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my Jul 11. 2022

어렸을 적에는 엄마 품에 안기어 숨소리를 맞추어 보았다.


엄마가 쉬는 숨의 박자를 맞추기가 어려워서 몇 번을 해보다 잠에 들었던 밤이 여럿 있다.


어린 나는 궁금했다.

같은 숨인데 왜 달리 쉬어 질까.


사람들이 숨을 다 똑같이 쉬는 줄 알았다. 살아있다는 것은 숨을 쉬는 일이니깐. 움직이는 사람들은 다 같은 박자로 같은 호흡으로 숨을 들이켜고 내쉬는 줄 알았다.


그리고 깨달은 것은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끌어안고 있는 엄마와의 숨 조차도 같을 수 없다는 것.


저마다 쉬는 숨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의 숨이 끊어지는 것과 멎는 것을 보았다.

한 번은 선택에 따른 처절함이었고

한 번은 부름에 의한 고요함이었다.  

   

처절함에 대하여서는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이 아직 없다.

나는 여리고 눈물이 많으며 강단 있는 체 하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야 인정하는 바.

사실은 옹졸하며 겁을 한가득 집어먹은 그저 작은 계집아이라는 것을.

     



산소 호흡기를 쓰고 있어도 언니의 어머니는 평온해 보였다.

주무시고 있다고 했다.      

함께 병문안을 왔던 선생님들은 안부를 물었다.      


여름이었나.      

나는 회색 교복을 입고 있었고, 가방은 빨간색.      

언제고 나는 그런 상황에서는 멍한 표정이 된다.      


죽음에도 소리가 있을까.

저벅저벅, 또각또각, 스윽스윽.

글쎄.      

왜인지 내 눈은 그녀의 가슴팍에 머물렀다.      

오르고 내리고. 오르고 내리고.      

숨이 쉬어질까 아니 쉬어질까.      

나는 그게 항시 궁금해서 잠을 자고 있던 내 어머니와 할머니의 코 아래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곤 했었으니깐.


내 삶은 아주 가끔 지나치게 극적일 때가 있고, 그 순간은 나를 비범한 사람이나 또는 기괴한 사람으로 만들어낸다.

      

내려갔던 가슴팍이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을 때,

그리고 잠시 동안 소근 거리는 안부의 이야기가 이어졌을 때.      


나는 불렀다.      

“언니.”라고.


질서가 없어진 병실 가운데 나는 그녀의 어머니의 마른 발을 붙잡고 신께 기도했다.

숨이 돌아오기를.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신을 원망하지 않았다.


숨은 달리 쉬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깐.


숨과 삶이 같은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염(殮)하였다.


침묵했다. 바라보았다. 삶의 마지막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가 않아서.


낯이 설었다.


우리는 분명 식구(食口)였지. 뜨거운 밥 알을 후후 불어가며 함께 나눠먹던. 수의를 입혀가는 모습을 천천히 지켜봤다. 그때에 눈물을 흘리는 자는 없었다. 가슴이 메어져 주저앉거나 정신을 놓는 이도 없었다.


온기가 없는 낯선 자.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누군가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가운데 그 지켜볼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상실을 느끼지 못했는지 모른다.


차분한 숨소리와 사그락 거리는 소리만이 뒤엉켜 공간을 메움 하고 있었다.



그 대화를 기억한다.


초록의 대문 앞에 앉아서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가 있었다.


"이것 , 이렇게 하면 연기 같은 것이 나오지? 이걸 입김.이라고 ."


겨울에는 후, 하면 입에서 나오는 숨을 눈으로 보는 수가 있구나. 신기하네 정말.


살아있다고, 그게 아주 차가운 겨울이어서 더운 숨을 김으로 만들어 내는 거라고.


살아있어서 만들 수 있는 거라고, 당신이 그랬다.




숨을 트는 순간과 맺는 순간이 다르고 숨의 길이와 그 박자가 모두 제 각각이다.


삶이 그러하듯 누구 하나 같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다. 존재의 방식이 다르고 그 의미가 다르며 이름마저 같은 것이 없다. 부르는 소리가 같다 한들 그 안에 들어있는 우주는 저 마다 다른 모양의 공간을 이루고 있을 테니깐.


숨이라는 것이 눈에 보였다면 어땠을까.


그것에 색이 있거나, 모양이 있었더라면.


나는 더 잘 알아챘을까.


당신의 마음을.


또는 내 마음을.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하루를 보낸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눕고 나면, 자기 전 잠시 숨소리를 들어보는 것 같다. 삶이 이러하다. 산다고 생각하며 사는 이가 없다. 깨어나니 일어나고 일어나니 앉는다.


그러다, 겨울쯤 되면 '아, 입김이 나네'하고 신기해하며 한 번 돌아봐주고.


삶이 그렇다.


나의 매 호흡이 어떠한지를 느껴야 한다면 아마도 제정신은 아녔을듯하다. 숨 쉬고 있는데 숨 쉬는지 모르고 산다. 사는데 사는지 모르고 산다.


그러다가 가끔 '아, 나 살아있구나.' 하며 깨닫는 때가 온다.


숨은 저마다 다 다르게 쉬어지고 그 깊이도 다르고 끊어짐도 맺어짐도 다르겠지만, 생각하기는.


꼭 그때가 있으면 좋겠다.


'아, 내가 살아있구나.'라는 그때.


그러려고 숨 쉬는 게 아닐까, 그대도 나도.

















  


작가의 이전글 에이미(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