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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태산이높다하되 Aug 02. 2023

남편은 남의 편

엄마에겐 악당이 너무 많다

2020년 2월 어느 날, 병실 침대에 체념한 듯한 눈빛으로 멍하니 누워있던 아버지. 그 옆에 앉아있던 나를 교대해 주러 온 엄마가 조용히 불러냈다.


니 아비 몸에 달린 거 다 떼 내고 집에 가자 그만. 다 죽어가는 사람한테 저렇게 다 붙여놓고 사기꾼 놈들이지 뭐야. 그만 집에 가.


연민이나 동정의 눈빛은 없었다. 슬픔은 물론 목소리의 떨림도 없었다. 엄마는 그렇게 아버지를 보냈다.


나보다 차(자동차)를 더 위하는 사람이야 늬 아부지는.

다른 예팬네들한테는 을마나 친절한지 우쨀 줄을 모른다 늬 아부지는.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 폐암선고를 받은 날은 엄마의 칠순 잔칫날이었다. 가족끼리만 모여 저녁을 먹기로 했으니 망정이지, 정말 고약한 날이 될 뻔했다.


아버지의 무표정과 어쩔 수 없이 침울할 수밖에 없었던 형제들, 손녀들이 할머니한테 선물전달하며 낭송한 한 편지 속 문자들만이 허공을 휘돌며 칠순과 행복과 장수를 기원하고 있었다.


엄마를 배려한 사람은 언제나 나였다. 아버지가 밥상을 엎었을 때나 엄마에게 고함을 치며 함부로 대할 때 나는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아버지는 그래도 엄마보다는 많이 배운 사람이고 책도 많이 읽고 사회생활도 오래 해서 관계의 상호 역학관계도 알고. 그런데, 남들에겐 하지 않는 행동을 왜 엄마한테만 하느냐고. 왜 관계의 상호작용을 알면서 엄마한테만 일방통행이냐고. 엄마가 바가지를 긁을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말했다.


아버지는 꾀가 말짱한 사람이었다. 내가 대든 날이면 나를 데리고 대폿집에 가서 고기를 구우며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러면서 당신의 고충에 대해 말했다. 물론 핑계일 뿐이었지만 나는 그것이 부끄러움을 대신한 고백이라고 해석했다.


참고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엄마일로 대든 날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날 난생처음 아버지에게 머리통을 한대 쥐어 박혔다.


아내를 제일 많이 사랑하고 아껴줘야 할 사람은 남편이다. 물론 그 역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할머니를 먼저 배려하고 친구를 먼저 배려하고 이웃을 먼저 배려하고 그래도 여력이 생기면 자식들을 배려했다. 엄마는 늘 뒷전이었다.


나는 식모여. 식모. 밥이나 하고 그랬지 모.


그래도 부부의 일을 제삼자가 왈가왈부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겠지.



매주 토요일 오전 아침밥을 먹고 엄마와 나는 집 근처 목욕탕에 간다. 차로 5분이면 갈 거리를 드라이브 겸 동네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늬 아부지는 길도 참 잘 찾아. 운전도 운마나 살살하는데. 아주 구신같어.

밥집도 참 잘 찾지. 어떤 여편네랑도 가는지 누가 알게 모야.


엄마가 아버지에 대해 하는 말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 언급하듯이.


나는 엄마의 이 말이 드라이브도 좀 시켜주고 맛집도 같이 좀 가 달라는 말로 해석된다.


이젠 그런 아버지가 없으니.


15년 전 엄마 환갑을 지내고 몇 달 후 아버지가 내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검진 받았는데 뱃속에 혹이 자라고 있단다. 그런데 엄마는 병원 안 가고 절에 가 있겠다고 저런다.


서울대 병원에서 훌륭한 산부인과 의사를 찾아 내 수술을 받았다. 경계성 종양. 다행히 암은 아니었지만 대수술이었다. 자궁을 모두 들어내는.


진단받고 검사받고 큰 병원으로 옮겨서 다시 검사받고 수술 날짜 받고 수술하고 경과를 지켜보는 몇 달 동안 나는 초조해하는 엄마의 남편을 지켜볼 수 있었다.


엄마 옆에 붙어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 처음이었다. 이동식 침대에 옮겨져 수술실로 향하는 엄마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잘 될 거라고 말하는 자상한 남편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임플란트 때문에 이를 뽑은 지 이틀 째 되는 날 저녁. 엄마가 야무진 표정으로 물컹한 복숭아를 자르고 있었다. 한 입에 먹기 좋게.


마누라도 필요 없고 자식도 다 필요 없어.

테레비 봐라 다 왼수여. 다 저만 잘 살겠다고 난리들이지.


언제나 훅 들어오는 강렬한 표현. 가족과 떨어져 사는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엄마의 이 말이 늬 아부지도 너희들도 다 같이 있을 때가 좋았어. 라고 해석된다. 넌 그런대로 잘 살고 있는거야. 라고도 해석된다.


엄마에게 악당은 그저 악동일 뿐이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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