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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탐방 프로젝트] 공연마케터편

공연마케터의 숲을 찾아서



자기만의 숲을 찾아가는 이야기, 숲탐방 프로젝트

- 공연마케터편 - 




본 편은 인터뷰이의 요청에 따라 익명으로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내용은 삭제하거나 각색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인터뷰이를 지칭하는 '그'는 삼인칭 대명사로서 특정한 성별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공연예술은 관객없이 존재하기 힘들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객석을 비운 상태로 온라인 중계공연이 실시되기도 했지만, 그 역시도 관객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관객 없이 공연을 해 본 배우나 스탭들은, 관객이 주는 에너지가 없음에 아쉬워하곤 한다. 그렇게 관객은 공연예술을 구성하는, 중요한 하나의 요소다. 그런 관객이 공연과 맞닿는 모든 지점을 관리하는 사람, 바로 공연마케터다. 공연마케터는 관객과 공연 사이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에 관여한다. 작품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온전히 관객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10년차 공연마케터를 만나보았다.


"공연 마케팅한다고 하면, 대부분 대단하다는 반응들이에요. 공연분야라는 것이 뭔가 생소해서 그런 걸까요. 사실 마케팅이라는 업무만 놓고 본다면, 일반 회사원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요.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거에요. 소비자에게 어떻게, 얼마나 알릴까 고민하는데, 공연을 알린다는 게 조금 다른 거죠."


"공연마케터는 기본적으로는 작품에 대한 마케팅 전반 플랜을 짜고, 그것을 실행하는 일을 해요. 작품의 색깔에 따라 마케팅의 방향을 정하고, 각종 프로모션이나 이벤트, 세일즈 등을 기획하기도 하죠. 티켓 판매나 예매처, 제휴처 등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에요. 물론 공연마케터로서의 역할이 회사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그 회사의 구조가 어떻게 다른지에 따라 업무 영역이 조금씩 달라지는데요. 기획/제작팀과 마케팅팀이 나눠지지 않은 소규모 회사의 경우, 전반적인 걸 모두 담당하게 돼요. CS 전담팀이 없는 경우, 마케터가 고객과 직접 소통을 해야하기도 하고요."


그는 공연마케터와 일반 회사 마케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마케팅이라는 업무의 본질만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마케터는 자기가 팔려고 하는 것을 진짜로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결과들이 나온다. 그는 공연을 정말로 사랑했고, 그것을 관객들에게 적절하게 알리는 것에 진심으로 몰입해왔다.


"사실 저 역시도 연극과 뮤지컬을 좋아하는 관객이었거든요. 고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정말 많이 봤던 것 같아요. 공연이란 게, 두세 시간 동안 관객을 오롯이 집중하게 만들잖아요. 텍스트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계속 되뇌이는 일이 굉장히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분명히 취미 생활이었는데, 어느새 일까지 하고 있네요. 원래 대학을 졸업하고 일반 회사에 다녔는데, 재미가 없어서 다시 커리어를 전환한 케이스에요. 흥미 없는 일을 하면서 재미없는 일상을 반복하기보다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공연을 보러다니는 것을 취미로 두던 시절을 넘어, 업으로 삼는 시기가 시작됐다. 좋아하는 것이 이제 그의 '일'이 되다보니 시선도 달라졌다. 공연 그 자체에 푹 빠져서 즐기기보다는 모든 것을 '레퍼런스'로 삼는 시선을 기르게 되었달까.


"관객으로서 공연을 온전히 느꼈던, 그런 저는 사라진 것 같아요. 이제는 깊이 있게 공연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이 보이니까요. 티켓을 수령할 때도 어떤 동선으로 사람들이 서 있는지 보게 되고, 극장에 들어가서도 어떤 사람들이 많이 오는지를 보게 되고요. '관객과의 대화' 같은 행사에 가면 행사를 하는 방식을 면밀하게 관찰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하는 질문을 보며 관객들이 어떤 것을 궁금해하나 인사이트를 얻곤 하죠. 아쉽다면 아쉬운 부분인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공연마케터로서 보다 섬세하게 공연 현장을 보게 되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게 10년 동안, 그는 다양한 곳에서 일해왔다. 제작사에 있기도 하고, 극장에 있어보기도 하고, 티켓 매니지먼트 회사에 있어보기도 했다. 공공기관에 있어보기도 했고, 사기업에 있어보기도 했다. 그 많은 경험들이 그에게는 어떤 의미로 남아있을까.


"각각 다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제작 현장에 있을 때는, 작품에 푹 빠질 수 있지만 개인적 시간을 낼 수 없다는 아쉬움도 있어요. 연극이나 뮤지컬의 경우, 제작 호흡이 상당히 긴 편이다보니 제작 기간엔 오로지 그 작품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되거든요. 작품이 무대에 올라가면 좀 낫지 않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마케터로서는 그때가 가장 예민해질 때에요.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항상 불안해하고 일이 생기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생각해야 하죠. 그래도 살아있다는 느낌, 내가 작품을 만들어가는 현장에 있다는 것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반대로 극장이나 티켓 회사에 있을 때는 비교적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 지켜지기는 하는데요. 그만큼 작품의 생생함을 조금 더 멀리서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특히 공공성을 띤 기관에서는, 아무래도 사기업보다 조금 제한적인 접근을 할 때도 있고, 증빙도 보다 많이 챙겨야 하고요."


