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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 Jun 28. 2023

소더비 크리스티 이슬람페어 주간

언제적 인연이냐고

10월인데 딸기가 있어...?


매일매일 딸기와 블랙베리 파티.


보스 2를 따라서 시장 보러 갔다가 10월임에도 넘쳐나는 딸기와 베리류에 크게 감탄. 생활비가 따로 나오는데 딸기랑 식료품까지 다 사줘서 좀 고마웠음. 루바브를 넣은 딸기 요거트를 엄청 좋아하는데 이건 꼭 런던 마트에만 있더만. 왜죠? 파리에서는 내가 못 찾은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국내 도입이 시급함. 네스프레소 버츄오 머신도 도착하기는 했는데 그래도 역시 아침에는 베리와 홍차.


중국 섹션 내 자리 겨우 마련.


런던 파견 2주 차에 겨우겨우 내 자리 마련.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여기까지 정리하는데 닥쳤던 수많은 우여곡절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당나라시대 귀부인/궁녀 도용의 표면에 미세한 직물 문양이 남아있는 걸 확인할 수 있어서 조금은 기뻤음. 크기도 상태도 모양도 너무 예쁜 작품.


모모야마 혹은 에도시대 마키에 상자를 모방한 일본 공예품.


보스 1이 엄청 예쁜 컬렉터 손님과 함께 옴. 20대 정도의 젊은 여성 분인데 정말이지 예쁘게 생겨서 멍하니 쳐다보는 실례를 저지름. 어시스턴트 S가 툭 쳐서 정신 차리고 인사함. 일본미술에 관심이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본 업장은 일본 컬렉션이 매우 빈약함. 보스 1이 황급히 그 예쁜 일본 작품이 있지 않느냐며 보여주라고 독촉. 으음.


계단식으로 열리는 구조라 장식용으로 두고 보기는 좋음.


진짜 모모야마 시대나 에도 시대의 마키에 상자였으면 좋았겠지만, 이건 아마 메이지 시대의 모방품일 가능성이 높음. 상자 덮개의 윗면에는 교토의 황궁 같은 고급 건축물이 매우 정교하게 장식. 각 단의 측면에는 용, 화조도, 건축물 등등 매우 전통적이고 일본스러운 도상들이 나타남.


내부에도 장식된 일본의 전통적인 사계.


내부에도 전통적인 자연풍경과 사계절의 도상들이 장식. 노송과 바위가 있는 강변이나 국화와 대나무, 벚꽃 등 정교한 음각이 제법 눈길을 끄는 작품. 용도는 글쎄, 작은 귀중품을 넣던 보석함일 가능성이 높음. 잠금 기능은 없지만 고정용 걸쇠도 있고. 예쁜 손님은 관심을 보였으나 구매로 이어지지는 않음. 아쉽.


입구의 세크메트 흉상이 멋진 소더비 런던.


메이페어 거리 일대에서 곧 아시아-이슬람 아트 페어가 시작된다며 G박사가 매우 흥분. 본 업장에는 중동 예술 컬렉션이 방대한 편이라 시류에 편승할 수 있음. 단, 아직 이사와 정리가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너무 흥분하지 맙시다 닥터, 제발. 일단 옆 블록에 있는 소더비 런던에서 이슬라믹 전시를 한다니 아니 갈 수 없지.


소더비 런던의 중동과 인도 미술 전시.


컬렉션의 질은 차치하고 소더비는 진심으로 디피에 좀 신경을 써 달라. 페르시아 카펫을 바닥에 줄줄 늘여놓아서 진심 이스탄불 올드 마켓에 와 있는 줄. 아무튼 소더비 런던은 항상 입구의 세크메트 흉상을 보고 심장이 뜨겁게 뛰다가 정작 내부를 보고는 차갑게 식은 마음으로 나오게 되는 수순임. 하.


라뒤레 마카롱과 에스프레소 그리고 베리베리.


다음날 아침은 네스프레소 버츄오로 추출한 에스프레소와 라뒤레 마카롱, 그리고 딸기랑 블랙베리를 곁들임. 파리에서 라뒤레로 업장 선물을 통일했더니 뭔가 런던 스탭들에게 라뒤레 덕후로 각인된 모양. 무슨 일만 있으면 라뒤레에서 마카롱을 사다줌. 사실 마카롱을 선호하는 사람은 아닌데 뭐라 설명하기도 애매하고 이걸 또 영어로 하려니 말이 이상해질 것 같아서 포기. 당분간 마카롱 덕후로 산다.


