔 예쁘지도 않고, 우리 집은 돈도 없고’ 하는 생각에 새롭게 추가된 생각이었지.  


그러면서도 늘 집에서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봤어. TV에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왜 그렇게 많은지. 고등학교 때는 슈퍼스타k에 나오는 사람들의 무대를 보면서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을 느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물론 지금도) 


야간자율학습을 하던 어느 날에는 pmp로 장재인이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노래를 부르는 슈퍼스타k 영상을 보다가,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지금 이대로는 교실 안에 계속 못 있겠다 싶어서 교실 밖으로 나갔던 기억이 나. 교실 밖에서 결국 향했던 건 고시원이었지만. 



요새 나는 <싱어게인>에 과몰입하면서 살았어. <싱어게인> 전에는 <스우파>, <굿걸>... 오디션 프로그램 안에 배어있는 경쟁요소나 또 ‘암넷’의 유명한 ‘악마의 편집’을 욕하면서도 계속해서 오디션 프로그램을 애청해왔어.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지 않을 수 없었거든. 그 사람들이 간절하게 노래를 좋아하는 마음,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마음이 사실은 내 마음이었거든. 


그래서 오디션 프로그램을 사랑하면서도, 힘들어했어. 보고나면, 나는 노래를 좋아하고 잘하고 싶어하면서도 늘 TV 속에 나오는 사람들을 바라보고만 있는 시청자이니까. 물론 최근에는 ‘유진솔’이란 이름으로 음원도 내보고, 그렇게 사는 시간도 맛보았어. 그럼 난 가수가 되고 싶은 꿈을 이룬 건가? 


사실 올해는 ‘유진솔’은 작고 느린 호흡으로 움직여보려 해. ‘유진솔’의 시간이 꽤나 외롭고 지치기도 했었어. 쪼그라들어 있고, 태연한 척 하던 시간도 있었고. 물론 그 안에서 소중한 인연들과 응원들을 듬뿍 받아서 과분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많았지만. 


올해는 ‘임유진’이란 이름으로 좋아하는 일들을 또 펼쳐보려고. 유진솔은 내 이름 ‘유진’에 ‘솔방울’을 붙였던 거거든. 솔방울이 소나무에서 떨어뜨려낸 ‘씨앗’ 같은 건가 그런데. 지난해 가을과 겨울 속에서 나는 이제 내 삶에 숲을 일구는 마음을 그려내고 싶은 맘이 떠올랐어. 


근데 부모님이 주신 성인, 임 씨가 ‘수풀 림(林)’이야. 내가 팔자에 나무가 필요하다면서 그래서 나무를 찾아다니면서 ‘솔’ 글자를 새롭게 새겼던 건데. 알고 보니 원래의 내 이름에 숲이 있었어. 


숲을 일구는 마음이 뭔지 궁금하려나, 혹은 알 것 같은 마음이 드려나. 아직 나도 몰라. 아직 막연한 마음이지만서도, 일단 한번 이렇게 적어봐. 홀씨를 바람에 날려 보내는 것 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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