많은 곳에서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다보니, 업무 영역도 계속 달라져왔다. 회사 특성상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업무를 해야 하는 곳도 있었고, 한 곳에서 업무가 계속 변경되기도 했다. 수많은 과정을 거쳐서, 그는 '공연마케터'로 스스로를 정체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일을 할수록 마케팅이 가장 저에게 잘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기획이나 제작, 홍보, 세일즈를 해볼 때도 있었는데 성향상 마케터가 제일 어울리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홍보 파트 담당자로서 기자분들을 만나는 것보다, 마케터로서 다른 업체와 협업하며 프로모션을 기획하는 게 더 재미있었거든요. 마케팅 카피를 쓰고,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하는 게 저에게는 즐거운 일들이에요.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다는 거, 되게 좋은 거잖아요."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그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예전만큼 마음 놓고 공연에 빠져들지는 못하지만, 예전보다 더 폭넓은 방식으로 공연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공연에 대해 관심이 있는 이들이 더욱 공연마케터로서 진출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그렇다면 공연마케터에게는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


"사실 전 공연마케터가 특별한 역량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고 싶은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것 같거든요. 그래도 굳이 필요한 역량이 있다면, 적당한 센스와 정확한 판단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카피를 쓰거나 이벤트를 기획할 때 센스있는 아이디어를 많이 낼 수 있으면 일이 조금 더 재미있어질 수 있겠죠. 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을 때, 그것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판단력이 있으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해요. 코로나19처럼, 예상치 못했던 일은 늘 벌어지니까요."


코로나19는 공연계 전반을 흔들어놓았다. 마케터로서도, 공연계 종사자로서도 겪어내기 어려운 시간들이었다. 모두가 어디로 향해야 할지를 모르는 시간들 속에서 공연은 계속되었다. 그 이면에는 그 모든 시간을 견뎌낸 '사람들'이 있다.


"내 업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처음 느꼈어요. 코로나19 이전에는 공연계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을 항상 했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 공연 일을 아예 안 하고, 아니 못 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특히 올리고자 하는 공연이 취소되었을 때, 정말 큰 충격이었어요. 일단 눈앞의 일들을 해결하고는 있는데, 하고 싶은 공연을 못 올리는 날이 왔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정말 마케터에겐 큰 사건이었죠. 다른 직원들이나 예매처 고객센터분들이 그 시기를 잘 견뎌내주셨는데, 그러고나니 일종의 전우애 같은 것이 생기더라고요. 힘든 시기를 함께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조금은 길러진 것 같아요."


고된 시기를 거치면서도 그는 공연현장을 지켰다. 다른 분야로 갈 용기가 없었던 거라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이 모여 공연 현장을 지켜왔음을, 공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제작현장에서는 방역수칙에 따라 최대한 객석을 오픈했고, 방역수칙을 철저하게 수행했다. 그렇게 공연은 계속되었고, 공연장 내 추가감염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예술이란 게,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거잖아요. 비록 이런 시기라고 해도요. 공연 일을 하게 되면서 그걸 더 확연하게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한 작품을 만들어가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는데, 또 관객들은 그것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해주시잖아요. 이런 과정들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제겐 의미있고, 또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공연 현장에서 일하는 게 좋아요."


"당신의 숲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요즘, 이전보다 시간적인 여유로움이 생겨 책을 읽으면서 재충전하고 있는데요, 특별히 좋은 구절이 있으면 필사해놨다가 다시 읽어보고 주변에도 소개해주면서 저만의 숲을 채워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우린 중력과 마찰력이 있는 세상에 살고 있어서 다행이구나. 가다가도 멈출 수 있고, 멈췄다가도 다시 갈 수 있는 거지. 영원할 순 없겠지만. 이게 더 나은 것 같아. 이렇게 사는 게.'

최은영 작가의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에요. 많은 분들이 이 글을 통해 치유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제게 이 글이 그랬던 것처럼요."


인터뷰 내내 그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어떤 종류의 에너지냐 하면,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할까. 공연이 우리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처럼. 그는, 공연의 본질을 참 닮아있는 사람이었다.


"'관객 프렌들리(friendly)'한 마케터가 되고 싶어요. 관객들이 찾아주지 않으면 공연은 올라갈 수 없는 거거든요. 공연장에 가서 관객들의 살아있는 반응을 볼 때, 가장 일에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마케터가 관객이 원하는 부분을 긁어줄 수 있으면, 관객들이 더 공연장을 찾아줄 거고, 그렇게 되면 더 좋은 공연을 만들어갈 기반이 생길 거잖아요. 그렇게 공연계의 선순환을 만들어가는 마케터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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