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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옥림 Dec 07. 2023

원래 멀티가 안 되던 사람이어서 그런지 더 힘드네


엄마는 멀티 태스킹이 잘 돼야 한다.


그런데 난 원래 멀티가 안 되던 사람이다.


공부할 때는 공부만 해야 하고, 일할 때는 일만 해야 하고.


그래서 육아가 힘겹다.



지난 이틀은 이유식을 만들어야 했다.


큐브에 재료들을 얼려놓고 토핑이나 죽으로 주는 방식으로 하고 있는데, 큐브가 다 떨어져 가고 있었다.


심지어 중요한 쌀, 소고기도 얼마 안 남았다.



화요일에는 당근, 감자, 청경채를 만들어두고 수요일에는 쌀과 소고기를 만들어야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당근, 감자, 청경채는 찜기에 넣고 시간에 맞춰 각 재료들을 꺼내면 된다.


만만하게 봤지만 감자칼로 당근과 감자 껍질을 벗기고 찌기 좋게 썰고, 시간 맞춰서 찜기에 꺼내고..


꺼낸 재료를 믹서기에 살짝 갈아서 큐브에 담고.


이 모든 과정을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아들을 지켜보며 동시에 해내야 한다.


다른 엄마들은 어떻게 하는 거지?


아이가 또 위태롭게 벽을 짚고 일어서려고 한다.


하던걸 다 던져두고 나름 안전해 보이는 곳으로 이동시켜 보지만 이 아이는 이제 빠르다.

 

재빠르게 움직여 또 딱 넘어지기 좋은 자세를 취한다.


결국 나는 아이에게 합체~ 합체~~! 노래 부르며 장난치듯이 아기띠로 내 몸에 묶어버린다.


다행히 아기띠를 좋아한다. 발을 버둥버둥 움직이며 주변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재빠르게 하던 일을 하고 믹서기를 갈기 시작하는데 아들이 자지러지게 운다.


재료에 따라 다른데 믹서기 소리를 무서워한다.


소고기처럼 부드러운 재료는 울지 않지만 쌀이나 당근처럼 약간 단단한 재료가 갈리는 소리는 싫어한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아이를 소리가 나는 장난감이 있는 바닥에 내려놓고 믹서기를 사용한다.


장난감에 집중해서인지, 거리가 있어서인지 믹서기 소리를 못 듣는다.


그래도 아이가 넘어질까 봐 갈다가 방에 가보고 좀 갈다가 방에 가보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화요일 이유식 만들기는 성공했다.




수요일, 나는 원래 외출 후 돌아오는 길에 좋아하는 정육점에서 소고기를 사 올 계획이었다.


그런데 아침에 부부 싸움 후 재택근무로 집에 있을 예정이었던 남편은 나가버렸고 난 외출을 나갈 수 없게 됐다.


아기띠를 매고 정육점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자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난처했다. 당장 내일 먹을 소고기가 없는데..


다른 건 몰라도 철분 때문에 소고기는 꼭 먹여야 한다고 했는데..


추운 겨울날인데 내 아이를 아기띠에 매고 빗방울을 맞으며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비마트가 떠올랐다.


비마트에도 소고기가 있나, 찾아보니 있다.


내가 다니는 정육점보다는 비싸지만 어쨌든 있다.


그런데 배달을 하려면 최소 주문 금액을 맞춰야 한다.


오후 2시인데 아직 한 끼도 먹질 못했다. 내가 먹을 점심도 함께 주문해야겠다.


그런데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고, 음식을 차리는 것도 번거롭고, 뭔가를 먹을 때 아들이 내게 다가와 음식을 엎을 위험이 있는 것도 싫었다.


고민 끝에 결국 빵과 초코파이를 주문했다.


구석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조금씩 뜯어먹어야지.


그래도 금액이 안 맞아서 나중에 반찬으로 먹을 냉동식품들 몇 개를 더 주문했다.


주문하고 쌀 무게를 재서 100g만 따로 빼 물에 불리기 시작했다.


요즘은 7배 죽을 먹인다. 100g 쌀을 갈고 700ml 물을 넣고 끓여 먹이면 된다.


소고기가 도착할 때쯤 아들은 신이 나 더 에너지 넘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유식 만들기는 보류해야지, 빵이나 뜯어먹어야지.


역시나 아들은 내게 관심을 가지며 빵 봉지를 만지고 싶어 한다.


빵 봉지를 가지고 놀고 이유식을 먹이고 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 다 됐다.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어서 또 아기띠를 착용하고 쌀을 갈기 시작했다.


아들이 울길래 조금 갈고 달래고 조금 갈고 달랬다.


이제 쌀죽을 끓여야 하는데 불을 사용하면서 아기띠 착용하고 있기에는 겁이 났다.


괜히 뜨거운 게 튈까 봐 걱정돼 또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이는 신이 나 부엌에 있는 쌀 봉투를 만지고 걸레를 만지려다가 내가 막아 실패한다.


쌀죽을 끓이다 보니 아들이 운다.


나는 가스불을 꺼버리고 아이를 달래고 재워보려고 한다.


하지만 아이는 자질 않고 놀려고 했고 나는 그대로 이유식 만들기를 멈추고 아이와 논다.


재우고 나면 이유식 다시 만들어야지..

안타깝게도 우리 아들은 9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부랴부랴 끓이던 쌀죽을 다시 끓이는데 그새 뭉쳐 떡 같아 보인다.


팔팔 끓이니 뭉친 게 풀려 그나마 죽 같아진다.


이 모든 과정을 다 마치고 그대로 풀썩 누워 눈을 감는다.


내일은 또 어떻게 버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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