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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그림 Sep 06. 2024

8. 건강한 밥을 짓다.

매주 수요일, 나는 12주간 조계사로 향했다.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부터 3년간 (보통은 1년에 수료 가능함) 나는 사찰음식 초급 26기, 중급 24기, 고급 15기 수업을 차근차근 수료했다. 비행 스케줄 조정을 실패한 한 번을 제외하고 35회 수업에 참석했고 110여 가지 사찰음식과 사찰음식 이론을 배웠다.

모든 생명체는 영양의 섭취를 통한 대사 활동으로 생명을 유지한다. 보통 하루 세끼의 밥을 먹는 것을 식사라고 하는데 사찰에서는 공양이라고 하고 이것은 음식이 아니라 좋은 약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존중하는 마음으로 재배하고 채집하고 만든다.


고급반 수업까지 수료한 내게 자격증 취득을 위한 시험에 응시할 기회가 주어졌다. 민간 자격증이지만 과정을 모두 수료했고 기회도 주어졌으니 자격증까지 취득하고 싶어 졌고 도전해 보기로 했다.


1차는 필기시험, 필기시험에 합격해야 실기시험에 응시할 기회가 주어진다.


필기시험 합격!


나는 실기시험 당일 45분 일찍 조계사 맞은편 템플스테이 통합정보센터 2층 향적세계에 있는 고사장에 도착했다. 30분 전 출석 및 본인 확인을 한 후 조리복으로 갈아입고 시험 시작 10분 전  6명의 응시자가 고사장 앞에 모였다. 각자의 수험번호와 조리대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고사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고사장으로 쓰고 있는 향적세계는 내가 초, 중, 고급  사찰음식 수업을 들었던 곳이라 익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사장 조리대 앞에 선 나는 많이 떨렸다. 테이블 오른편 개수대 주변에는 필요한 식재료가 분량에 맞춰 준비되어 있었고 그 옆으로 정갈하게 정돈된 도마와 칼을 비롯해서 접시, 냄비 등 조리 도구들이 왼편에는 3구 가스레인지가 있었다.


내 수험번호는 6번, 2022년 6월 4일 토요일 2차 응시자 중 6번이었다. 내 왼쪽 5번 응시자는 남자스님이었고 내 앞쪽 4번 응시자는 고급반 수업을 같이 들은 같은 조 조원 중 한 명이었다.


시험 시작 5분 전 3명의 감독관이 입실했고 그중 한 명이 공지 및 주의 사항을 설명하고 시험지를 배포했다. 잠시 후 또 다른 감독관 중 한 명인 스님이 시험시작을 알렸다.


나는 긴장한 탓인지 손에 땀이 흥건했다. 크게 숨을 한 번 내쉬고 손을 씻었다. 재료를 씻고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연습하고 외웠던 대로 생각하면서 만들어 나갔다. 조리 방법과 주의할 사항은 머릿속에 가득했다. 주변 테이블의 모든 소리가 멀어져 갈 무렵 감독관은 시험 종료 10분 전을 알려주었다. 마음이 급해져서 허둥지둥 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날렵하게 잘 길들여진 칼에 놀라면서 음식을 만들었고 식재료에 대한 이해와 경험의 부재로 제한된 시간 내에 완성된 요리를 제출하지 못했다. 요리사도 아니고 몇 연차 주부도 아니니 다시 하면 되지 하고 내 맘을 추슬렀다. 고급반 수업을 함께했던 친구도 과제가 어려웠다고 했지만 위로가 되지 않았다.


시험장을 나올 때 긴장이 플러 다리가 후들거렸고 고작 칼질 몇 번했을 뿐인데 어깨가 꽉 뭉쳤다. 시험은 언제 봐도 어렵다. 이번 사찰음식 자격증 시험만큼은 떨어져도 열심히 했던 과정이 소중했다.


결과는 '불합격' 나의 실력을 너무 잘 아는 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완성품을 제출하지 못했음에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던 내가 바보 같았다.


6개월이 지난 후 나는 두 번째 도전을 했다. 10월부터 기출문제집에 나와 있는 30여 가지 음식을 2~3개씩 연습했고 오신채가 들어가지 않아서 간이 슴슴하고 담백한 음식을 잘 먹어줄 친구들도 초대해서 열심히 연습했다. 연습한 음식 중 마침 여러 번 해본 음식이 시험과제로 출제되었고 그래서 완성된 음식도 당당히 제출했다.


