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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윤 Aug 02. 2022

[상반기 관극 결산] 바라만 보기엔 아까우니까 1

(약간의 스포 포함) 그동안 글도 안 쓰고 뭐했냐고요?

그동안 뭐했냐고요?


그 푸르고 까만, 찬란하고도 창백한 밤 동안 보고 또 봤다. 그러나 결코 쓸 순 없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눈에 쓸어 넣었지만, 생각을 촉발하고 글을 뱉어내진 못했다. 못한 것인지, 안 한 것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쓸 것이 없었고, 쓸 것을 쓰기 위해 씀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래, 난 딱 그 정도였던 것이다. 쓸 것이 더욱 없었고, 그래서 더욱 쓸 수 없었고.

생각에 가뭄이 들자 깊이는 쉬이 가물어 사라졌고 남은 것이라고는 '그냥',

글은 무슨, 그냥 뭐, 그냥 사는 거지. 시큼털털하게.


그럴수록 눈에 쏟아 넣듯, 머리에 쑤셔 넣듯 봤다. 동트는 새벽으로 언제 물러날지 모를 그 찬란하고도 창백한, 상당히 길고 긴 밤 동안 가지각색의 꼬리를 끌거나 뽐내며 끊임없이 쏟아 내리던 나의 관극들.


가볍게, 굉장히 러프하게, 날 것 그 자체로, 그동안 내가 봤던 것들을 간단히 리뷰하려고 한다. 그만큼 가볍게 스치듯 보면 더 좋다. 약간의 스포가 포함되었을 수도 있음을 주의

그 긴 밤동안 그렇게 쏟아 내렸는데 그냥 바라만 보고 끝내기엔 아깝잖아. 

그 순간이, 내 시간이, 나의 '그냥'이,

그리고, 나의 티켓값이! 



1. 뮤지컬 팬레터, 코엑스아티움

- 2022년 첫극

- 빼앗긴 조국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글 쓰는 것뿐이었던 글쟁이 '해진', 글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아버지로부터 부정당한 세훈은 그런 해진의 작은 인정에 그를 동경한다. 그렇게 세훈은 '히카루'를 불러내게 되고 세훈은 히카루를 쉽게 놓지 못한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 개화기 시대로 인물들의 의상 보는 재미가 있고, 페어 안무도 꽤 있는데 보는 재미 쏠쏠

- 입문자에게 권하고 싶은 극


2. 연극 리처드 3세, 예술의 전당

- 오랜만에 연극으로 돌아온 황정민의 주연작

- 연기는 말할 것도 없지

- 타인들이 본인을 향해 뿜어내는 경멸, 증오, 비하와 냉기, 조롱. 조금도 견디기 힘들었을 저 화살들을 리처드는 숨 쉬듯 당연히 받아낸다. 그는 다른 왕족들과 '틀리게' 굽은 등, 작은 키와 뒤틀린 사지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은 리처드가 꽃을 들자 비웃었고, 리처드가 칼을 들자 눈물을 흘렸다. 리처드가 칼을 든 것은 그들의 목을 잘라내기 위함이 아니었다. 꽃을 들고 있는 본인의 손을 잘라내기 위함이었고, 그들의 비웃음을 잘라내기 위함이었다.

- 리처드의 파멸적 행위는 정당화될 순 없지만, 지금도 우린 '차이'를 '차별'하고 있는 것 아닐까.


3. 연극 환상동화,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 전쟁, 사랑, 예술. 3명의 신이 나와서 연극을 올린다는 설정

- 결국 우린 싸우고 사랑하고 예술한다.

- 다소 유머스러운 극이라서 정신없이 웃었던 기억이 강렬

- 입문자에게 권하고 싶은 극.


4. 뮤지컬 비클래스, 브릭스 시어터

- 명문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낙오된 학생들의 마지막 패자부활전

- 음, 혹시 인소 좋아하시는 분? 그 혹시 꽃보다 남자 갬성 아시는 분? 본인이 그런 갬성이다? 찰떡입니다. 당장 보러 달려가세요. 먼저 가있어. 난, 집에서 기다릴게.

- 다른 어떤 것보다, 기회의 기로에 놓인 인물의 잔인하게도 현실적인 선택과 뮤지컬의 엔딩이 맘에 들었던 극.

 

5. 연극 밤의 사막 너머, 백성희장민호 극장

- 우울의 우울 너머

- 우울 속을 방황하는 모든 우리들에게

- 우울 속을 방황하다 드디어 문을 열었지만, 그 속 또 다른 우울을 발견하고 주저앉는 모든 우리의 현요한 여정에 대해, 그 여정의 지독함과 고독함을 토닥토닥 쓸어내려주던 극.

