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소함과 저축보다는 소비와 과시의 문화
"돈이 잘 안모이네요."
순자산 규모가 최소 수십억 원에서 백억 원대인 자산가가 무심코 던진 말을 듣고 순간 당황스러웠다.
'이미 이렇게 많이 가지고 계신 분이 돈이 잘 안 모인다니?'
그러고 나서 나 자신의 소비와 저축 상황을 떠올려보니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돈을 모으는 것은 참 어렵다.
한 때는, 검소하게 생활하면서 절약하고 저축하는 것이 미덕인 시기가 있었다.
수십 년을 거슬러 올라가 나의 유년기를 돌이켜보면
몽당연필을 더 오래 쓰기 위해 볼펜 통을 끼워쓰는가 하면,
종이, 지우개, 크레파스 어느 것 하나도 아껴 쓰기 위한 나름의 노하우와 절약방법이 있었고,
그런 것들을 잘하는 사람이 칭찬받고 대견하게 여겨지는 게 사회의 통념이었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무엇이든지 조금 더 크고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게 미덕이 되고,
남에게도 더 당당하게 느껴진다.
어설프게 검소함과 절약을 운운했다간 쪼잔한 사람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더 맛있는 음식을 많이 시켜서 다양하게 즐기는 것들이 아름다운 사진으로 공유되고
더 넓고 풍요로운 장소에서 럭셔리한 휴식을 취하는 것만이 진정한 휴가처럼 느껴진다.
전기와 수도 같은 것들도 절약하는 것보다는,
쓰지도 않는 물을 콸콸 틀어놓기도 하고,
문을 활짝 열어두면서도 에어컨을 쌩쌩하게 틀어주는 모습에서 쿨함이 느껴진다.
마이너스통장에 마이너스가 쌓여가면서도
오늘의 저녁은 별점이 높은 소위 핫하다는 맛집을 찾아가서
다소 비싼 음식값을 당당히 지불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
이제는 "아껴야 잘 산다"라는 구호보다는 "오늘을 즐기자"와 같은 구호가 훨씬 더 익숙하고,
적은 돈이라도 차곡차곡 모으는 저축보다는,
하루에 몇십% 씩 손익이 왔다 갔다 하는 투기적인 투자방법을 통해서
한 방에 목돈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이 더욱 그럴싸해 보인다.
금리가 이렇게 올라갔는데도, 소비심리가 좀처럼 꺾이지 않는 것은,
속도가 붙어버린 사람들의 소비관성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가 아닐까?
소비를 통한 과시의 문화에 유동성 과잉이 맞물리면서,
어쩌면 우리는 역대급 소비의 시대,
다시 말해 소비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러한 소비과잉의 반작용이 어떤 것일지 아직 우린 겪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미래의 알 수 없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지금은
불려놓은 빚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절약하고 아껴 쓰는 알뜰한 경제생활로 남은 돈을 저축하고 것이 필요한 시기인데,
이러한 이야기를 섣불리 꺼냈다간 꼰대로 몰려 핀잔을 받을게 뻔하다.
말하고 싶은 사람도 침묵하고 조용히 지낼 수밖에 없는 딜레마의 상황일 수밖에.
그래도,
이미 늦었다고 하지만,
지금이라도 소비를 조금씩 줄여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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