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편 01. 서류합격과 면접대기
일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지잉하고 울렸다. 확인을 해보니, 국립중앙청소년디딤센터에서 보낸 서류 합격 통보 문자였다. 별 생각 없이 지원한 자리였는데, 덜컥 합격 문자가 날아오니 좋기도 하였지만 다소 의아하기도 하였다.
'내가 왜 붙었지?'
기왕에 떨어질 거, 떨어져봐야 본전이니 지원이나 한 번 해보자 하는 생각에서 저지른 일이었다.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려둔 이력서 내용을 그대로 옮겨 붙인 것을 센터 측에 제출하였다. 이후에 입사하고 다른 선생님들께 들어보니, 서류를 상세히 길게 썼다고 하는 분들도 많았다. 부끄러웠다. 그만큼 기대 없이 제출한 서류였다. 언감생심 합격은 꿈도 안 꿨는데, '합격이 되었다고?'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생각해 보면 그 똑같은 서류를 여러 군데 타사의 채용공고에 제출하여도 서류 합격을 하지 못하고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게 보통이라고 생각하면, 어떻든 붙을 것은 붙고, 떨어질 것은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 약점을 분석하고 보완하여 다시 도전하는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붙고 떨어지고는 어느 정도는 팔자려니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법인데, 나로 따지자면 전자보다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문자 안에 기재된 면접 예정일자가 굉장히 촉박하였다는 기억이 난다. 어쨌건 휴가를 사용하여 정해진 시일에 맞추어 정해진 장소로 갔다. 날이 쌀쌀해지는 초겨울 문턱이어서, 정장에 코트를 입고 디딤센터로 면접을 보러 갔는데, 다른 기관의 면접들과는 다른 게, 어떤 안내 표지나 화살표도 없었다. 주차를 하고, 정문 경비초소에 계신 경비 선생님들께 면접을 보러 왔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어디로 가라 이런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다.
'대기 장소는 어디지?'
혼자 두리번거렸다. 재직 중에 다른 선생님이 보내주신 면접 후기 글(블로그에 올라와 있음)을 보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지금도 여전히 이런 것들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듯 하다. 면접 대상자에 대한 센터의 배려가 부족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안내직원을 배치하던가, 차량 없이 면접을 오셔야 하는 분들을 위해 배차하여 차량으로 인근 역까지 귀가지원 할 수 있다면 한층 더 기관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점들은 개선하면 좋겠다.
센터는 생각보다 규모가 크고 넓어서 첫 인상이 좋았다. 그러나 건물들은 어쩐지 보수가 필요한 듯 바래보이는 부분들이 언뜻 언뜻 느껴졌다. 11월이어서 푸르른 초록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고, 울긋불긋하게 물든 산들이 고즈넉하게 센터를 감싸고 있었다. 날은 차가워져 쌀쌀하였다. 나처럼 양복을 입은 사람들 몇몇이 어디론가 바삐 향하고 있는게 보였다.
문자 안에 어디로 오라고 쓰여있긴 하였는 데, 처음 오는 날에 그 건물이 어딘지 알게 뭔가.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이야 어느 건물이 무엇입니다 하고 나오지만, 처음 오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간단한 약도를 안내 문자에 첨부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올라가면 어디든 길이 닿겠지 싶어, 길을 재촉하였다. 옆구리에는 제출할 서류를 담은 서류봉투를 들고 길을 따라 터벅터벅 걸어 올라가는 데 이미 당시에는 입교생들(20년 디딤 2기)이 입교하여 생활을 하고 있었다. 디딤관(본관) 건물 앞에 직원으로 보이는 분들이 계셔서 가서 여쭤보려고 나무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데, 한 여자 아이가 다가와,
"선생님, xx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하고 물어보았다. 멋적게 웃으며, "선생님 아니에요"하고 웃으며 답변하였다. 내가 선생님처럼 보였나? 싶어 속으로 혼자 우습게 생각하였다. 1층 건물 앞에 나와 계신 선생님들께 다가가 면접 보러 온 사람인데, 어디로 가야 합니까 하고 어찌어찌 물어봐 면접 대기 장소로 이동하였다. 1년도 지나지 않은 일인데, 기억력이 좋지 않아 어느 선생님들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중에 자세하게 쓰겠지만, 센터는 직원 처우가 열악하여 선생님들이 계속 그만두고 신규 채용이 반복되고 있다. 기관의 안정성과 일관성이라고 하는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너무 잦은 인원교체는 좋은 영향을 줄 리 없다. 이런 부분도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점이라 생각한다.
면접 대기 장소는 작은 회의실이었는데, 면접 대상자가 많아 협소한 회의실은 모두 있을 수 없었다. 부득이 모두 식당으로 이동하였다. 식당에 앉아 작성해달라는 서류를 작성하였다. 성범죄전력조회 동의서 등의 서류 따위였다. 인사 담당 선생님께서 기념품으로 디딤센터가 각인된 펜을 하나씩 선물해주셨다. 펜촉 커버를 벗기고 글을 썼는데 잘 쓰여지지 않았다. 구매한지 오래 된 볼펜인가? 생각하였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호명된 순서대로 면접실로 이동하였다. 나는 주간생활 자리로 지원했었는데, 금세 내 순서가 오겠거니,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금방 마치고 돌아가야지 하는 생각이었는데, 내 순서는 거의 마지막이었다. 긴장되거나 떨리지는 않았는데, 큰 기대를 안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면접만 보고 가도 내겐 큰 수확이겠거니 싶었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면접을 보러 오신 분들이 많아서, 꼭 내가 아니어도 괜찮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초반에 호기로운 마음가짐도 시간이 갈 수록 조금씩 초조하게 바뀌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면접 마치고 나오시는 분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밝게 웃으시는 분들이 많았다. 교육복지기관이라 담당 직원들이 능숙하게 사람들의 기분을 안정시켜주나보다 하고 생각하기도 하고, 면접 분위기가 많이 어려운 편은 아닌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시간이 좀 더 흘러 내 차례가 되어 드디어 면접실로 이동하게 되었다. 면접실은 3층으로, 2층 식당에서 나와 원장실 옆에 있는 세미나실에서 면접을 진행하게 되었다.