중세-르네상스 미술 전문 갤러리 샘포그 런던.


어제 소더비에서의 실망을 상쇄하기 위해 오늘 점심시간에는 크리스티에 가볼 예정. 업장에서 크리스티까지는 소더비를 지나 몇 블록 더 가야 하지만, 가는 길에 중세미술 갤러리 샘 포그 런던도 있고 벌링턴 아케이드를 지나기 때문에 대단히 즐거운 편. 아쉽게도 샘 포그는 작품 입고 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음. 밖에서 잠시 구경을 하는데 나를 빤히 쳐다보는 인물이 있어서 방해가 됐나 싶은 마음에 자리 이동. 이때까진 몰랐지. 잠시 후 대참사가 벌어진다는 거.


런던 벌링턴 아케이드 입구.


샘포그 런던을 지나면 곧 벌링턴 아케이드. 괜찮은 브랜드도 있고 고급 골동품 가게도 많아서 요모조모 구경하기 좋은 곳.


벌링턴 아케이트 내부.


점심시간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오래 볼 수 없어서 아쉬웠던 골동품 가게들이 많았던 벌링턴 아케이드. 돌아가는 길에 다시 한번 지나가니 시간이 남으면 여유롭게 보려고 함. 이땐 몰랐지. 여길 전력으로 빠져나가게 될 줄은.


크리스티 런던의 정문을 장식한 그리스식 화병 조각.


신고전주의 양식의 크리스티 런던 입구. 페디먼트 부분의 중앙을 장식한 그리스식 화병 조각이 매우 예쁨.


크리스티 런던도 중동과 인도 미술 전시 중.


크리스티는 소더비에 비해 전시라고 할만한 디피를 해 놓음. 어시스턴트 S의 말로는 크리스티와 소더비의 차이가 디피를 예쁘게 하느냐 마느냐라고 함. 크리스티는 보기에도 예쁘게 하려고 꽤 신경을 쓰는데 반해 소더비는 전시가 아닌 작품 판매 행위 자체에 더 집중하는 편이라고.


크리스티의 페르시아 카펫.
맨 안쪽의 패치워크 같은 디자인의 카펫이 정말 예뻤음.


역시 대기업은 달라. 페르시아 카펫 컬렉션이 매우 방대하고 깜짝 놀랄 만큼 예쁜 것들도 있음. 그래도 솔직히 DP만큼은 내가 주도했던 2021년 서울 업장에서의 오리엔탈 카펫 전시보다는 못하다고 생각. 낄낄. 근데 다들 자연스럽게 카펫을 밟아가며 전시를 관람. 싫어. 바닥의 카펫을 최대한 피해 다니는 나를 보고 크리스티 관리자 분이 그냥 편하게 밟으라고 조언하심. 놉. 시러욧.


문양과 색상이 예쁜 이즈닉 물병.
오스만제국 황제 슐레이만 1세가 지극히 사랑한 부인 휴렘 술탄. aka 록셀라나.
상아 상감 장식의 인도 흑단 상자.
황홀하게 예쁜 사파비드 레이디.
두루마리형 쿠란 필사본을 펼쳐둔 전시관.


크리스티의 이슬람 미술 전시는 만족도가 높았음. 세밀화와 필사본, 공예품의 비중도 상당한 편. 예상보다 오랜 시간을 관람. 더 보고 싶지만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가는 관계로 여기서 관람 종료.


런던의 일본미술 전문 갤러리 Grace Tsumugi


본 업장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걸음을 계속 멈추게 하는 수많은 갤러리들이 곳곳에 산재. 정말 시간만 있었다면 들어가서 한참 구경했을 일본미술 갤러리 그레이스 츠무기(Grace Tsumugi).


시모네 데이 크로치피시의 세폭 제단화


모레티 갤러리에는 14세기 볼로냐 출신 화가 시모네 데이 크로치피시의 세폭 제단화가 있었다. 부럽.


벌링컨 아케이드의 라뒤레 매장.


벌링턴 아케이드의 라뒤레 런던 매장은 디피가 예쁘기로 유명. 조금 여유를 부려 들어가 보기로.


벌링턴 아케이트의 라뒤레 매장을 상징하는 금빛 쇼케이스.


