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1분 전 제출하는 사람
통계학을 듣던 시절 매주 온라인클래스에 월요일 밤 10시까지 보고서를 올리는 과제가 있었다.
같은 과목 듣던 친구를 놀라게 한 내 기록은 21:59:59 제출
마감시간에 엄근진한 교수님이라서 늦으면 심한 감점이라 안 늦으려고 하는데 더 빨라지지가 않았다.
오래 쓰면 더 좋은 글이 나오는 것처럼 마감 코앞에 내곤 했다.
저 기록을 세우던 날에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제출했는데 그 기억이 너무 괴로워서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지 했다.
매주 아슬아슬한 과제제출을 하고 결국 A+와는 꽤 먼 점수를 받고 종강했다.
이번주에 두 번의 기획서 제출이 있었다. 이번에도 23:59 마감시간 엄수였다. 동점자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선발되려면 마감시간에 늦는 초짜는 되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첫 번엔 23:58 제출하고 둘째 날에는 23:59 기록을 또 세웠다.
제출하고 이제 됐다는 마음으로 불 끄고 누웠는데 혹시 모르니까 메일함을 들어갔다.
눈앞에 보기 싫은 메일이 와있었다.
메일 발송이 실패하였습니다.
이제껏 이런 적이 한 번도 없는데 하필 다른 것도 아니고 마감시간 있는 기획서 제출할 때 이러는 것인가...
부랴부랴 다른 메일 계정으로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담당자에게도 구차하게 메일을 남겼다.
“제가 23:59에 메일을 보냈는데 발송실패라고 합니다. 다시 한번 보내드리니 확인 부탁드립니다.”
내가 적으면서도 보내기 싫었지만 이런 걸 보내는 게 어른 아니겠어.
기획서 제출하기 전에 담당자가 분명하게 말했다.
“마감 하루 전에 넉넉하게 보내시는 게 좋아요. 당일에 촉박하게 하지 말고”
다년간 59분 역사를 써오며 심장이 자주 줄어드는 나로서 이번에는 넉넉하게 보내야지 다짐했다.
다짐은 정확하게 빗나갔지만.
상황을 대충 수습하고 나연적 사고도 하려고 했다.
내가 기획서를 딱 59분에 냈는데 발송실패 메일이 온 거야 웃기지 않아?
(나연적 사고는 말끝에 ‘웃기지 않아?’를 붙이면 된다. 그러면 좀 괜찮아진다고 한다.)
이번엔 별로 괜찮아지지 않았다.
이 기획서 때문에 그동안 주말도 반납했는데 이렇게 무너지는구나.
한 번씩 이런 일이 생기면 거창하게 인생을 돌아본다.
어디서 잘못됐을까.
왜 굳이 지독하게 59분까지 못 보내고 있었을까.
더 붙잡는다고 좋아지는 것도 아닌데 왜 마감에 중독됐나.
이번에는 시간도 넉넉했는데 왜 또 59분이고 난리야....
의식하진 못했지만 더 오래 생각할수록 좋은 게 나올 거라고 믿는 것 같다.
아주 잘못된 신념이다.
과연 이번 일로 59분 병을 고쳤을까?
이래놓고 기획서 통과되면 또 망각할지도 모르겠다.
심장을 위해서는 이제 좀 빨리 내고 싶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