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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입니다 Jul 04. 2024

23:59 마감의 진실

툭하면 1분 전 제출하는 사람

통계학을 듣던 시절 매주 온라인클래스에 월요일 밤 10시까지 보고서를 올리는 과제가 있었다.  

같은 과목 듣던 친구를 놀라게 한 내 기록은 21:59:59 제출

마감시간에 엄근진한 교수님이라서 늦으면 심한 감점이라 안 늦으려고 하는데 더 빨라지지가 않았다.

오래 쓰면 더 좋은 글이 나오는 것처럼 마감 코앞에 내곤 했다.


저 기록을 세우던 날에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제출했는데 그 기억이 너무 괴로워서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지 했다.

매주 아슬아슬한 과제제출을 하고 결국  A+와는 꽤 먼 점수를 받고 종강했다.


이번주에 두 번의 기획서 제출이 있었다. 이번에도 23:59 마감시간 엄수였다. 동점자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선발되려면 마감시간에 늦는 초짜는 되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첫 번엔 23:58 제출하고 둘째 날에는 23:59 기록을 또 세웠다.

제출하고 이제 됐다는 마음으로 불 끄고 누웠는데 혹시 모르니까 메일함을 들어갔다.

눈앞에 보기 싫은 메일이 와있었다.


메일 발송이 실패하였습니다.


이제껏 이런 적이 한 번도 없는데 하필 다른 것도 아니고 마감시간 있는 기획서 제출할 때 이러는 것인가...

부랴부랴 다른 메일 계정으로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담당자에게도 구차하게 메일을 남겼다.

“제가 23:59에 메일을 보냈는데 발송실패라고 합니다. 다시 한번 보내드리니 확인 부탁드립니다.”

내가 적으면서도 보내기 싫었지만 이런 걸 보내는 게 어른 아니겠어.

기획서 제출하기 전에 담당자가 분명하게 말했다.

“마감 하루 전에 넉넉하게 보내시는 게 좋아요. 당일에 촉박하게 하지 말고”

다년간 59분 역사를 써오며 심장이 자주 줄어드는 나로서 이번에는 넉넉하게 보내야지 다짐했다.

다짐은 정확하게 빗나갔지만.


상황을 대충 수습하고 나연적 사고도 하려고 했다.

내가 기획서를 딱 59분에 냈는데 발송실패 메일이 온 거야 웃기지 않아?

(나연적 사고는 말끝에 ‘웃기지 않아?’를 붙이면 된다. 그러면 좀 괜찮아진다고 한다.)


이번엔 별로 괜찮아지지 않았다.

이 기획서 때문에 그동안 주말도 반납했는데 이렇게 무너지는구나.


한 번씩 이런 일이 생기면 거창하게 인생을 돌아본다.

어디서 잘못됐을까.

왜 굳이 지독하게 59분까지 못 보내고 있었을까.

더 붙잡는다고 좋아지는 것도 아닌데 왜 마감에 중독됐나.

이번에는 시간도 넉넉했는데 왜 또 59분이고 난리야....


의식하진 못했지만 더 오래 생각할수록 좋은 게 나올 거라고 믿는 것 같다.

아주 잘못된 신념이다.


과연 이번 일로 59분 병을 고쳤을까?


이래놓고 기획서 통과되면 또 망각할지도 모르겠다.

심장을 위해서는 이제 좀 빨리 내고 싶다. 진심으로.


이렇게 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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