할로윈 시즌이라 호박맛 마카롱과 할로윈 박스가 잔뜩. 괜히 들뜬 마음에 카페 라뒤레 한 잔과 이스파한 케이크를 테이크아웃. 신나게 라뒤레 매장을 나와 벌링턴 아케이드로 들어섰는데 누가 갑자기 어깨를 잡는 거임. 오하나님맙소사, 너 MK 맞지? ...네? 얼마만이야 나 기억나? 아니요... 이역만리 타국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낯선 외국인을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함. 막 삼킨 커피를 뱉어낼 만큼 식겁했음. 누구...? 팔목을 붙잡힌 채로 설명을 들어보니 무려 십여 년 전에 이런저런 일로 알게 됐던 이였음. 미친. 난 기억도 안 나는데 저쪽은 내 이름과 얼굴을 정확히 알아본 데 매우 소름. 게다가 개인적으로 딱히 좋은 인연도 아니었음. 샘 포그 앞에서 나를 봤다는데 아까 빤히 보던 사람이 이이였던 모양.


이 순간까지만 해도 매우 신났던 나.


어... 설마 이 생퀴가 내내 따라왔던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들며 동공지진. 출장 일정이 절반도 안 끝난 상황에서 근황토크를 할 생각 전혀 없음. 그나저나 이 넘이 내 팔은 왜 안 놓는 걸까- 싶은 생각과 함께 벌링턴 아케이드 입구마다 배치된 경비원에게 도움을 청할 일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 약간 걱정. 혼자 신나서 떠드는 이 앞에서 입을 다문 내게 잠깐 기다리라 하더니 라뒤레에서 마카롱 한 박스를 사다 주고는 연락처를 달라는 거임. 여행 중이라 한국 토착의 메신저만 사용할 수 있다고 얼버무리고는 아무튼 반가웠고 마카롱은 거절하려 했으나 거절을 거절당함. 설마 업장까지 따라오는 건 아니겠지 생각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길로 빙 돌아감. 덕분에 점심시간을 넘기며 복귀. ㅅㅂ


밑도끝도 없는 기억으로 남은 벌링턴 아케이트의 라뒤레.


점심시간을 너무 오래 쓴 것에 대해 업장 스탭들에게 사과함. 크리스티 전시 어땠냐고 추천할만하냐고 묻는 어시스턴트 S에게 무척 좋았다고 꼭 가보라고 추천. 이때 내 표정이 좀 미묘했는지 혹시 크리스티에서 무슨 일 있었냐고 질문을 받음. 자세히 얘기하기는 싫고 대략 줄이면 예민보스 될 것 같아서 좀 주저하다가 후자를 선택. 어차피 난 예미니스트니까. 놀랍게도 S는 내가 겪은 상황을 제법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줌. 너 진짜 싫었겠다, 지금 괜찮은 거 맞아? 조퇴할래? 등등 어쩌다 보니 업장 스탭들이 다 모여서 공감의 장이 열림. 한동안 퇴근길에 너도나도 동행을 자청해서 되려 곤란했음. 고맙고 다정한 이들. 갑툭튀 옛 인연이 선물한 마카롱 박스를 오픈해 모두 나눠 먹음. 이렇게 미묘한 기억을 달콤하게 마무으리.


런던 집에서 라뒤레 파티.


오늘 하루의 정리를 미묘하게 할 순 없지. 집에 가서 소피아 코폴라와 키어스틴 던스트의 마리 앙투아네트를 틀어놓고 본격 나홀로 라뒤레 파티. 라뒤레의 이스파한 케이크와 딸기 및 베리들, 그리고 보스 2가 사준 고급 홍차를 다 꺼내봄.


스트레이트는 아삼, 밀크티는 얼그레이.


기분전환을 위해 베리류를 많이 섭취할 필요가 있음. 이스파한의 산딸기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딸기와 블랙베리 그리고 체리까지 총동원. 그리고 홍차는 스트레이트로 아삼을 꺼내고 밀크티에는 얼그레이를 적용.


공작새 문양의 포셀린 찻잔.


시누아즈리와 자포니즘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듯한 공작새 문양 잔은 에스프레소용이라 홍차에는 너무 작지만 오늘 중요한 건 기분전환이기 때문에 예쁜 것 다 꺼냄.


이름도 예쁜 라뒤레의 이스파한.


라뒤레의 상징이자 로즈 케이크의 정수인 아스파한. 누가 이거 보고 틀니 같다고 한 이후로 자꾸 연상이 되어서 웃김.


사실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내부의 리치 과육 필링.



(딱히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사진·본문 불펌은 안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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