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한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인기 있는 국보가 바로 반가사유상이다. 지금은 국보 몇 호라는 번호가 없어졌지만 이제까지 국보 83호, 국보 78호라고 불렸었다.
반가사유상.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에 올린 반가(半跏)의 자세로 생각하는 모습의 불교 조각상.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릎 위에 올리고 오른쪽 손가락을 뺨에 대고 오른쪽으로 살짝 머리를 기울이고 있다. 깊은 생각을 하는 표정으로.
국보 78호 국보 83호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었는데
이런 반가사유상은 인도에서 중국으로 그리고 우리나라로 넘어오면서 대략 6세기부터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의 반가사유상은 싯다르타 태자가 명상하는 모습으로 주로 표현되었고 우리나라를 거쳐 후에 일본의 반가사유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나라는 신라에 미륵신앙이 유행하던 시기에 제작되었던 것으로 여겨 예전에는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라는 긴 이름으로 불렸는데 지금은 미륵보살이라는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고 하여 반가사유상으로 불린다.
78호는 머리에 보관을 쓰고 양어깨에 걸쳐있는 천의와 두 다리를 덮어 내리면서 화려한 주름으로 표현한 군의를 입고 돈좌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는 비교적 큰 금동반가사유상이다. 광대뼈가 있는 갸름한 얼굴에 입가는 살짝 올라가 참 미묘한 표정이다. 가느다란 손가락에 비해 발은 어릴 적 봤던 로봇 발처럼 둔탁하다.
83호는 이보다 살짝 더 크다. 78호보다 비교적 단순한 모습이지만 균형미와 자연스러움, 우아함이 어우러져 그 앞에 서면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기품이 있다. 83호의 머리에는 삼산관 또는 연화관이라는 단순한 형식의 관을 쓰고 다소 동그란 얼굴에 반원의 눈썹 선이 콧선으로 이어진다. 상의는 걸치지 않고 목에 두 줄의 목걸이가 걸려있다. 날카롭게 느껴질 만도 하지만 입에는 옅은 미소가 있으니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언제 어떻게?
간혹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비교되기도 하는 이 두 유물은 로댕의 조각품보다 무려 1300~1400년이나 앞선다. 500년대 600년대에 이렇게 정교하게 만들었으니 그 당시 금속 가공 기술이 뛰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안타까운 것은 출토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78호는 6세기 후반의 신라시대로, 83호는 신라로 보는 학자, 백제로 보는 학자로 나뉘고 시기도 7세기 초, 중엽으로 추정한다. 78호는 일제 강점기인 1912년 골동품 수집가로부터 조선총독부가 사들였다고 하는데 그 당시 경북 안동에서 출토되었다는 말이 전해진다. 83호는 제실 박물관에서 일본인 고미술상에게 샀다.
그런데 사실 우리에게 이렇게 잘 알려진 78호와 83호 이외에도 국보로 지정된 반가사유상이 리움 미술관에도 있다. 이 불상은 1944년 평양시 우물터에서 발견된 후 공사장 인부에게 골동품상이 사들인 것으로 수십 년이 지나 이건희 회장에게 양도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이 멋진 작품을 우리는 늘 공짜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볼 수 있었다. 78호와 83호가 6개월씩 교체 전시되어 박물관에 온 사람들을 맞아주었다. 나 역시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꼭 이 반가사유상을 한 번씩 보고 나오곤 했는데 이 반가사유상 단독 전시실이 <사유의 방>이라는 전시실로 리모델링되었다. 가본다 가본다고 하면서 이제야 가보게 되었다. ‘멋지다’ ‘꼭 가 봐야 한다’ ‘제일 처음 아무도 없을 때 들어가 그 온전한 기운을 느껴보라’라는 좋은 후기가 넘쳐났다. 그런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단숨에 가지지 않다가 이제야 가보게 되었다.
<사유의 방>은 어두운 진입로로 들어서면 미세하게 기울어진 벽과 바닥으로 구성된 소극장 규모의 전시실이다. 반짝이는 천장 아래 무대와 같은 곳에 78호와 83호가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가까이 가서 보고, 멀리 가서 보고, 앞도 보고 뒤도 보고 널찍한 공간에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전시실에 있는 이 반가사유상의 모습은 미소를 지으며 사유하고 있다. 싯다르타 태자는 나고 죽는 법을 사유했고 그 본질이 무상함을 아는 순간 마음이 평화로워져서 더 이상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 순간의 미소일까?
그렇다면 사람들은 이 반가사유상을 만들어 무엇을 빌고 기도하려고 했던 것일까?
미륵보살은 속세의 햇수로 56억만 년 동안 이상향의 세상 도솔천에서 설법 교화한 후 다시 속세에 태어난다고 하는데 그가 다시 오는 세상은 질병이 없고 번뇌가 없는 평화로운 신세계라고 했다. 불안했던 삼국의 정세를 미륵신앙에 걸었던 것일까?
그런데,
예전의 자그마한 방에 한 유물씩 전시되어 있을 때보다 이 널찍하고 더 쾌적한 전시실에 두 작품이 함께 있으면 그 감동이 배가 되어야 할 텐데 이상하게 그렇지 않다. 한 작품을 보면서 그 작품에만 집중하고 싶은데 자꾸 옆에 있는 것과 비교하게 된다.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비교하고 관찰하게 된다.
두 작품을 한꺼번에 보니 더욱더 감동의 물결이 일어야 하는데 말이다. 대단한 두 작품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이 상황이 복에 겨워 드는 생각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