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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반짝 빛나는 Aug 21. 2023

엄마, 휴지 좀 사주세요!


 

남편에 이어 아들도 똑같은 말을 했다.






지난 글에도 언급했지만, 평소 핫딜과 최저가 세일을 챙기기 못하는 주부라 생필품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한 달에 한번, 할인쿠폰과 멤버십 할인으로 구매한다. (이렇게 최저가 구매를 했다고 믿기로 했다.)

화장지가 떨어진 날,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디선가 받은 갑 티슈가 떠올랐다.

우리 집은 두루마리를 이용하기에 베란다 구석 한편에 두었던 반가운 상자를 꺼내 화장실에 뒀다.


마트엘 갔는데 "화장지를 사면 안 될까?"라며 남편이 화장지 한팩을 들어 올렸다.

가격이 온라인보다 1.5배 비싼 것 같았다.

곧 쇼핑날이 다가오니 참아달라 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사실, 보름 전 커피캡슐이 떨어져 내가 더 기다린 날이었다.

할인 쿠폰을 다운받으러 앱에 들어갔는데, 맙소사! 8천 원 할인 쿠폰이 선착순 마감으로 끝이 났다.

한 달을 기다렸는데 손 빠르게 움직이지 못한 나를 자책했지만 이미 구매 의욕을 상실해 버렸다.

의욕이 생기지 않아 늑장을 부리다 주문하려고 보니 이게 무슨 운명의 시간인가!

12시가 지나면 멤버십 할인도 못 받는데, 시간을 보니 밤 12시 1분이었다.

쿠폰도 못 받고 멤버십 할인도 날아가니 하루새 만원이 눈앞에서 사라진 기분이었다.

주문을 할까 잠시 망설였지만,

1분 차이로 구매를 하자니 아까워 사기 싫어졌다.
다음 달을 기약하며 앱을 껐다.





엄마, 휴지 좀 사주세요!



화장실 문을 벌컥 열고 나오며 아들이 말했다.


''거기 있잖아?''

''흠, 쓰던 거 사주면 안 돼요?''

''좀만 더 그걸로 써 보자.''

출근 준비 하던 남편이

"화장지 주문 할 때 되었잖아요?"

라며 나름 견뎠다는 표정을 짓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게 묻는다.

나는 1분 사이 하루가 지났고 놓친 만원이 아쉬워 다음 달로 쇼핑을 미루었다고 설명했다.

커피 캡슐이 벌써 떨어져 보름을 꿋꿋이 버텼는데, 한 달을 또 기다려야 하는 나야말로 속상하다며 힘주어 말했다.


그러자 남편은 놀라며 말한다.

그럼, 한 달이나 더 기다려야 된다고요??



아니, 내가 신문지를 비벼서 쓰라는 것도 아니고 훨씬 부드럽고 비싼 갑 티슈를 쓰라고 했건만 이제 막내까지 합세해 사달라 한다.

별것도 아닌 것을 가족 평화를 위해 그냥 사주면 될 텐데,  나도 무슨 오기인지 태연하게 가방을 털어 휴대용 화장지를 모으고 싱크대를 뒤져 커피스틱을 찾는다.


외출준비가 1시간이 걸리는 남편과 눈뜨고 10분이면 끝나는 아내.

여행엔 비누 한 장과 선크림 하나면 끝나는 아내와 베개까지 챙겨야 하는 남편.

(우리 집은 남편이 사용해 폼 클렌징을 쓰고 있다.)

여벌옷을 안 가지고 시댁엘 가면 어머님 옷(이미 몇 번 그랬음) 아버님 옷을 입으래도 할 수 있는데

남편은 친정 갔을 때 잘 옷을 안 챙겨 왔다며 마트에 가서 잠옷을 사 왔다.

'모든 게 갖춰져 편리한 것도 좋지만 주어진 것만으로도 지내보는 것은 어떨까?' 늘 내가 요즘 생각하는 방향성이지만 욕심과 이기심이 될 수도 있기에 가족에겐 강요하지 않았다. 나 또한 절대 포기 못하는 다른 예민한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본의 아니게 이번엔 강요한 것 같아 곰곰이 나를 성찰해 보았다.

잘 풀리는 갑 티슈

하지만!

화장실에 갑 티슈가 불편한 이유를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휴지곽이 화장실 바닥에 툭, 떨어져도 말없이 주워 올리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예전에도 두루마리를 다 쓴 날엔 '축 개업' 휴대용 화장지를 화장실에서 쓰기도 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일까?

일단 한 달을 버텨 볼 생각이다.

커피도 이참에 '끊어볼까?'라고 생각해 봤지만 조금 두렵긴 하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두통이 스멀스멀 올라와서 카페인 중독 현상인 것 같아 줄여야지 생각만 했었는데,

끊기는 힘들겠지만 이참에 꼭 줄여보리라 다짐한다.




좋아하는 것 편리한 것은 누구나 추구하고 누리고 살고 싶다.

하지만,

주어진 환경이 조금 불편해도 겪어보기.

삶이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차선의 대안을 생각하며 수정해 보기.

그렇게 한 발 더 걸어보기.

싫어하는 것도 묵묵히 참고 해 보기.


(화장지 구매 하나에 너무 멀리 온 것 같다.아하하;;^^머쓱)

나도 나이 40 가까이에 든 생각이라 아이들에겐 강요는 무리겠지만...! 

(40대 남.(의)편도 무리 겠...)

나부터 하나씩 실천하며 살아 보기로 다짐해 본다.



**앗! 오해는 금물.

지금 당장 필요하다 생각되는 것이라면, 가격이 2배 이상 비싸더라도 (새벽에) 집 앞 편의점에 달려가서 사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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