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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Nov 22. 2024

떡볶이(1)

떡볶이(1)


 서른 중반이 다 된 나는 유난히도 달콤한 맛을 좋아한다. 아직도 어린아이 입 맛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를 살펴보면, 그 끝엔 늘 떡볶이가 있다.


언제 떡볶이를 처음 먹어보았을까. 분명하게 기억해 낼 수는 없지만, 어렸을 적 나는  엄마와 자주 ‘수진이네’에 갔다. 시장 한 귀퉁이에서 떡볶이, 순대, 어묵을 파는 집이었는데, 매콤한 맛보다는 단 맛이 유독 강한 떡볶이를 파는 집이었다.


엄마는 그 집 사장님을 ‘언니’라고 불렀다. 추운 겨울, 발을 동동 구르며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가면 음식이 뿜어내는 자욱한 연기가 눈앞을 가렸다. 그 안에는 달그락 거리는 소리, 오밀조밀 모여 앉은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 눅눅하고 습한 향 같은 것들이 뒤섞여있었다.


수진이네 떡볶이는 다른 집들과는 맛이 좀 달랐다.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큰 철판 위에는 언제나 떡볶이가 먹음직스럽게 놓여있었는데, 그 옆에 설탕이 가득 들어있는 부대가 있었다. 아마도 수진이네 떡볶이 맛의 비결은 ‘설탕’에 있었던 것 같다.


 수진이네에 가면, 엄마는 떡볶이 한 접시와 순대를 시켰고, 나는 옆에서 몽땅한 이쑤시개로 떡을 하나씩 찍어 오물오물 씹었다. 엄마는 떡볶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한 접시 모두 내 차지가 되었다. 내가 떡볶이에 정신이 팔려 있으면 엄마와 ‘언니’는 주로 수진이네 포장마차의 주인공인 수진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진이가 아파서 학교에 가지 못한 지 몇 달이 되었다는 이야기, 병원비가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


계산할 때마다 엄마는 만 원짜리 한 장을 내고, 거스름돈은 괜찮다고 말하며 “다음에 더 많이 줘.”하고 미소 지었다. 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엄마는 종종 국밥 한 그릇을 시켜놓고 식당을 나가지 못한 채,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던 어떤 사람의 밥값을 몰래 내주는 사람이었으니깐. 어린 나에게, 엄마는 그런 방식으로 타인을 위로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김 내음이 가득 한 그 공간은 일 때문에 늘 바빴던 엄마와 눈을 마주치고 웃을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수진이네 가기를 좋아했는지 모른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그 대상을 개별적이고 고유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흔해빠진 떡볶이 중에서, 수진이네 떡볶이는 나에게 특별했으니깐. 뭐랄까, 조금 더 또렷해지는 느낌. 좋아한다는 감정은 결국 그 대상을 이루는 모든 순간과의 만남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 같다.


내가 떡볶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떡볶이 그 자체만이 아니라 수진이네에서 느꼈던 따뜻함, 겨울의 냉기를 녹여주는 다정함, 엄마의 미소와 배려에서 비롯되었을지 모른다. 그 작은 포장마차 안에서 느꼈던 모든 감정들이 합쳐져, 떡볶이는 그때부터 나에게 단순한 음식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일 테다.


 시장 한 귀퉁이를 지키고 있던, 파란색 수진이네 포장마차는 이제 사라졌다. 하지만, 서른이 넘은 나는 여전히 떡볶이를 좋아한다. 요즘은 떡볶이의 맛과 종류가 너무나 다양해서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 대체적으로는 맵고 자극적이며 중독성이 강한 프랜차이즈 떡볶이들인데, 적어도 내게 있어서 떡볶이 맛은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따금씩 사라져 버린 수진이네 떡볶이가 그리워진다.


물론 요즘 파는 떡볶이도 다들 훌륭하고, 어렸을 적 보다 그 종류도 훨씬 다양해졌다. 매콤한 국물 떡볶이도, 달콤한 로제 떡볶이도, 진한 크림 떡볶이도 맛있다. 하지만 어쩐지 그 어떤 맛도 수진이네에서 먹었던 떡볶이와는 다르다. 그 집 떡볶이의 달콤한 맛과 포장마차의 따뜻한 온기는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다.


사람들은 떡볶이의 맛을 얘기하지만, 아마도 나에게는 그 안에 담긴 시간들이 더 특별하기 때문인 듯하다. 나에게는 누구와 그 음식을 먹었는지, 어느 계절에 먹었는지, 들려오던 소리와 음악, 그리고 풍겨오던 냄새 같은 것들이 음식을 보통의 것들과 구별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이제 딸아이와 함께 떡볶이를 먹는다. 아직은 짜장 떡볶이가 더 맛있다고 말할 어린 나이지만, 나는 엄마가 내게 그랬듯이 내 아이에게도 따스한 추억이 되고 싶다.


김 내음이 가득한 공간에서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떡볶이를 호호 불어 한 입 먹고, 함께 미소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넉넉하지 못한 이의 형편을 이해해 주는 마음을 나를 통해 아이가 배워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훗날 내 딸아이도 누군가에게 떡볶이 한 접시 내어주는, 위로가 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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