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립학교 교사는 보통 4년 차가 되면 서서히 이별을 준비한다. 다음 해에는 머물지 못할 장소와 계절에까지 의미를 부여한다.
학생들 졸업과 함께 학교를 떠나는 것과는 달리, 2, 3학년에 학생들을 남기고 떠나려면 이별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어렵다.
실제로 오래전 가장 과격했었지만 가장 드라마틱한 성장을 이루며 극적인 교감을 이뤘던 사대부고 1학년 반 학생들은 자신들을 두고 학교를 떠나는 날 용납할 수 없다는 듯 한 명씩 악수로 헤어지자는 내 제의를 거절했었다.
아이들은 내게 악수로 떠나보낼 수 없다고 한 명씩 안아달라고 하면서 눈물로 이별을 했다ㅠㅠ
대구여고 어떤 학생은 내가 떠난 2학년 국어시간에 김춘수 시인의 "꽃"을 배우며 전교생 이름을 외워서 불러줬던 내 생각이 난다며 울음을 터뜨렸다고 국어쌤의 전화를 받은 적도 있었다.
아이들을 잊을 수가 없는 미련으로 학교를 다시 방문했을 때 아이들이 나를 보려 몰려들었다. 사대부고에서도, 대구여고에서도 그랬다. 직전 학교인 강동고는 상상만 했을 뿐 코로나 때문에 한 번도 방문하지 못했다.
어떤 날은 후배교사와의 식사 약속을 명분으로 어둑해진 교문 앞 골목에서 야자 안 하고 하교하는 학생들과 조용하게 인사를 한 적도 있다. 학생들이 놀라면서 연예인 보는 느낌이라고 했다. 매력적이라고 해석할 정도로 내가 바보는 아니고, 일상을 공유하지 않는 먼 기억 속의 존재라는 의미여서 마음이 아팠다.
낮에 갔을 때는 몰려와서 내게 악수를 청하는 애들이 많았는데, 손을 씻으면 안 되겠다는 지키지 못할 결의를 하기도 했다고..
그래서 친한 그 학교 선생님이 왜 그렇게 청블리쌤을 못 잊냐고 학생들에게 물으니... 잘생겨서 그렇다는 말을 하는 학생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팩트를 내게 굳이 전달해 주었다. 그 대신 자신들을 진심으로 아껴주고 애정해주었던 선생님이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이별은 나만의 아쉬움이 아니었고 교육적인 영향을 남겼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그리움이 깊어졌지만...
학교 선생님들 만나려는 명분을 만들어 한 번씩 학교를 다시 방문할 수도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발길을 멀리해야 했다.
나와의 만남은 일상이 아니니 나의 방문은 연예인을 만나는 듯한 한두 번의 이벤트로 끝나야 했다.
예외적으로 고1 때 일상을 나누고 떠났던 대구여고에, 그 학생들이 고3이 된 여름방학에 용기를 내서 학교를 다시 찾아간 적도 있었다. 계속 마음으로 해왔던 응원을 실제로 전하고 싶어서였다.
아이들은 감사하게도 아직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일개 1학년 한 학반의 담임교사에 영어교과 선생님에 불과한 나를...
교문 앞에 서서 방학 오후 자습을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을 격려하고 응원하며 그리움도 전했다.
나는 이별에 서툴다.
추억은 현실과의 단절이어야 할 텐데...
나의 추억은 이별 후 한동안은 미련한 미련으로 기억과 현실을 오가며 더디게 봉인되었다.
23.6년간 있던 익숙한 고등학교를 떠날 때는 첫 중학교 근무지로 왔을 때의 서글픈 느낌은 훌쩍 들어버린 나이만큼 서러움 같은 슬픔이 느껴져서.. 고등학교 교사를 은퇴하는 느낌으로 혼자서 오열했던 기억이 있다.
남겨진 강동고 학생 한 명은 종업식 날에 교무실로 쳐들어와서 "선생님 없는 이 학교가 무슨 학교에요?" 이렇게 악성 민원(?)을 대놓고 제기했을 때는 눈물 없이 담담하게 학생을 위로했는데, 현실로 마주한 새로 부임할 학교의 실체를 보고 무너져내렸고, 남겨두고 와야 했던 학생들과의 이별의 슬픔 외에 고등학교에서 만날 수 있었을 학생들과의 잠재적인 만남과의 이별의 깊이를 감당하지 못해서였다.
어느덧 중학교 4년 차 교사로 마지막 가을을 겪고 있다.
