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imalism
군시절 법정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을 읽었다. 얇고 크기도 작은 문고본으로 나온 책이어서 여럿이 돌려 읽었던 기억.
근데 돌이켜 보면 우린 스물이었다. 욕심과 야망으로 불타올라도 시원찮을 나이에 무소유라니.... 게다가 당시 나는 정말이지 가진 것이라고는 x알 두 쪽뿐이었는데.... 젊은 날에 어울릴 만한 책은 아닌 듯...
어쨌든 그래도 와닿았다. 가진 것이 전혀 없다고 생각한 그런 나보다도 더 심하게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던 스님이 쓴 책이어서였을까.
가진 것 없는 이가 품고 있던 마음의 풍요가 부러웠던 것도 같고. 무엇보다 군더더기 없는 그의 필봉! 표현력이 멋졌다.
저녁을 먹고 이 닦고 샤워하고 맨솔래담 로션을 바르면서 그 책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요즘의 사소한 고민들이 떠올랐다.
그 많은 로션과 크림, 그리고 향수들.
비누와 클렌징크림과 선블록들.
바디클렌져도 여러 통.
내 방, 욕실, 사무실 욕실, 그리고 차 트렁크, 또 골프 가방에도 들어 있는 남아도는 저 불경스런 액체들을 어쩌면 좋으냐.
30년 전엔 그렇게도 귀하던 것들이었는데
그도그럴것이 내돈내산은 몇 안된다.
몇 년째 남아돌아서 내용물을 다 쓰기도 전에 유통기한이 지나면 버려야 할 것들.
요즘엔 2+1도 많다. 선물이나 경품으로 받는 경우가 많다 보니 정말이지 남아돈다. 필요도 없는 것을 두 개나 더 받아야 하다니.
아깝기도 하고, 이미 많이 있는데 내 의지와 무관하게 또 새것이 생기면 이상하게 짜증도 난다.
누굴 줄려고 해도 그 누군가도 나와 마찬가지 형편인 것을 알기에 내키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아껴 쓴다. 넘쳐나게 쓰면 죄를 짓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아끼고 다시 쓰고 그러다 남아서 버리게 되는 악순환!
필요한 것들만 남기고 싹 다 버리자.
내친김에 입지 않는 셔츠와 조끼, 재킷과 점퍼와 바람막이들도...
<무소유>의 핵심은 내 마음이 편하자는 데 있다.
물질적 풍요를 넘어 낭비는 결국 마음의 병을 야기한다.
꼭 필요한 것들만 마지못해 소유한다면 물건의 소중함과 마음의 풍요를 얻게 된다.
어떤 선택은 반드시 기회비용으로 무언가에 대한 포기를 요구한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게 마련인 법이니까. 1+1으로 얻게 되는 또 한 개의 이익은 결국 마음의 짐으로 남는 경우가 있다.
<무소유>의 초판은 보릿고개를 막 넘긴 1976년이다. 그 시절에 이미 물질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했던 걸까.
불필요한 물건을 정리하면서 이 참에 버릴 수 있는 것들을 모두 털어버리기로 마음먹는다.
마음의 풍요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