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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스타코리아 Dec 01. 2021

처음 제안서를 썼다

광고회사 숙명 제안서

지금까지 13개 제안서 작성에 참여했다. 최근에 쓴 제안서는 내가 첫 '메인'으로 쓴 제안서다. 메인으로 썼다는 말은 브랜딩 회의, 기획 회의 등을 팀원과 함께 하지만 ppt 약 50장을 혼자 작성한다는 말이다. 물론 이전 제안서에서 참고해 채우는 페이지도 있지만, 내가 직접 만드는 페이지가 많다.


자원했음에도 제안서를 맡게 되자 어마어마한 부담감이 밀려왔다. 갑자기 어떤 식물을 떠맡은 기분이다. 2주 안에 어떻게든 키우고 살려야만 한다. 내가 잘 키웠는지 모르겠다는 게 문제다.



내 아이처럼 애지중지 가꾼다. 내 눈에는 제일 예뻐 보이는데...



이번 연도는 네가 가장 잘한 걸로 하자! 정해져 있을 수도 있고, 선인장은 요즘 추세가 아니에요 거절당할 수도 있다. 대부분 이유는 듣지 못한다. 환장할 노릇이다.


제안요청서(RFP)를 받고 하루 종일 그것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샤워를 하다가도 뛰쳐나와 메모장에 적었다. 뇌는 쉴 때 아이디어를 내뱉는다. 메모만이 살 길이다.


모든 사람은 다르다. 내가 보지 못한 걸 지적하면 너무 고맙다. 새로운 걸 제안하면 좋아 콧구멍이 커진다. 많이들 던져 줬으면 한다. 나와 다른 걸 보는 사람이 소중하다. 근 2주 동안 물도 주고 햇빛도 쬐고 바람도 쐬어 주며 애지중지 길렀다. 이전 글에서도 말했지만 제안서는 내 아이 같다. 하루 종일 내 새끼만 생각한다. 완성본은 무조건 pdf로 추출해 본다. ppt에서는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아직 디자인엔 약하다. 흰 페이지가 막막하다. 배치도 새롭게 해 보고 눈에 잘 들어오게 넣고 싶지만 텍스트가 너무 많다는 지적을 받는다. 레퍼런스를 보고 뇌를 말랑하게 굴려 본다. 다리 찢기는 무리지만 기본적인 스트레칭은 되도록.


제안서 마감 이틀 전에는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 든다. 얼른 치워버리고 싶다. 눈에 힘이 풀리고 살짝 입이 벌어진다. 수정 요청이 부담스럽다. 물론 하고 나면 더 나아 보인다. 옷매무새도 매만지고 칙칙 물도 뿌려 준다. 완성되었다. 정량 제안서와 함께 제출한다.





제출한 지 근 2주가 지났다. 연락이 안 온다.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나무는 더 잘하려고 애쓰지 말라고 말한다. 너는 있는 그대로 충분하다고. 충만함에 눈가에서 구슬이 떨어지지만 직장에선 매일 더 잘하고 싶다. 어깨가 솟아 있다. 일이 없으면 불안하다. 


심장이 불쾌하게 두근거릴 땐 나무 아가 시절을 본다. 어머니 얼굴도 아버지 얼굴도 보인다. 삐쭉 올라온 머리카락이 사랑스럽다. 나무는 지금도 삐친 머리를 누르느라 애쓴다. 직장은 내가 아니다. 내려놓기는 힘들다. 그래도 나무만 있으면 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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