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디와 계절
마치 농한기의 농부들처럼 말이다.
지금 이맘때면 회사에서도 캐디들에게 교육과 여가를 겸한 활동을 하게 한다.
일종의 보수교육인 셈이다.
간혹 캐디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하는 질문이 있다.
"골프 칠 줄 알아야 캐디 할 수 있나요?"
캐디들이라고 해서 모두 골프를 칠 줄 아는 건 아니다.
전문직으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무슨 라이선스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다.
단, 전동카트를 움직여야 하기에 운전면허자격증은 있어야 한다.
지역 폴리텍대학이나 민영기관에서 캐디양성교육을 하긴 하지만, 사실 제주에선 유명무실하다.
각 골프장에 취업하면 경기팀에서 교육을 시키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골프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과 룰은 양성교육기관을 통해 배울 수 있지만, 실제 골프코스의 세부적인 사항과 필드경험을 쌓는 것이 더 중요하므로 골프장취업을 더 우선시한다.
물론 수준급의 골프 실력을 갖춘 캐디들도 많다.
나는 동적인 것보다 정적인 활동을 좋아하므로 골프를 치긴 하지만 그다지 즐기지는 않는다.
골프를 칠 줄 아는 동료들은 정규홀을 돌고 스코어를 제출하며 모든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회도 열린다.
그 외 아직 실력이 영글지 않아 정규홀 라운드가 어려운 직원들은 그린 전방 50미터에서 어프로치를 하고 그린의 각 코너를 시작점으로 하여 홀 인(Hole In)이 될 때까지 스코어를 기록하게 하여 경기팀에 제출하게 한다.
골프를 배우지 않았는데 어떻게 어프로치를 하고 퍼팅을 하겠느냐고 의아해할 수 있으나 그동안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 즉 현장학습이 어디 가겠는가.
출발 전 연습장에서 일타강사(로우핸디의 캐디)의 가르침과 연습으로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아주 미세한 정교함을 요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스코어가 아니다.
물론 스코어를 아예 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활동을 통해 고객들에게 좀 더 자세하고 정확한 정보를 주고자 하는 것에 역점을 둔다.
직접 어프로치를 하면서 그 기술의 어려움과 낙하지점을 직접 설정해 보고 쳤을 때 볼이 굴러가는 속도와 거리를 직접 느껴 본다. 그린 위에서도 실제 퍼팅을 해 봄으로써 더 감각이 예민해지고 활성화된다.
내 몸으로 직접 체감해 보는 것이 이 활동의 주제인 것이다.
나 역시 직접 퍼팅을 해 보면 그동안 내가 보던 그린라이에 조정이 필요함을 느꼈다.
심상으로만 그리던 이미지를 직접 실전에 대입해서 답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세상의 모든 일이 직접 해 보지 않으면 잘 모른다."
우리는 그런 일련의 활동을 통해 고객들의 입장과 마음을 헤아려보는 기회가 된다.
고객들도 가끔 그린 주변에 캐디가 들고 있던 클럽을 모아 놓으면 먼저 끝나서 골프카로 이동할 때 클럽들을 직접 들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 육중한 무게감에 대부분 놀란다. 생각보다 무겁기 때문이다.
이 무거운 걸 어떻게 들고 다니냐고... 걱정스러운 눈빛과 말을 건넨다.
그렇게 서로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
일도 어차피 사람과 사람사이의 일인 걸...
가끔 되새겨 볼 일이다.
농부들이 호미와 낫을 갈며 다음 해의 풍년을 염원하 듯, 우리도 우리의 감각을 더 뾰족하고 예민하게 벼리며 좀 더 내가 하는 일에 자신감이 충만하길 꿈꾼다.
그렇게 우리는 이 감사한 계절을 지나고 있다.
늦은 밤,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내가 하얀 목화솜이불을 덮고 잠을 청하 듯, 세상의 들판도 새하얀 솜이불을 덮고 잠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