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부서에 배치를 받았다
어문을 단일전공으로 하고, 실컷 여행 다니고 배우고 자랐던 대학생활의 끝자락에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채로 뛰어들었던 취업시장. 영업, 마케팅, 경영지원 등 '전공무관'이라면 지원할 수 있는 모든 곳을 다 지원하고도 확실할 수 없었는데, 내가 하게 될 일은 무엇일지 걱정 반, 설렘 반이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 고민은 빙산의 일각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Sales&Operation Planning의 약자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조직 간의 협의를 끌어내는 프로세스... 이것이 내가 인터넷에서 본 정의였다. 대학생활 내내 중국어만 했는데 수요와 공급이라니. 눈앞이 캄캄한 와중에 선배와 함께 이동하면서 도대체 뭐 하는 곳인가요.. 되물었던 기억만 남아있다.
첫 팀장님과의 면담에서 팀장님은 전체 계열사가 함께하는 그룹연수에서 내가 우리 기수 전체 기장을 맡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셨다. 이유가 있으니 추천도 받았겠지. 앞으로 잘해보자고. 하고 껄껄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어렴풋이 교육 중 인사 매니저와 면담하는 시간에 SCM 부서는 씩씩한 친구를 배정할 거라고 했던 게 스쳐 지나갔다.
후에 선배가 말해준 비하인드 스토리로는, 우리 팀에서 처음으로 여자 사원을 받고 싶었는데, 내가 기장을 맡았던 게 꽤나 큰 플러스 요소였다고 한다. 그 씩씩이 이 씩씩이었나..
SCM부서는 일이 힘들기로 소문이 나있는데다가 내가 처음으로 팀에 합류한 여성인재였기 때문에, 마주치는 선배들마다 내 부서를 듣고는 괜찮냐고 걱정해주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나의 우당탕탕 SCM커리어가 시작됐다.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1년뒤는 커녕, 하루 뒤의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 지도 그릴 수 없는 시작이었다. 4년이 꽉 지난 지금도 계속 SCM을 하고 있을 줄은, 그때는 꿈에도 몰랐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