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억은 넘을 보물 눈과 마음에 담기
코로나 확산 이후로 적응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바로 박물관 미술관의 예약 시스템이다. 오다가다 시간이 나면 가볍게 들렸던 것을 예약해야만 갈 수 있으니 가끔은 일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더 적응하기 어려운 것은 가려고 해도 예약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나. 이 또한 적응할 수밖에.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도 예약 가능 날짜를 적어 놓았다가 겨우 예약에 성공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일로 취소를 하게 된 후 예매사이트를 다시 들어가니 아니나 다를까 전회 매진. 그래 현장 발매가 30%라니 현장 구매를 해보자고 친구와 약속했다.
관람 시간이 10시부터인데 10시 30분쯤 도착하니 벌써 현장에서 표를 구하려는 줄이 길다. 더운 날에도 사람들의 열정이 대단하다 싶다. 1시간 조금 안 되었을까? 차례가 되니 11시 이후 표가 가능하다고 한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친구를 위해 넉넉하게 12시 표를 샀다.
차라리 예매보다 현장 구매가 더 편하게 느껴진다. 옛날 사람이 확실하다.
오늘 보려는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 -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이다. 4월부터 했지만 늘 매진이어서 이젠 수월하겠지 하고 기다려 7월까지 왔지만, 여전히 예매 날 빠르게 매진이 된다.
이번 전시는 이건희 회장 작고 이후 기증하여 국공립 기관에 소장된 작품 300여 점을 모아놓은 전시로 유명 작품들이 시기별로 교체 전시된다.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석조상을 지나며 오늘은 어떤 작품이 마음에 들지 기대를 안고 입장한다.
전시 초반부터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 보인다. 바로 권진규의 작품. <모자상>. <지원의 얼굴> 같은 여인의 두상을 조각한 작품을 많이 봤는데 이런 모자상은 처음이다. 자그마한 작품인데 엄마의 목을 꼭 끌어안은 아가와 그런 아가를 안고 있는 엄마의 팔에서 단단한 결속력과 함께 사랑이 느껴진다. 이 아가를 꼭 지키고 싶은 엄마의 마음, 엄마에게 온전히 매달려있는 어린 아가의 모습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이니 나중이라도 미술관에서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다.
사람들이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에는 소반과 백자가 있다. 이중섭과 김환기 작품이 있는 공간을 지나면 정원 같은 공간에 동자석들이 있다. 도교, 불교, 유교, 무속신앙 등 여러 신앙 속에서 무덤의 수호신이나 마을의 지킴이 역할을 했던 이 동자석들은 어느 마을, 누구의 무덤을 지키던 것일까? 이 동자석 뒤편의 창으로 이번 전시의 대표작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1917~1920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이 살짝 보인다.
끌로드 모네(1840~1926). 교과서에서 수십 번은 봤을 인상파 대가의 그림. 수련도 유명하지만 <인상, 해돋이>가 먼저 떠오를 수도 있다. 빛에 따라 달라지는 그 순간의 색채를 야외 현장에서 생생하게 표현하였지만, 그 당시에는 높이 평가받지 못했다. 사실 인상파들이 이렇게 외부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휴대용 금속 튜브 물감 사용이 큰 역할을 했다.
모네는 말기에 시력이 나빠지면서 수련과 물을 더욱 모호하게 그리게 되었는데 이런 시기를 사람들은 근대 인상주의와 추상표현주의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평가한다. 그래서인지 작년 소더비 경매에서 이와 비슷한 시기와 크기의 수련 작품이 445억 낙찰 예상가를 훌쩍 뛰어넘어 약 800억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경매에 나왔던 그림의 색감이 조금 더 화려하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800억이 넘는 어마어마한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작품의 가격을 떠나서 내가 끌리는 작품인지 아닌지도 중요하지만 쉽게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니 두 눈과 마음에 담아본다.
수련을 보고 나면 제2전시실로 들어선다. 이중섭, 김기창, 김홍도, 장승업, 박래현, 박노수, 이하응 등 우리나라 내로라하는 근현대 화가의 작품들이 있고 분청자와 함께 나란히 전시된 현대 작가의 강요배 작품도 볼 수 있다.
백자, 도기, 청록산수화 등 많은 작품을 지나 권진규의 작품 <손> 도 보인다.
이쯤 되면 살짝 피곤할 만큼 작품이 많다. 초상화, 기록화, 평생도, 현대 유화 등등 평소에 보고 싶었던 작품,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끄는 작품들이 재료, 시대를 망라하고 작은 주제로 나뉘어 전시되어 있다.
멋진 전시라도 2시간 넘어 보는 것은 피곤하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작은 전시를 선호하게 되는데 이번 전시는 300여 점 모두 멋지지는 않더라도 지칠 만하면 몸과 눈이 다가가게 하는 작품들이 있다.
어느 수집가의 멋진 안목으로 수집된 것에 놀라고 그것들이 기증된 것에 또 놀라고 이 작품을 즐기는 이들이 많음에 또 놀랐다.
이번 전시가 끝나면 이곳저곳 다른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이기에 더욱 정감이 가고 조급한 마음 없이 편하게 보게 된 전시였다. 표가 매진이라도 현장 구매(1인당 2매 구매 가능)로 표를 구할 수 있으니 시간이 된다면 한번 가보라고 꼭 추천하고 싶다.
#국립중앙박물관 #어느수집가의초대 #이건희기증전 #모네 #수련이있는연못 #권진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