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하루 만에 강릉을 다녀오기로 한 후 정한 목적지가 바로 하슬라 아트월드라는 곳이다. 월요일 아침 일찍 서둘러 부지런히 가니 2시간 조금 넘어 강릉에 도착했다. 강릉까지 고속도로가 이렇게 잘 만들어져 있다.
후기 좋은 식당을 검색해 들어가니 월요일인 데다 점심이라기에는 일러 식당이 한산하다. 대표 메뉴 중 하나인 전복 해물뚝배기를 주문하니 꿀맛이다. 시원한 국물을 술술 넘기자니 누가 보면 지난밤에 거하게 술 한잔 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듯하다. 해물뚝배기에 밥도 먹고 칼국수도 말아먹었기에 배도 든든하겠다 본격적으로 구경하기 위한 채비를 했다.
오늘 간 곳은 하슬라 아트월드.
임금이 있는 한양에서 정동(正東) 쪽에 있는 바다라는 정동진에서도 등명(燈明)이라는 곳에 위치한 복합예술공간이다. 해 뜨는 게 얼마나 밝았으면 동네 이름이 등명일까? 조각가 부부가 3만 3천 평의 빈 산을 조각 공원으로 만들면서 이렇게 뮤지엄과 호텔과 레스토랑을 꾸며 함께 운영하고 있다.
주차를 하고 입구에 들어서니 부부처럼 보이는 조각상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입구부터가 포토존이다.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사진에 담는 것이 부담스러웠는데 요즘은
‘그래, 내일보다 오늘이 젊은 날이다.’라는 마음으로 가는 곳마다 몇 장의 사진은 남긴다.
입구로 들어서니 호텔로비를 지나면 뮤지엄 입구가 나온다.
몇천 원이라도 할인받을 수 있기에 인터넷으로 산 예매권을 보여주고 들어섰다.
하슬라. 영어? 아랍어? 그런데 입구에서 챙겨 든 브로셔를 읽어보니 삼국시대 강릉의 옛 지명이란다.
멋지다.
첫 번째 전시관이 아비지 갤러리. 아비지..... 어디서 많이 들은 이름인데..... 오호 신라에 탑을 세운 백제장인.
신라 선덕여왕은 자장율사가 황룡사에 9층 목탑을 세우면 신라 주변 9한(韓)이 신라에게 조공을 바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백제의 장인을 초청해 탑을 세웠다. 그 후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 때 불타버리고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지만 황룡사탑을 세웠던 장인의 이름을 붙인 전시관에는 큼직큼직한 조각품과 설치미술이 전시되어 있다. 뮤지엄 이름도 하슬라, 첫 전시관 이름이 아비지. 예사롭지 않다.
아비지 갤러리를 나와 한층 아래로 내려가면 현대미술관 1관과 레스토랑, 카페가 있다.
생활 속의 소품이 녹아있는 현대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하고 방송 덕에 이곳에 있는 레스토랑 역시 유명한 듯한데 우리는 이미 배불리 먹었으니 이곳 역시 지나쳤다.
현대미술관 1관을 지나고 나면 현대미술관 2관과 설치미술 작품인 터널을 지난다. 이제 현대미술관 3관과 피노키오 박물관을 볼 수 있는데, 거대한 피노키오부터 작은 피노키오 소품까지 전시도 하고 판매도 한다.
그런데 전시장 내부의 작품보다 피노키오 박물관 앞에 있는 전망이 정말 '와'라는 감탄만으로는 부족할 만큼 인상적이다.
동해를 두 눈에 가득 담고도 모자라 마음에 담고 머리에 담아 두고 싶은 그런 경관이 펼쳐진다.
정해놓은 포토존에는 당연지사 줄을 서야 하고 스카이 워크나 바다 전망의 멋진 포인트에는 기다림이 당연하다. 그래도 좋다. 기다려도 좋다.
여기저기서 연인들, 친구들, 부부, 자녀와 함께 온 사람들이 서로 찍어주고, 찍힘을 당하고....
역시 바다다. 그냥 바다만으로도 그것이 예술이고 미술이고 감동임을 알게 된다. 아마도 내 핸드폰의 카메라도 여기에서 만큼은 제일 바쁘지 않았나 싶다. 내가 유독 바다를 좋아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냥 바다 그 색과 경관 그 자체가 예술이다.
돌아서는 발길이 아쉬울 정도로 경관이 너무 아름답다. 바로 지금이라도 바다로 뛰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정말 멋지다. 이 말이 참 심심하게 표현될 만큼......
이쯤 되면 다리가 아플만하니 바다 카페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당을 보충하고 야외조각공원으로 향했다. 조각공원 역시 쓱 볼만한 거리가 아니라 올라가고 올라가고 또 올라가야 하는 거리다. 입구에서 봤던 설명문에 따르면 조각 공원 길이 새의 모습으로 그려진 그림으로 공원의 정상이 새의 부리 부분으로 표현되는 하나의 대지미술 작품이라고 했는데 하늘에서 바라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정말 수년의 세월을 거쳐 완성한 설립자의 노력만큼은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마도 내가 왜 이걸 시작했지라는 후회가 밀려들었을 때도 있었을 텐데 힘듦이 밀려들 때 이 동해를 보고 버티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이곳 미술관에서의 경험이 참 특이하다.
보통 미술관에서는 좋은 작품을 보고 카메라에 담을때면 그 감동이 전해지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뿐인데 이곳은 사실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딱히 작가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카메라 렌즈를 대는 순간 찍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이렇게도 찍고, 저렇게도 찍고, 친구도 세워놓고 찍고, 나 스스로도 찍고, 나를 찍어달라고도 하고.
참 신기하다. 렌즈를 통해 보는 색감이 예술이다.
렌즈를 통해 보는 각도와 배경이 정말 안 찍을 수가 없게 만든다.
그냥 아무렇게나 찍어 인스타에 올리면 사진 잘 찍는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곳이다.
가슴 답답해서 기분 전환하고 싶은 분, 바다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바다를 넓게 보고 싶은 분, 멋진 사진 찍고 싶은 분, 인생 사진 찍히고 싶은 분, 핸드폰으로 사진 잘 찍었다는 말 듣고 싶은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