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다녔던 직장에 사표를 냈다. 설렘보다는 불안함이 더 컸다. 그러나 그때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12월 아주 추웠던 날, 인사팀에 들러 퇴직과 관련된 마지막 행정 처리를 했다. 동료들 일하고 있던 사무실 복도를 지나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청사 앞길에 양탄자처럼 깔려있던 샛노란 은행잎들, 그 위로 흐린 하늘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내 이름 박혀있는, 막 떠나온 직장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앙부처 공무원을 자의로그만두는 것, 그리고 연고도 없는 스페인이라는 먼 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 이 두 가지는 친구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쉽게 이해가 안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떠났다.마치 오래전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던 길을 떠나는 것처럼.
나름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었으니 남은 것은 불안정뿐이었다.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것들은 다가서면 사라져 버리는 신기루 같은 것임을 알면서 불안감은 더 커져갔다. 불안감을 이기기 위해선 미친 듯이 일하는 수밖에 없었다. 통역, 가이드, 강의, 집필. 여기에 아내가 하는 게스트하우스 도우미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했다.
한식당을 해볼까
2016년 여름을 기억한다.바르셀로나에 정착한 지 6년이 되던 그 해 여름. 그동안 해오던 컨설팅 일과 통역 가이드 일이 재미있긴 했지만 일상적인 일이 되다 보니 일로 인한 자극은 조금씩 사라져 갔다. 그 해 5월에만 스페인을 두 바퀴돌았다. 리스본과 포르투도 다녀왔고, 그 와중에 통역도 여섯 번을 했다. 31일 중 26일을 쉬지 않고 비슷한 일을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졌다.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한식당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전까지 식당이란 것을 해본 적도 없고 음식 관련해서 일해본 적도 없었다. 믿는 것이 있었다면 아내가 10년 가까이 한국여행객을 상대로 게스트하우스를 하면서 꼼꼼히 기록해 둔 아내만의 레시피 하나였다. 그리고 수원 영통에서 한식당을 하는 형으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은 것 정도가 경험이라면 경험이랄까.
바르셀로나는 상주인구가 160만 명으로 수도 마드리드에 이어 스페인의 두 번째 도시다. 게다가 연간 관광객이 1200만 명에 달해 이들을 상대로 한 숙박업과 요식업이 매우 발달한 도시다.바르셀로나가 세계 각국 음식의 경연장이 된 것은 당연하다.
바르셀로나 중심 람블라스(Ramblas) 거리나 그라시아(Gracia) 거리 주변에는 다양한 식당들이 경쟁하고 있다. 드물긴 하지만 몇십 년을 똑같은 모습으로 장사하는 식당도 있지만 대부분 금방 생겼다가 금방 없어진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내 식당은 어디에
그런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두렵기도 했지만 뭐에 쫓긴 듯식당 자리를 보러 다녔다. 그러나 식당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맘에 들면 돈이 안 맞고 돈에 맞추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발품을 판 지 몇 주, 마음에도 들고 돈도 얼추 맞는 식당 후보를 찾았다. 바르셀로나 중심람블라스 거리에서 라발 지구 안쪽으로 약 30m 들어간 곳에 주방이 잘 갖춰진 Take Out 전문식당이었다. Take Out만 할 수 있다는 것이 단점이었지만 최소한의 인원으로 운영할 수 있겠다는 것, 그리고 중심거리 람블라스 거리와 가깝다는 장점에 자꾸 끌렸다. 영업을 하고 있던 곳이라 보이는 부분은 물론 주방과 안쪽 창고도 꼼꼼히 보고 관할 구청에 가서 허가 내용도 확인하는 등 나름대로 꼼꼼히 살펴보았다.
다른 곳에서 식당을 하고 있는 중국 친구를 불러 의견도 들어보고 매출 시뮬레이션도 해 보는 한편, 인수를 염두에 두고 주인과 권리금(Traspaso) 협상을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주인은 내가 제시한 금액을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금액 차이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인수를 포기했다. 테이크 아웃만 가능하다는 단점이 다른 장점보다 갈수록 크게 보였던 것이 그 이유다. 이후 그 근처 갈 때마다 궁금해서 들러보곤 했는데 몇 번의 주인이 바뀌는 동안 한 번도 잘 되는 것 같지 않았다.
이후 여름 내내 땀을 흘리며 다른 식당을 찾아다녔지만 맘에 드는 식당을 찾는 것이 생각했던 것만큼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그해 여름엔 통역과 가이드 일도 많았고 부산의 경성대학과 노인 문제와 관련된 용역보고서작성과 출판까지 해야 해서식당을 보러 다닐 시간 자체가 많지 않았다.