- 굉장히 실험적인 연극으로, 작가 자신이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 경험, 감정, 감각, 감성 등 모든 것을 한편으론 굉장히 불친절하다고 느낄 정도로 모호하게 전달하다 보니, 보다가 나중엔 앉아있는 엉덩이가 빠개지는 걸 성심성의껏 견뎌내고 있는 나를 발견.

- 실험도 좋지만, 그 뭐랄까, 혹시 정도껏이라는 말 알아요?


6. 연극 회란기, 예술의 전당

- 또 보고 싶어

- 고전 중 고전이지만 결코 구닥다리는 아니었던,

- 자신의 아이를 되찾기 위한 어미의 눈물 나는 여정

- 몸짓과 대사의 절제와 과장, 자연과 부자연, 고전과 현대, 희극과 비극, 웃음과 울음 모든 극점이 존재하던 극으로, 굉장히 무거운 이야기를 무엇보다 산뜻하게 풀어내서 더욱 코끝이 시큰했던 극


7. 뮤지컬 아몬드, 코엑스아티움

- 원작 소설 아몬드를 뮤지컬로 상연

- 참고로 원작은 읽지 않았다는 점

-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이라는 신선한 소재와 미끄러지듯 몰입을 유도하는 나쁘지 않은 도입부, 순수하고 충분히 간질거리는 귀여운 사랑 서사까지, 아니 우리 좋았잖아. 우리 여기까진 괜찮았잖아.

- 청소년 소설이라 그런 걸까. 어찌 됐든 해피엔딩을 꼭 하고야 말겠다는, 강력한 다짐으로 서사 흐름 전환을 위한 위기 서사 클리셰를 풀로 밟더니 금상첨화로 급격히 꺾어버리는 빌드업 핸들, 몰아치는 광경에 정신 못 차리고 급속도로 돌아오는 나의 현실감각과 내 눈앞에서 파닥거리며 힘을 잃는 몰입도.

- 우리 헤어져.


8. 뮤지컬 광주, 예술의 전당

- 역사 바탕 뮤지컬

- 음, 역사 뮤지컬은 어쩔 수 없는 건가.

- 결이 너무 같은 음악 전개, 혹시 대본에도 도돌이표가 있는 것일까. 계속 반복되며 진행되는 서사

- 확실히 스케일에서 오는 장황함과 울림은 다르다.

- 마지막 '편히 쉬어'라는 대사가 이곳에 살아 남아 그들을 이렇게나마 기억하는 우리가 감히 해줄 수 있는 가장 진심의 말과 같아서 기억에 박힘.

- 고마워, 이젠 편히 쉬자.


9. 뮤지컬 쇼맨, 국립 정동극장

- 또 보고 싶어

- 여전히 눈부시고도 역겨운 과거에 붙잡힌 채, 그 눈 시림에 눈이 먼 채 벗어나지 못하는 노인 '네불라'와 해외 입양아이자 마트 비정규직 직원으로 꿈보다 현실을 선택한 청년 '수아'

- 수아는 네불라에게서 거울을 마주하듯 본인을 본다. 양부모에게 사랑을 받고자 아등바등하던 어린 본인을.

- 가면에 대한 이야기, 진짜 '나'에 대한 이야기, 몸만 커버린 작은 내가 여전히 몸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울면서도 웃어 보이는 '어린 나'를 마주 보는 이야기.

- 우린 얼마나 많은, 얼마나 긴 생애 동안, 순간 동안 가면을 쓰고 사는 것일까. 그 가면이 너무 무거워서, 너무 꽉 맞아서, 너무 거칠고 뾰족해서, 그냥 맞지 않아서 숨통을 막고 호흡을 잘라내는데도 왜 결코 그 가면을 놓지 못하는 것일까. 

- 내 속에 있을지도 모르는 그때의 어린 나는 지금쯤 어떤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을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을까.


10. 연극 소극장판-타지, 소극장판

-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공명

- 장애인들의 관극은 어렵다. 너무 많은 한계들이 입구에 장벽을 세우고 관극에 구멍을 만든다.

- 다른 장벽을 올리지 않고 지금의 장벽만을 낮출 방법은 무엇일까, 다른 구멍을 만들지 않고 지금의 구멍만을 메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니 그럼 그냥 당장 지금의 장벽만을 낮추면, 지금의 구멍만을 메우면 균형이 되는 것일까.



가볍고 러프하게 쓴다고 썼는데, 이것도 꽤 힘들고 시간도 걸리네요.

꽤 재미도 있고요.


아, 끝났냐고요? 끝이냐고요? 

그럼 이만,


2탄 들고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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