어느 때보다 학년 분위기가 좋았던 이곳의 담임선생님들은 나와의 이별을 전제로 농담을 자주 한다.
학년부장으로서 획기적인 프로그램이나 편리한 양식을 선물해 드릴 때마다 이래놓고 떠나실 거냐고... 나의 사소한 애씀과 노력마다 의미를 부여하며 떠나지 말라고 시위하기도 한다.
특히 나의 부족함을 완벽하게 메우시는 기획쌤은 나의 떠남에 대해 특히 더 자주 언급하시면서 벌써부터 이별을 준비하시는 것 같다.
인근 고등학교에서 설명회를 나오셨는데 나와 메신저로 설명회 진행 상황을 의논했던 교감선생님께서는 내가 마음에 드셨는지 이동할 때 자신의 학교를 내신전보서에 지원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그래서 일반 내신으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이동하려면 8년은 지나야 해서 현실성이 없을 거라고 거절 같은 답변을 드렸다.
그 얘기를 기획쌤께 하니까...
우리 부장님을 초빙으로 모셔가도 데려갈까 말까일 텐데 4개 지원학교 중 하나로 지원하라는 제안으로 되겠냐고....
그러면서 마치 나를 시집보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하셔서 깜짝 놀랐다.
지금 이곳에서 유예해서 더 머무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학교가 아니라면 보내드릴 수 없다고...
그나마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4년 만에도 초빙으로 고등학교에 갈 기회가 있을 수 있고, 그게 불가능한 기회가 아니라면 지금도 충분히 많은 나이에,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도전하는 것이 맞을 것 같기도 하고... 교무부장이나 학생부장 외에 내가 도전할 만한 초빙공고가 나올지도 살펴봐야겠다는 선택 유보인 상태이지만..
그래서 가능성이 높지는 않아도 고등학교에 갈 기회가 있다면 계속 나를 붙잡아 둘 수 없을 거라는 마음이 전해졌다.
같이 있으면 좋지만, 더 좋은 곳에 갈 수 있다면 놓아드리겠다는...
비유적인 상황이고, 내가 남겠다고 남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그런 분위기에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 주고 아끼시는 동료 담임쌤들의 마음에 직장동료만으로 규정할 수 없는 그 진심이 느껴져서 한없이 감동이 되었다.
중3 교무실에는 다양한 고등학교에서 많은 분들이 홍보자료 전달을 위해 학교를 방문하신다. 보통은 중3부장인 나와 약속을 미리 잡고 방문하시지만 그렇지 않고, 내가 부재일 경우에 다른 담임쌤들이 본인들의 약속인 것처럼 진심으로 환대해 주시는 따뜻함을 느끼셨다고 재방문 하신 선생님들께서 나를 통해 감사의 마음을 전해주시기도 했다.
학년부장이라고 너무 겁먹고 부담이 되었는데 이제까지 큰 사고 없이 잘 지내올 수 있던 건 순전히 동료담임쌤들 덕분이라는 것이, 나의 부족함과 리더십, 친화력 부재의 객관적인 모습을 생각하면 더 명확하게 증명이 되는 것 같다.
사실 한 해 더 내가 중3부장인 채로 되도록 지금 멤버를 유지하고 싶다는 선생님들의 뜻도, 있는 모습 그대로 날 받아주겠다는, 그것도 한 해 더 그러시겠다는 의지와 결단이기도 해서 더 감사하다.
내 나름의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나의 노력 이상으로 늘 칭찬하고 격려해 주시는 선생님들의 따뜻함에 계속 힘을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시집보내는 느낌...
딸들을 수도권으로 독립시키고 나서 이미 비슷한 체험을 했고... 욕심을 비우고 아빠 엄마랑 같이 살면서 가까운 대학을 갔어도 너무 좋았겠지만, 집을 떠나는 것이 딸들의 성장과 더 큰 행복을 위한 일이라는 것이라는 인정이, 이별과 그에 따른 그리움을 감당하게 해주는 것 같았는데.
그런데 내가 떠나는 것을 시집보내는 느낌에 비유해 주시다니... 난 도대체 어떤 분들과 얼마나 큰 축복을 누리며 지내고 있었던 건지ㅠㅠ
보통은 떠날 때나 떠나보낼 때 학생들만이 나의 그리움과 아픈 이별의 대상이었는데, 졸업하는 학생들과 학교를 함께 떠나는 이번의 떠남에는 선생님들 때문에 힘들어질까 봐 너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