식당 오픈에 대한 열망도 조금 사그라질 무렵 전문 부동산으로부터 식당 하나를 소개받았다.지하철 역 입구와 10m 거리에 있다는 것에 끌렸다. 그러나 사람의 왕래가 많지 않은 길에 있었고 허름한 외관과 휴업 중인 식당이라는 것에 처음엔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내부를 보고 나서는 약간 마음이 바뀌었다. 큰 주방에 비교적 잘 갖춰진 주방시설, 크지는 않지만 반듯한 홀, 그리고 권리금과 월 임대료가 저렴한 것은 마음에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뭐랄까, 일종의 느낌이랄까. 이 가게를 인수하면 적어도 실패는 하지 않을 것 같다는 그런 느낌.
아내와 나는 식당 내부를 처음 본 그때부터 이미 내부 배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며칠 후에 아이들과 같이 방문했는데 아이들 역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마도 아이들은 아이들이 가게 위치나 권리금 이런 것보다는 가게가 주는 느낌에 더 호감이 갔을 것이다. 게다가 부동산에서 가게 주인을 설득하여 권리금을 크게 낮추어 주겠다니 마음이 확 기울었다.
마음속으론 계약하기로 마음을 먹고 며칠 동안 아침 점심 저녁 등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가서 주변을 관찰했다. 가게 위층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근처 야채가게, 그리고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에게도 물어보았다. 그들 대부분이 하는 말이 그동안 주인이 몇 번 바뀌었는데 제대로 장사하는 걸 못 보았다는 등 부정적인 말이 대부분이었다. 혹 허가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해서 구청을 방문해서 허가 내용도 확인해 보고 민원 여부도 확인하는 등 나름대로 확인을 했다.
며칠간 불면의 밤을 보낸 끝에 한번 해보기로 결심했다. 이걸 놓치면 영영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그 결정은 이성적이 라기보다는 감성적이었던 것 같다.
유령의 집
계약을 하고 열쇠를 받고 나니 동네가 정겹게 느껴졌다. 계약하기 전 살펴보러 왔다가 몇 번 들렀던 근처 바르 모가스에 들렀다. 맥주 한잔 시켜놓고 낯이 익은 종업원 알베르와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안녕, 이제 이웃이 되겠네. 반가워”
“이 동네로 이사와?”
“아니, 이사 오는 게 아니라 옆 식당 계약했어”
“그래? 무슨 음식할건데?”
“한국음식”
“한국음식? 이 동네에서 한국음식 한다고? 오 마이 갓. 이 동네는 되게 보수적인 동네야”
“그래? 한국식당은 잘 안될까?”
“글쎄... 잘해봐. 근데 쉽지는 않을 거야...”
짧은 대화였지만 그곳에서 한식당은 절대 안 돼,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시켜놓은 맥주 단숨에 마시고 나오면서 바라본 하늘엔 유난히 밝은 보름달이 떠 있었다. 알베르와 나눈 대화는 식당 오픈하고 나서 한참 뒤에야 아내에게 말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동네 사람들은 그곳에 한식당을 오픈하는 것을 보고 매우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관광객이 지나다니는 길도 아니고 게다가 앞서 있었던 세 번의 ‘망함’으로 인해 주민들은 "유령의 집"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단다.
7년 후
7년이 지났다. 망하지 않고 살아남았다.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동네 사람은 물론 멀리서도 찾아오는 ‘핫스폿’으로 변했다. 2천 개가 넘는 구글리뷰 평점이 4.8이다. 트립어드바이즈는 2021, 2022, 2023년 상위 10% 안에 드는 식당에 부여하는 "Travell's Choice "로 선정했다. 바르셀로나 8천여 개 식당 중 50번째로 랭크되었으니 대단한 성과다.
김치마마는 길 가다가 불쑥 들어오는 식당은 아니다. 아는 사람의 추천이나 구글이나 트립어드바이저 등에 남겨진 고객들의 평가를 본 후 나름대로의 판단을 갖고 오는 곳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단점일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김치마마와 고객 간에 더 긴밀한 정서적, 문화적 공감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다른 상점이나 식당이 전무한 조용한 골목. 안까지 환히 보이는 김치마마 유리문으로 흘러나오는 따뜻한 오렌지 빛 조명, 그리고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광경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충분하다. 아마도 그들은 생각할 것이다. “여기 사람 가득한 것 봐. 아마도 여기 맛집인가 봐”
그리고 그 느낌은 언젠가 뭔가 새로운 것을 먹고 싶을 때 따듯한 오렌지 빛 조명과 함께 선명하게 떠오를 것이다.
김치마마 따뜻한 불빛은 어두운 골목을 밝혀주는 따뜻함 그 자체가 되었다. 그리고 엄마를 뜻하는 “마마”라는 단어가 전달하는 포근함까지 더해져, 그 따뜻한 공간에서 친구와 연인과 그리고 가족과 함께하고 싶은 공간이 되었다.
유럽에서 한식은 아직은 조금은 특별한 음식이다. 특별한 음식은 그것이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게 하니라 어떻게 그 특별함을 잘 유지하느냐가 중요하다. 콘셉트와 퀄리티, 이 두 가지가 유럽에서 한식당을 오픈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키워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