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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우주인 Nov 28. 2021

서커스 유랑단 가족

"혹시 저희 집에서 출산하시는 것은 아니지요? “


첫 아이 출산을 앞두고 나의 살던 고향 대한민국에서 친정엄마의 에너지를 맘껏 즐기다가 시드니로 돌아왔다.


부동산과 의사소통 사고로 인하여 새로 이사할 집의 입주 날짜가 출산 예정일 열흘 전으로 결정되었다. 에어비앤비와 호텔, 친구 집을 전전했다. 예약할 때 내가 만삭의 임산부인 줄 몰랐던 에어 비앤이 호스트는 거대한 배를 보유한 나를 싸늘한 매의 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걱정으로 포장한 "부담스러워 짜증 나 죽겠네" 텔레파시를 거침없이 하이킥 했다.


불필요 걱정 아드레날린을 다량 생산하는 에어비앤비의 호스트의 불안을 뒤집고, 다행히 내가 남에 집에서 몸을 푸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출산 예정일 열흘 전에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출산 직전에 산후조리를 도와주시러 한국에서 친정 엄마가 오셨다.  


아이를 출산하고 나의 내면에서 질질 흘리며 쿨쿨 겨울잠을 잠자던 모성애를 깨우느라...  개월이 쏜살같이 지났다.




남편은 축제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는 끊임없이 떠나야 돈을 버는 사람이다.


그리고 떠나야 숨구멍이 트이는 사람이다.


그의 숨구멍을 촘촘히 막아보는 시도를 몇 번 해보았다. 하지만 잠시 막혔던 그 구멍들에서 제대로 터진 폭탄을 경험한 뒤에는 그를 지맘대로 살게 내버려 두기로 했다.  


난산이었던  아이의 출산의 잔재를 걷어내고 무늬는 제법 엄마가 되었던 아기의 백일쯤이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의 유일한 수입원이었던 전국 순회공연을 떠나는 뮤직 페스티벌과 크고 작은 축제를 따라서  식구의 서커스 유랑단 생활이 시작되었다.


덕분에 나는 아이와 함께 어디까지 어떻게 가보았나?


아기와 함께 여행 전문가로 세계 최고에 극하는 것은 물론 아기와 극기훈련 여행의 고수가 될수 있었다.


아이의 개월에 따라 짐 싸기 목록, 비행에 대비하는 노하우와 아이와의 여행에서 펼쳐질법한 멘붕 리스트, 전액을 지불하고도 좌석엔 앉지도 못한 채 입석(?)으로 알차게 아기를 아기 띠에 매고 서서 밥먹으며 비행하는 법 등 등 블로그나 유튜브에서 미쳐 요약정리하지 못한 백만 가지 실전 체크 리스트를 보유하고 있다.


아기는 페스티벌 무대 뒤에서 기어 다니다니더니... 일어섰고... 걸음마를 터득했다. 밴드들의 퍼포먼스를 따라 하며 도리도리와 잼잼은 물론 아기로써의 기본 율동을 연마했다. 가수들의 열창을 자장가로 착각하며 잠이 들었다.


누군가의 기준에서는 마른 하늘의 날벼락일 수도 있는 소음 밴드(?)들의 연주 소리에도 새근새근 드는 아기를 보며,  인간은 폭우와 바람이 쏟아져도 떠내려 가지 않고, 결국 어떻게든 상황에 적응하고 생존하는 동물이라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다행히 우리 가족에겐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작은 보금자리가 시드니와 발리 두 곳에 있었다. 그  두 곳에서 가뭄에 콩나듯 점처럼 일상의 쉼표를 찍었다.  


아기는 원숭이가 가득한 정글 속에서 뒹굴고 야자수 가득한 바닷가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뭐가 그리 신나는지 까르르 웃곤 했다.  흙과 모래 돌 나뭇가지들을 장난감으로 물고 빨며 무럭무럭 자랐다.


우리 가족에게는  살아보는 여행을 표방하는 에어비앤비는 또 다른 집이기도 했다.  


아기가 이유식을 하기 시작한 후부터는 아기 전용 음식을 생산해야 하기에 부엌이 있는 숙소가 필요했다. 내게  에어비앤비는 단순히 살아보는 여행이 아니라 아기와 살아남기 위한 여행 숙소였다.  꽤 여러 번 앞뒤 다 잘린 장기 여행이나 살아보는 여행에 인터뷰 대상이 된 적도, 심지어 살아보는 여행을 주제로 한  에어비앤비 단행본에 모범적인 투숙 가족(?) 사례로 소개된 적도 있다.


지금 돌아보니 그런 나날들이 하나 둘씩 모여서  내 아이들의 성장 일기이도 한 동시에 엉망진창 실투 투성이인 빵점 엄마의 육아 일기가 되었다.



우리는 돌아오는 기쁨을 즐기려 떠나는 사람들 같았다. 집을 떠나는 날보다 집에 돌아오는 날엔 더 마음이 설레었다.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왔다.


아기와 살아남기 위한 여행에서 낙오하지 않고 살아서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일상의 소소함에 감사함을 느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주는 찬란함을... 고된 서커스 유랑단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때마다...  온 몸으로 만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코로나가 찾아온 새로운 팬데믹 시대이다.  내가 살고 있는 나라에서는 이벤트와 축제는 현재...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삶의 모습도 180도 변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였지만 팬데믹 시대가 펼쳐지기 바로 직전에 남편은 공무원이 되었다.  그리고 웨딩 이벤트 플로리스트로 일하던 나는... 규칙적인 입금을 보장하는 프랜차이져  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예전처럼 끊임없이 떠나지는 않지만 나는 여전히 상상 속에서 자주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상상 속 여행중... 끊임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상상 속의 무사귀환만으로도...


지난주와 같은 이번 주,

어제와 비슷한 오늘,

반복되는 매일의 일상이

내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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