'얏호!'


하지만 결과는 '또 불합격'


실기 시험 시제는 '두부양배추말이찜'과 '무채두부찜'을 70분 안에 완성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스레인지는 한구만 사용할 수 있었다.


'두부양배추말이찜'은 나를 힘들게 하는 최상급 사찰음식 중 하나다. 거의 매번 출제되는 사찰음식 실기시험문제인 '두부양배추말이찜'은 찐 양배추에 두부, 감자, 홍고추, 청고추, 표고버섯, 당근으로 속을 채워 예쁘게 쌈처럼 말아서 미나리 줄기로 묶어 완성하는 음식이다. 속으로 들어가는 각각의 재료의 양념과 공정이 까다롭다. 양배추와 미나리줄기는 알맞게 데쳐야 한다. 양배추는 오래 익히면 물기가 많고 찢어지며, 덜 익히면 소를 넣고 싸기가 어려우므로 찌는 시간에 유의해야 한다. 6개 이상의 완성품을 양념장과 함께 제출해야 한다. 재료 하나하나에 들이는 정성이 사찰음식이 고스란히 반영된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무채두부찜'은 준비된 재료 중 두부, 건표고, 무, 홍고추, 미나리와 고춧가루, 간장, 식용유, 소금, 참깨를 선택해서 조리해야 했다. 채점기준 첫 번째로 두부는 5*3*1cm 크기로 잘라야 했고 두 번째는 표고버섯, 무, 홍고추는 5*0.3cm 크기로 미나리는 4cm 길이로 잘라야 했다. 그리고 완성된 무채두부찜의 색깔에 유의해야 했고 무채는 무르지 않도록 살짝 익혀 제출해야 했다. 나는 규격 사이즈에 맞지 않은 재료 손질과 잔열에도 계속 익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그래서 제출하면서도 계속 신경이 쓰였다. 나는 결국 제대로 된 완성품을 제출하지 못했다.



-출처  <<사찰음식 표준교재 고급>>, 대한불교 조계종 한국불교문화 사업단



야속하기도 하지 아버지는 어제 EBS에서 사찰음식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하더라, 시어머니는 새하얀 그릇세트를 주시면서 사찰음식을 내어 놓으면 예쁠 것 같다고, 결과를 묻는 지인들은 왜 이리 많은지 창피하고 당혹스러운 것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나는 시험 보는 것을 왜 널리 알렸을까 다이어트도 아닌데 말이다. 합격을 은근히 기대했나 보다.


나는 오늘도 재 도전을 위해 두부를 으깨고 있다.

이런 과정이 나를 더 건강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요즘도 자주 만들어 먹는 사찰음식 중에 '대추 들깨밥'이 있다.

이 음식은 선생님 중 한 분이셨던 스님의 레시피이고 나는 여기서 시중에 판매되는 김자반을 첨가하는 반칙을 감행해 만들어 먹는다. 주먹밥인데 정말 간단하다.

불린 쌀,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뺀 통들깨, 그리고 채 썬 대추, 소금 한 꼬집을 넣고 밥을 짓는다.

다 지어진 밥에 참기름 또는 들기름을 첨가해서 밥을 잘 섞어준 후 손으로 조물조물 한 입 크기로 뭉쳐준다.

뭉쳐진 주먹밥을 접시에 담고 한편에 김자반을 곁들여낸다.

톡톡 터지는 통들깨의 식감과 참기름의 고소함 그리고 김자반의 짭조름함까지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다.

나는 아직 사찰음식 만드는 과정을 배우는 중이고 여전히 수련이 더 필요하다. 건강한 밥상을 만들어 보고자 하는 욕심이 생겨서 사찰음식을 배우는 중이지만 욕심을 내려놓은 여러 가지 방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비우는 음식 만드는 것을 배우고자 또 욕심을 내고 있다. 사찰음식을 만들면서 나는 뱃속은 꽉 채우고 내면은 완전히 비워 낼 것을 기대한다.




사찰음식 수업 시작 전에 우리는 항상 '오관게(五觀偈)'를 큰소리로 외웠다.


"이 음식은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건강을 유지하는 약으로 알며

진리를 실천하고자 이 음식을 받습니다."      


-출처 대한불교 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오늘도 두부를 다지며 나는 오관게를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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